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원하는 교대원생]
[EP5. 부대 생활과 캠퍼스 생활의 온도 차]
어디가 냉탕일지는 다들 짐작할 것이다.
내게 초반의 부대 생활은 냉탕이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분위기, 딱딱한 조직문화와 몰아치는 업무. 이해되지 않는 지시와 업무로 인한 고뇌와 여러 귀찮은 일들은 부대를 따뜻한 곳이라 느끼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점점 스며들 듯 부대만의 온탕에 젖어 들어갔고, 결국엔 온탕에서 제대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목욕탕에서도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피로를 풀 듯, 신기하게도 온탕 같은 캠퍼스 생활과 냉탕 같은 부대 생활을 반복하며 상호보완적인 균형을 맞춰갈 수 있었다. 같은 옷, 경직된 조직문화, 공무적인 업무처리 방식이 있는 부대 생활만 할 때는 그저 경직된 채 살아갔다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모여 유연한 토론의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주제를 가지고 관심 있는 학문을 습득하는 캠퍼스 생활이 병행되자 열 전도가 일어나듯 균형이 맞춰졌다.
캠퍼스 생활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부대 일정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일의 양은 똑같았다. 아니 더 많아졌다. 하지만, 칼퇴하고 캠퍼스로 향하기 위해 먼저부터 업무 처리를 예상해 준비하기 시작했고, 효과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지휘관께 신뢰를 쌓아가고,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때로는 내가 효과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캠퍼스로 향할 수 있도록 근무와 업무처리 방식을 조정할 수 있기도 했다.
부대 생활과 캠퍼스 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충 공부하고 치우는 것이 아니라 깊게 공부해야 했고, 과제와 시험도 꽤나 많았다. 육체적인 피로는 더해질 수밖에 없는 병행이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온전한 균형을 이루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군 조직의 특성상 상명하복하며 질문보다는 실행이 우선되던 생활에서, 의문을 가지고 자유롭게 질문하며 토론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시간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 되었다.
보통 수업을 마치면 밤 9시쯤.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수업을 들어 드라이브 스루 등을 이용해 끼니를 해결하고 부대 옆 관사로 도착하면 9시 50분쯤이었다. 다시 조명조차 잘 들지 않는 산 속 부대로 복귀하지만, 그것마저 나에겐 즐거움이었다. 관사에서 통학하는 대학원생이라... 썩 힙(hip)해 보였다.
3~4월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부대의 모습은 ‘내가 군대에 있구나.’라는 마음을 들게 해주는 풍경이었다. 퇴근 후 도착한 경북대학교 캠퍼스는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던 대학 시절을 연상케 해주는 풍경이었다. 같은 시기, 30분 내의 비슷한 위치였지만 나는 하루를 둘로 나눠 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의 삶이 다른 하나의 삶을 효과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토론 수업 시간에 군대 예화를 들어 윤리학적인 입장을 밝히는 일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이야기할 때, ‘행복한 서구대대’를 슬로건으로 삼은 우리 부대를 예로 들기도 했고, 교사로서의 고민을 나눌 때, “선생님들이 고민하며 정성스럽게 키워 사회인으로 만들어주시지만, 실상 군대에 오는 순간 다시 퇴보하는 듯한 모습도 보게 된다.”며 말을 시작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첫 학기 레포트는 ‘도덕심리학의 이론과 軍 인성교육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작성해 A+을 받기도 했다.
일 병행 대학원 생활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걱정 어린 시선도 있었지만, 내 스스로 평가하기에는 일도 대학원 생활도 200%로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대학원 생활이라는 돌파구가 생기니 일도 더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부대 생활이 있다 보니,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안정된 상태에서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원 성적도 자연스레 잘 나왔다. 성적장학금도 탈 수 있었고, 거의 올 A+에 가까운 성적을 얻었다.
그냥 두면 냉탕, 온탕으로 각각 존재했을 부대 생활과 캠퍼스 생활을 병행하자, 불안하던 내 마음도, 내 삶의 방향도, 적절한 중탕을 이루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 화 예고) : EP6. 유례없을 친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