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대구-포항 출퇴근과 수습일지

Let's be hugged to 안기자

by 안이오

[EP1. 대구-포항 출퇴근과 수습일지]


전역을 한 달 반 앞두고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제서야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차근차근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남은 한 달 반 동안 군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남은 휴가를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우선 방을 구해야 했다. 혼자 지낼 수만 있으면 되는 저렴한 방을 알아보고, 계약해야 했다. 그 모든 일정을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마치고, 쉬는 날 하루를 잡아 이사까지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약 15일 정도 되는 휴가를 알차게 보내고 올 생각이었다.


바빴지만, 의미있게 계획대로 진행됐다. 대학원생이었기에 주차 문제와 통학을 고려하여 경북대 근처에 작은 방 하나를 구했다. 이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짐을 싸놓고 있을쯤, 부대에서 작계훈련을 위한 총기 이송 차량을 운행해주시던 기사님이 나와는 인연이 없지만 예전에 나와 같은 부대에서 군무원으로 일하셨던 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상으로 나의 짐을 옮겨주시기도 했다. 은혜를 한번 더 입었다. 15일 동안 후회없는 휴가 일정을 보내고, 기억에 남는 전역식을 짧게 진행한 뒤 다시 인천으로 올라갔다. 6월 30일(금) 전역을 하고 인천으로 올라와, 토요일과 일요일을 본가에서 보내며 바로 출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 대구에 구한 자취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바로 다음 날 7월 3일(월)부터 포항본사로 출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자취방에서 포항 본사까지는 편도 약 5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설렘반 걱정반으로 잠에 들었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준비를 하고, 정장을 챙겨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출근길을 나섰다. 출근 길은 예술이었다. 아침 해가 돋을 때쯤 동쪽 바다를 향해 내달리고 있는 고속도로의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불과 몇일 전까지만 해도 군인이었던 나였는데, 이제는 당장 기자로 불린다는 그 설렘도 아침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요소였다. 항상 출퇴근하던 팔공산 자락을 넘으며 일출을 보고, 뻥 뚫린 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푸르른 산 풍경과 포항에 도착할쯤 보이는 바다 풍경이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었다.

같이 군 생활하던 동기가 내 자취방에서 함께 자고 아침에 각자 출근하며 찍어준 포항으로 출근하는 모습.

하지만, 넉넉할 수 없었다. 첫 출근, 새로운 시작, 어쩌면 진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것이기에 두려운 마음도 컸다. 장교 출신에 대한 기대를 져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보다 마음을 단디 먹었다. 본사에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을쯤 제일 먼저 도착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시는 부국장님이 오시자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명, 두명 점점 출근하는 분들이 늘고, 그 속에서 조용히 앉아있는 내 모습이 매우 어색했다. 점호를 기다리는 이등병의 자세처럼 바짝 긴장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그래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첫 사회부 회의가 시작되고, 선배들과 부국장님께 인사를 드리게 됐다. 앞으로 포항 본사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에는 선배들을 한 분씩 따라다니며 출입처 행동 요령을 배우고, 집배신 프로그램 사용 방법과 기사 작성 등을 배우기로 했다. 사회부 회의를 마치고, 잠시 본사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게 됐다. 사장님께서는 이제 군인 아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 또 잘 적응해서 해내길 바란다고 당부하셨다.


처음 선배를 따라 포항 거리를 돌아다녔다. 조금만 나서면 영일만 해수욕장이 보였고, 출입처 사람들과 먹는 점심 식사는 보통 물회였다. 그 유명한 포항 물회를 낮부터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산 골짜기에서 군 생활을 하던 내가 이제는 바다 근처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게 때로는 믿기지 않았다. 하루 이틀 본사로 출퇴근을 하며 조금은 편한 분위기에 적응하게 됐다. 선배들과도 꽤 유의미한 대화들을 주고 받았고, 많은 선배들이 이뻐라 해주셨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 속에 묻어있는 깊은 정이 그때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출근한 지 이틀 차, 아침부터 선배를 따라 경찰서로 향했다. 사회부 기자의 하루 일과는 아침부터 경찰서를 방문해서 사건 사고가 없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우리 회사 선배기자들이 출입하며 좋은 관계를 맺어놨던 터라 방문하는 것이 부담없다고 말씀해주셨다. 막상 선배와 함께 경찰서에 도착하니 그날은 사뭇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선배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이상하다며 중얼거리셨고, 형사과로 들어가 선배는 평소처럼 능청스럽게 반기는 기색이 1도 없는 형사들을 상대로 무슨 일 없었냐며 질문을 했다.


