brunch

EP3. 친해질 수 없는 비주얼

[교대원하는 교대원생]

by 안이오

[EP3. 친해질 수 없는 비주얼]


“웬 군인 아저씨가 들어오네.”


첫 수업, 수업 중간에 들어온 나를 보고 강의 중이던 교수님이 강의를 멈추고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수강생들도 뒤를 돌아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 같다. 강의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군복과 짧게 깎은 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마스크. 나였어도 결코 친해질 수 없을 거라 단번에 생각했을 것이다.


나로서는 기대하던 첫 등교였다. 누가 군 생활 중 캠퍼스 생활을 병행할 것을 쉽게 꿈꿀 수 있겠는가. 1월쯤 합격을 확인하고, 학교에 등록하고 수강 신청을 하는 모든 순간이 설렜다. 오랜만에 다시 에브리타임을 열어 내 시간표를 저장하고, 대대장님께도 보고를 드렸다. 약 한 2주 후면 퇴근 후 펼쳐질 캠퍼스의 풍경 덕분에 혹한기 훈련도, 바쁜 부대 일정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새로 부임하신 여단장님께서 간부 전원 5분 전투대기 조장 임무 투입을 지시하셨다. 원래 우리 부대는 후방 지역 사단의 특성과 여러 대대의 통합 주둔지의 특성을 고려해 지휘자(관)들만 돌아가면서 5분 전투대기부대 조장 임무를 수행했다. 참모였던 나와는 크게 관련 없었던 임무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도 투입되어야 하는 지침이 하달됐다. 또, 투입이 되면 영내에서 교대 시까지 생활해야 했다.


내 군 생활의 숨 쉴 구멍처럼 여겨진 대학원 생활의 첫 수업이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만약 학기 중에 내가 투입된다면 그 주 수업을 통째로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부대 간부들은 사다리 타기를 통해 순번을 정했다. 다행히 나는 개강 전 마지막 주에 걸렸다. 한 주 동안 경사로 기울어진 컨테이너 박스에서 자고 일어나며 임무를 수행했다. 드디어 마지막 교대 날이 다가왔다. 갑작스런 투입으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기에, 교대를 마치고 아무 것도 들지 않은 채 캠퍼스로 향했다. 원래 수업 시작은 18시. 부대에서 17시 30분 일과를 마치고, 5대기 총기 실셈 교대를 마치니 이미 18시였다. 그래도 그때라도 부랴부랴 부대를 벗어나 학교로 향했다.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우리 부대에서 경북대학교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18시면 퇴근 시간이라 도심에 있는 학교로 가는 길은 많이 막혔다.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이라 일찍 마치지는 않았을지 초조한 마음으로 조금씩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수업이 끝나지는 않은 분위기였다. 조심스레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저 아무런 언급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맨 뒷좌석에 조용히 앉으려는 찰나, 교수님이 콕 찝어 “웬 군인 아저씨”라고 이야기하자 아차 싶었다.


머쓱한 표정을 짓고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채 열 다섯명이 안돼 보이는 수강생들이었고, 대학원 입학 후 첫 수업이었기에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렇게 교수님의 첫인상과 교실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자니, 머지않아 오리엔테이션이 끝났다. 교수님께 잠시 찾아가 사정을 말씀드렸고 출석 체크를 했다. 다행히 앞으로는 18:30분에 수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조정했다고 알려주셨다. 나에게는 호재였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니, 한 수강생이 다른 수강생들에게 번호를 물어보며 단체 카톡방을 만드는 것 같았다. 내심 나에게도 차례가 올까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아마 정원 외 수강생인 줄 알았을 것이다. 대신 나에게는 번호를 물어보기보다, 내가 수업에 오기 전 교수님께서 안내하신 교재 구입과 관련해 공동 구매를 할 것인지 의사를 물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책 비용을 간단히 계좌이체하고 나는 다시 팔공산 자락의 한적한 관사로 향했다.


운전을 해서 이동하며, 아무래도 내가 기대하던 캠퍼스 생활과는 많이 다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더 이상 학부생 시절의 비주얼이 아니었다. 그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부대 풍경을 벗어나 캠퍼스의 정취를 꾸준히 느낄 수 있다는 만족감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보다도 다른 수강생분들이 나를 불편해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교육대학원 특성상 대부분 교직에서 일하고 계시거나, 교직 경험이 있으신 선생님들일텐데 다른 직종 종사자, 특히 군복을 입고 등장한 정원 외 수강생일 것 같은 이와 조별과제나 토론을 하려니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했다.

KakaoTalk_20250201_135607428.jpg "웬 군인 아저씨가 들어오네."라고 했던 그 수업, 그 교수님.


대학원 수업 특성상, 바로 다음 시간부터 토론을 병행하는 수업으로 진행됐다. 책상을 돌려 원형으로 마주 앉은 채 수업은 진행됐다. 나는 정외과 시절 대부분 토론 수업을 진행했기에, 분위기가 익숙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아닌 것 같았다.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지시면 늘 정적이 흘렀다. 수강생들끼리도 친하지 않은데다, 토론식 수업이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나는 그래도 대답을 하고 싶었다. 꽤나 활발하게 내 의견을 펼치고 토론에 참여했다. 군인이 너무 가벼워보이면 안될 것 같아 절제하기도 했다.


그런 수업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한 수강생이 수업 후 찾아와 내 번호를 물어봤다. 단체 카톡방이 있다며 나를 초대하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미 몇몇 수강생 동기들끼리는 같이 식사도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원했지만,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동기들은 오히려 내가 본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은 듯 선을 긋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꽤나 동기들과 친해졌을 때, 동기들은 내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웬 군인 아저씨’라서 나이가 제일 많은 비주얼이었는데, 그들 중 내가 제일 어렸다. 타고난 노안에 군복을 더하니 그럴 법도 했다. 임관 직전까지 활발하게 생활했던 학부 시절 캠퍼스를 생각하며 기대했던 대학원 생활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비주얼을 가진 내 모습으로 인해 꽤나 다른 양상으로 시작됐다.


(다음 화 예고) : EP4. 정치외교학과가 만들어준 무형의 가치

keyword
이전 03화EP2. 우여곡절을 뚫고 간 첫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