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아직은 군인정신

Let's be hugged to 안기자

by 안이오

[EP2. 아직은 군인정신]


기자로서의 마음가짐이나 ‘기자정신’을 확립하진 못했다. 전역 직후 신문사에 출근한 나는 사실 기자보다 군인이 어울렸다.


군인일 때는 최대한 군인답지 않으려 했는데, 막상 전역 후 첫 취직한 장소에서는 여지없는 군인 같다는 생각을 나 스스로도 하게 됐다. 군인 때도 없었던 군인정신이 왜 기자를 시작하는 시점에 생겼는지는 관성의 법칙때문인지 군대에 대한 향수였는지는 모르겠다.


대구와 포항을 오가는 출퇴근을 마치고 대구본부로 첫 발령을 받았다. 아직 회사 출입 지문도 등록되지 않은 상태여서 선배들이 출근하지 않은 시간에 도착해 건물 밖을 서성였다. 신문기자는 보통 일~목으로 주 5일을 근무한다. 기자는 출입처를 배정받아서 각자가 담당하는 출입처와 관련한 내용을 기사로 쓴다. 하지만 출입처는 월~금으로 근무하고, 신문은 월~금 아침에 보도해야 하기에 하루 전날 기사 마감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신문사들은 보통 일~목으로 주 5일을 근무하지만, 일요일은 배정된 출입처가 근무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오후 출근을 해서 실질적으로는 4.5일 근무한다.


내가 처음 대구본부로 출근하는 날은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평소보다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오전에 교회를 다녀온 후 회사로 향했다. 머지않아 선배들이 도착하고 상막한 분위기 속에서 첫 근무하게 됐다. 대구본부는 모두 남자로 구성됐고, 나를 제외한 선배들은 평균 연령 50대 정도였다. 첫 인사만 간략히 나눈 뒤 스스로 자리를 정리하고 컴퓨터를 설치했다. 경직된 자세로 앉아있다가, 어느정도 지면 기사가 마무리되자 잠시 회의를 진행하신다고 했다.


처음 선배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사를 드리고, 특유의 경상도 남자들의 대화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려 해주신 것 같지만, 쉽게 편해지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부대 이야기밖에 할 이야기가 없었다. 군대 전역 후에 다시 군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심지어 그 부대가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구의 부대였기에 여기가 부대인지 신문사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일주일 정도는 별도로 출입처를 돌지 않고 내근을 하시는 지사장님께 직접 기사 작성 훈련을 받기로 했다. 그간의 일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다뤄보려 한다.


몇 주가 지나고 다시 일요일, 기사를 마감한 뒤 기획회의를 하는데 그 주에는 수능 D-100일이 있는 날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본부장님께서 수능 100일 전 갓바위에서 기도하는 사진이라도 찍어오라며 약간은 농담 섞인 아이디어를 나에게 던져주셨다. 사실 아직도 헷갈리긴 한다. 그것이 진심이었을지, 농담이었을지. 특유의 경상도식 화법에 지금껏 곱씹어봐도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막내 인턴기자가 “No”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무언가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을 드렸다. 기자정신이라기보다는 군인정신이었다. 복명복창하며 수능 D-101일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해 차를 타고 내가 근무하던 부대 근처 갓바위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산 속에서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마지막 부근에 다다르니 고라니 한 마리가 날 쳐다봤다. 고라니도 라이트 켜진 내 차를 가만히 멈춰 뚜렷하게 쳐다봤고, 나도 잠시 멈춰 고라니가 얼른 사라져주길 기다렸다.


그리고는 그냥 휴대폰 하나 들고 갓바위로 올랐다. 동이 틀 무렵, 몇몇 기도자들이 갓바위 앞에서 절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심지어 수능 D-100일도 아닌데다가, 사진기자처럼 보일만한 카메라가 있는 상태도 아니어서 휴대폰을 들고 기도하고 있는 분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기란 퍽 난감했다. 그래도 어쩌랴 동이 틀 무렵에 맞춰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군 생활 때도 힘든 일 다 했는데, 이거라도 못할쏘냐.’


혼자 생각하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일찍이 올라온 김에 동이 트는 사진을 찍어 대구본부 단톡방에 올리며 일출의 기운을 전했다. 결과적으로 사진과 기사는 실리지 않았다. 사진도 이상했고, 사실 수능 100일 전 풍경은 매년 나오는 기사였기 때문에 나의 수고와 상관 없이 기사로 반영될 수는 없었다.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 근무하던 부대를 지나고, 거주하던 관사를 지날 무렵, 같이 근무하던 작전과장님이 아침 런닝을 하다가 마주치게 됐다. 잠시 차에서 내려 근황을 나눈 뒤, 다시 집으로 향해 옷을 갈아입고 신문사로 출근했다.


이때까지도 기자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기자정신이란 무엇인지는 전혀 몰랐다.

그저 시키면 하는데 익숙해진 전역 장교의 찌질한 군인정신으로 하루하루를 근무해나갔던 것 같다.











(다음 화 예고) : EP3. 애송이 인턴기자와 하드 트레이닝

keyword
이전 02화EP1. 대구-포항 출퇴근과 수습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