선배와 대화를 나누던 형사팀장은 대화하는 것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그 옆에서 듣고 있던 형사팀 소속 경찰 한 명이 꽤 강한 말투로 “기자가 대수냐. 나가라.”고 말했다. 선배도 꽤 당황하셨고, 나는 속으로 신고식 몰래카메라는 아닐지 당황해하며 상황 파악에 나섰다. 몰래카메라가 아니었고 실제 상황이었다. 그렇게 문전박대를 당한 것이 나의 첫 경찰서 방문 경험이었다.


그 이후, 첫 수습 일지를 작성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첫 일과였다. 그날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나의 첫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수습일지를 정성 들여 작성해보았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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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자가 대수냐!”

‘인턴기자’라는 직책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선배를 따라 경찰서를 출입했을 때 들은 말이다. 신입을 환영하기 위한 몰래카메라의 발단인지, 실제상황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다. 출근 후 첫 주가 마무리되는 목요일 오후에도 위의 장면은 생생하다.

첫 수습일지를 작성하며 그 장면을 되돌아보니, 감사하다. 기자라는 직업의 길로 이제 막 발을 내딛는 내게 경각심과 사명감, 그리고 자부심을 함축적으로 체득하게 해준 장면이기 때문이다.

7/6(목) 오전 간단한 사회부 회의를 시작으로 000, 000 선배를 따라 남부경찰서를 출입하기 위해 나섰다. 오늘은 000 선배기자를 따라서 선배의 출입처를 함께 돌며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아버지뻘 되는 경찰서 계장/팀장님과 식사 및 차담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을 포함하여 약 4일 간, 사회부 국장님을 비롯하여 세 명의 선배 기자들을 따라 여러 사람을 뵙고 인사하는 자리가 오전의 주 업무였다. 능숙하게 어른들과 대화하고, 자연스럽게 출입처를 드나드는 선배들을 보며 나는 언제 저런 여유를 가지고 ‘기자답게’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선망했다.

“기자가 대수냐!”라는 불만에 굳이 대답하자면,

“대수가 맞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기자로서의 자신감과 ‘갑’으로서의 대우를 기대하는 태도를 구분하라고 하신 국장님의 말씀과, 정의·진실·약자의 편에 함께 서자는 어제 만난 형사팀장님의 말씀, 선배 기자들을 따르며 느낀 ‘기자다움’의 책임감은 기자의 일이 ‘대수’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첫 경험이었다.

대수로운 기자의 일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교만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초심을 가지게 된 2주였다. 내가 따라다닌 선배들처럼 비판과 칭찬의 적절한 균형감을 가진 기자, 능글맞으면서도 예의 바른 기자, 자신감이 엿보이면서도 남을 높일 줄 아는 기자가 되고 싶다. 그런 기자는 대수가 맞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기자로서 할 줄 아는 것은 아예 없지만, 마음가짐과 태도를 단단히 배울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첫 주간이었다. 이 초심을 잃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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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스펙타클하던 포항 본사 출퇴근이 익숙해지던 즈음이었다. 원래는 포항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4주 정도로 계획됐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한시간을 운전해 출근하고, 여섯시 이후 또 한시간을 운전해 대구로 퇴근해 그대로 쓰러졌다. 그런 삶을 반복하던 중, 하루는 퇴근 길에 타이어 펑크가 났다. 부랴부랴 보험을 불러서 조치하고 집에 도착하니 9시쯤 됐다. 바로 자고 다시 새벽에 포항으로 가야하는 일정에 체력적으로는 지치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주신 것인지, 2주차쯤 됐을 때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대구본부로 출근하도록 지침이 내려왔다. 포항 본사에서는 혹시 본사에서 근무할 마음이 없는지 물어보셨지만, 나는 대학원 생활과 이미 구한 자취방 핑계를 강하게 어필하며 대구본부로 출근하고 싶다고 말씀을 전했다. 그렇게 포항과 대구를 오가는 왕복 두 시간의 출퇴근을 마쳤다.

포항 영일만 앞 도로에서 열린 신문사 주최 마라톤대회 풍경. 나의 첫 취재기사 작성도 이 마라톤대회에서 시작됐다.

2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본사에 계신 많은 선배들과 꽤 많이 친해져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아름다웠던 포항 바다와 흔히 먹을 수 있는 물회를 떠나보내기가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화 예고) : EP2. 아직은 군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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