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원하는 교대원생]
[EP4. 정치외교학과가 만들어준 무형의 가치]
“문송합니다.”
우리 세대는 공감할만한 말이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문과다.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며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지만, 사실 나는 거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문과로 가기로 정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수학에 흥미와 재능을 보이지 못한 것에 더해, 소위 ‘문과적 역량’으로 분류될만한 발표나 글쓰기, 독서와 같은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
더군다나 우리 가족 구성원은 모두 문과스러웠다. 아버지는 의심의 여지조차 없이 문과였고, 어머니도 불어교육을 전공하신 문과였다. 누나도 나와 비슷했다.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흥미보다 인문 사회 계열을 조금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과적 사고방식이나 역량 계발보다 문과적 역량 계발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문과가 됐다.
고등학생 시절 학생회장의 경험과 당시 법과 정치라는 과목을 흥미롭게 배웠던 기억, 2016년 당시의 혼돈스러운 국가적 정치 상황에 대한 관심은 나를 수많은 문과 중에서도 사회과학 분야의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하도록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정치외교학과가 정말 잘 맞았다. 우선 그토록 고대하던 대학 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거기에 더해 내가 진학한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분위기가 나와 잘 맞았다. 선ㆍ후배간 관계가 굉장히 끈끈했고, 수업 중에도 일상적인 술자리에서도 여러 분야의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듯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공부하는 과목들도 대체로 잘 맞았다. 내 주변 같은 과 동기나 선후배를 만나다 보면, 정외과가 잘 맞았다는 부류와 잘 맞지 않았다는 부류로 나뉜다. 그중 잘 맞지 않는다던 이들은 보통 복수전공이나 전과 등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새롭게 도모하기도 했다. 나는 굉장히 잘 맞았던 부류에 속했다. 정치사상, 정치경제, 정치의 역사, 정치와 법, 북한과 통일, 개발 협력 등의 수업들은 내가 흥미롭게 배울 수 있던 강의들이었다. 그중 정치사상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내가 윤리교육전공으로 교육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던 가장 큰 계기 중 하나가 됐다.
대학 생활과 학과에 대한 만족은 약간의 고집스러움이 되기도 했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을 정면 반박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청년 취업의 어려움이 많던 시기에, 현실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문과가 세상을 이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대적 상황에 맞서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눈앞에 졸업과 취업을 맞닥뜨리니, “문과는 어느 과에 있든지 돌고 돌아 취업 시장에서 다시 만난다.”던 통설이 피부에 체감됐다.
대체로 취업에 필요하다는 자격증과 역량을 키우는 데 있어 문과는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전문직으로 갈 수 있는 자격증을 대학 졸업과 연계해 취득할 수 있도록 마련되지 않았다. IT 역량을 인문이나 사회 과목들과 연계해 발전과 혁신을 도모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발표하고 토론하고 글 쓰는 것은 나의 취업에 도움을 줄 가시적인 것으로 내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다른 동기나 선후배처럼 전략적이지도, 지혜롭지도, 부지런하지도 못했다. 학과 생활에 대한 애정과 미련 때문인지, 정외과와 잘 맞다는 내 스스로의 위안 때문인지, 휴학 없이 졸업해야 한다는 ROTC 후보생으로서의 관습 때문인지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 모든 핑계를 나의 방패로 삼아 나는 다른 이들처럼 부지런하게 취업을 준비하지도, 타 전공 과목을 이수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입대했다. 나는 정훈장교가 못 됐기 때문에, 보병장교로서 내 전공을 살릴만한 일도 없었다. 당장 군을 전역하고나면 내가 가진 이력을 어떻게 살리고, 어떤 준비를 해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남들 앞에서 말 조금 잘 하는 것, 글 조금 끄적이는 것,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은 눈에 보일만한 유형의 역량이 아니어서 답답한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앞선 에피소드들에서 이야기한 과정을 거쳐 교육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다. 대학 시절 함양한 소위 ‘문과적 역량’은 대학원 과정에서 꽤나 쓸모 있었다. 우선 토론식 수업이 많았다.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수업이었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했던 성향이라 수업에 꽤나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과제와 시험도 대부분 레포트였다. 주제도 내가 평소에 관심 가지던 사상적인 측면이었다. 전공 서적을 읽는 것도 내겐 즐겁고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많으면 600페이지 정도가 넘어가는 전공 서적들이 한 학기에도 여러 권 주어지지만, 한번 발동걸리면 단숨에 읽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특히, 일을 병행하며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던 나에게는 최적화된 역량이었다. 시간이 남들보다 조금 없지만, 보다 효과적으로 내게 주어진 공부와 과제를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만큼 해냈다.
교수님들도 그런 나를 좋게 봐주셨다. 보통 군복을 입고 수업을 들으러 오면 대강 졸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지 나에 대한 기대가 적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토론 수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과제를 과제로 여기기보다 내 스스로 즐거워하며 만족스러운 레포트를 제출하려고 했던 나의 모습과 결과물 덕분인지 나에 대한 관심을 점점 보여주셨다.
그렇게 군 생활과 교육대학원을 병행하는 시간 속에 정치외교학과가 만들어준 무형의 가치가 빛을 발했다. 정량적인 역량으로 내게 뚜렷한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내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이 무형의 가치를 바탕으로 나는 교육대학원 생활에 스며들었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후에는 이 무형의 가치가 더 큰 보상으로 내게 다가왔다. 윤리교육전공을 배우는 2.5학기 동안 나는 소위 ‘문과적 역량’을 더욱 무르익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화 예고) : EP5. 부대 생활과 캠퍼스 생활의 온도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