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군복 면접 치트키

Let's be hugged to 안기자

by 안이오

[Prologue. 군복 면접 치트키]


“대대장 생각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원훈련 이틀 전, 서류전형 합격 소식을 전달받았다. 주말을 쉬고 나면 코로나 이후 대대에서 진행하는 첫 동원훈련이 시작되는데, 공교롭게 그날 시험과 면접 일정이 잡혔다. 휴가 일수는 넉넉했지만, 동원훈련에 인사과장이 휴가를 낼 수 있는 분위기는 당연히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조심스레 지휘관의 선의에 기대보는 수밖에.


대대장님께 주말에 문자를 드렸다. 여차저차한 사안으로 점심 후 잠시 면접을 보고 와도 될지 여쭈었다. 곤란해 하시던 지휘관은, 선의를 베풀어주셨다. 단, 내가 모시는 지휘관의 스타일대로 선의를 베푸셨다. 점심 식사 후 동원훈련 진행에 필요한 추가 물품을 구입하러 영외로 나가 시내에 있는 업체에 들릴 필요가 있었다. 해당 물품을 수령하는 임무 중간에 시험과 면접을 빨리 마무리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선택지는 그것뿐이었다. 지금이야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때는 정말 절박했다. 전역이 코 앞, 대학원은 아직 1년이 남았고, 대구에 남아 있을만한 명분은 없는데다가, 씀씀이는 커지고 나의 200만원짜리 아반떼는 늘 배고파했다. 주말 간 스터디카페에서 거의 밤을 셌다. 구술 평가와 면접을 준비했다.


동원훈련 시작 당일, 새벽같이 출근했다. 동원물자들을 부대에서 실고, 동원훈련장으로 향했다. 인사과장에게 주어진 인도인접 준비 등의 임무를 모두 마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동원훈련을 준비하다가 오전이 다 갔다. 슬슬 예비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모든 등록을 마칠때쯤 부대 간부들도 하나 둘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할 때, 나는 대대장님께 슬쩍 말씀드리고 자차를 끌고 영외로 나섰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앞으로의 일정을 되새겼다. 얼른 모든 면접 일정을 마치고, 물품을 수령해서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야 했다. 온전히 시험과 면접을 준비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사단 위병소를 통과한 뒤로, 동대구역 인근에 위치한 신문사까지 약 30분. 그때의 감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주 쨍한 봄 날씨에 군복을 입고 취업을 위한 면접을 보러가는 기분이란, 내심 설레는 부분도 있었지만 걱정이 앞섰다.


주차를 해두고, 신문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입고 있는 전투복을 가다듬고 고무링으로 바짓단을 확실히 조이는 것 등이었다. 옷 매무새를 잠시 가다듬고, 신문사 사무실로 들어섰다. 적어도 60세 정도로 생각되는 분 다섯 분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시험장을 안내해주시며 곧장 그곳으로 들어오셨다. 그분들은 본사 사장님, 대구지사장님, 논설위원님 두 분, 광고국장님이었다.


결과적으로 군복을 입고 면접을 본 것은 너무 좋은 반응이었다. 우선, 대구경북지역 언론사의 특성상 정치적 보수의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이 면접을 보셨기에 군복을 갖춰입은 젊은 장교의 모습은 신박함을 줬던 것 같다. 군복을 입고 면접에 들어가는 것을 내심 걱정했던 나를 달래시듯, 군복을 입고 면접을 가는 것이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고 말하셨던 대대장님의 말씀이 맞다고 느껴졌다.


시험과 면접에서는 꽤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정치, 경제-노동분야, 사회 등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분들에게는 내가 인천 사람인 것이 걸리신 모양이었다. 금방 회사를 떠나지는 않을까 의심의 눈초리로 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하셨다. 마음 속으로는 뜨끔했으나, 그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꼭 이곳에서 오랫동안 배우며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면접을 모두 마치고, 훈련에 필요한 물품을 수령하고 다시 부대로 향했다. 부대로 향하는 그 길이 참 짧게 느껴졌다. 내가 면접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시 떠올려보다보니 약간은 상기된 상태에서 다시 동원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점심을 안먹었지만 상기된 상태여서 그런지 배도 안 고팠다. 그저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 바쁜 동원훈련 임무를 담당하며 면접을 보고 왔다는 사실을 잠시 잊기도 했다.


2박 3일의 동원훈련을 마치고, 부대에서 훈련 후 정비를 하고 있을쯤 합격 문자가 왔다. 감사하게도, 전역 일을 고려하여 7월 1일 자로 첫 출근할 수 있게 배려도 해주셨다. 급한 불을 끄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듯, 그간의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첫 취직 성공의 기쁨이 찾아왔다. 그제서야, 말년 중위로서의 삶을 조금이나마 누릴 준비를 시작했던 것 같다.


(다음 화 예고) : EP1. 대구-포항 출퇴근과 수습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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