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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오 Sep 10. 2022

Prologue. ROTC를 할 운명

[Prologue. ROTC를 할 운명]


“다시 돌아가면 ROTC 한다 안한다, 하나 둘 셋?” 

“…안한다!, 아 아니 한다!”     


내게는 물어볼 때마다 대답이 달라지는 질문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장교로 복무중인 25살 남성이다. 대학교를 다니며 ROTC를 지원해서 대학생과 장교후보생 신분으로 무사히 졸업을 하고, 지금은 대구에 있는 모 부대에서 복무중이다.     


ROTC가 뭐냐고? 나도 잘 모른다. 약자를 검색하면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이렇게 나오긴 하는데, 그동안 귀찮아서 안쳐보다가 지금 글 쓰면서 처음 검색해봤다. 고전 드립으로 ROTC를 ‘로터리 오락실 테트리스 챔피언’이라고 하기도 하던데, 왠지 모르게 이미지가 비슷하게 겹치는 거 같기는 하다. ROTC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3~4학년 때 장교후보생으로서의 교육과 훈련을 병행하여, 졸업 후 장교로 임관하도록 하는 장교양성제도이다. 통상 대학교 1~2학년 때 지원하여 3학년을 시작하는 겨울 방학에 ‘기초군사훈련’을 입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3학년 1학기가 시작되면 곤색 계열의 정복을 입고, 007 가방을 들고, 베레모를 쓰고 캠퍼스를 누비는 이들이다. 이들은 전공, 교양 학점을 이수하는 것과 동시에 군사학 수업을 수강한다. 그리고 다시 방학이 찾아오면, 괴산에 위치한 학생군사학교에 입교하여 장교가 되기 위한 교육훈련을 받고 돌아온다. 이 삶을 4학년까지 반복하면,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의 계급장을 달고 임관을 하게 된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장교랑 어울리지 않는다. 게임을 즐겨하지 않아서 그 흔한 ‘서든어택’도 잘 안했기 때문에 군대 계급 체계도 사실 잘 몰랐다. 아버지도 방위 출신이시기 때문에(아빠 죄송해요 ㅜㅜ) 나의 성장 환경에서 군과 관련된 일반적인 상식을 함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군을 이끌고 주도해야하는 역할이 장교라고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나는 장교와 어울리지 않았다. 또, 마음이 여린 편이다. 눈물도 많은 편이고. 글을 쓰면서 점점 더 장교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운동이야 뭐 스포츠를 워낙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긴 했지만, 몸이 막 우락부락 하거나 체력적으로 뛰어나서 “나를 따르라!”라고 할 만 한 이른 바 ‘장군상’은 더더욱 아니다. 마르고 비실해보이는 체격도 장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ROTC를 할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ROTC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1학년 때부터 지원을 한다. 1학년 때는 경쟁률이 낮은 편이고, 군 복무에 대해서 일찍 방향을 정해놓고 여타 다른 준비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토록 꿈꾸던 ‘그놈의 대학생활’에 정신없이 몰두해서 1학년 때는 후보군으로 올려놓고 고민만할 뿐 지원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당시에 ‘수시반수’도 지원을 하려고 했던 상황이고, 남들과 비슷하게 1학년 대학생활을 마치고 입대해서 빨리 제대하여 복학하는 것을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1학년을 마칠 당시에 내가 사랑하는 우리 학과에서 학생회장이 공석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학생회장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당선이 되었다. 군대를 가더라도 1년 임기를 마치고 2학년 말이나 3학년 초에 입대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군 복무를 계획하는 데에 있어서 ‘또래보다 늦게 입대하지 않는 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용사로 입대하는 것을 후순위로 밀게 되었다. 또 당시 이러 저러한 상황이 겹치면서, ROTC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ROTC를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중학교 시절 ‘장교로 복무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기억이 났다. 내가 좋아하고 잘 따르던 중학교 체육선생님과 수학선생님이 ROTC 출신 선생님이셨는데, 그 분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당시 그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당당함’, ‘여유로움’, ‘재치있음’과 같은 속성들이 부러웠고 멋있어보였다.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어서 선망했던 것 같다. 갑자기 떠오른 학창시절의 기억이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당시의 상황과 겹치며 ‘ROTC를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을 먹고 지원했지만, 별다르게 준비한 것은 없었다. 대입 때 활용되었던 생활기록부를 제출하고, 대학교 1학년 성적증명서를 제출하고, 지원동기 등과 같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리고 준비 없이 적성검사와 비슷한 필답고사를 봤고, 체력측정을 했다. 그리고 목소리나 자세 등을 포함해서 가치관 등을 물어보는 면접을 지나 얼떨결에 학군사관 후보생으로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게 되었다.     


이 순간부터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통해 “다시 돌아가면 ROTC 한다 안한다, 하나 둘 셋?”이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질문은 그때그때 달라졌었다. “절대 안한다.”, “아 용사로 가는 게 무조건 이득임”이라고 대답했을 때도 있고,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괜한 자존심 때문인지 “난 다시 돌아가도 지원 할래”라고 당당한척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찾아낸 내 대답은, “…안한다!, 아 아니 한다!”이다.      


난 어차피 ROTC를 했을 것만 같은 사람이다. 그걸 이제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장단점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단점이 먼저 떠올라서 “안한다”를 먼저 내뱉지만, 이면에 있는 내게 장점으로 다가오는 요소들을 생각하며 “아 아니 한다!”라고 번복한다.     


100% 결정을 만족하지는 않지만, 나는 높은 퍼센트로 나의 선택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ROTC를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드리니, 그 때의 선택으로 시작된 지금의 삶을 보다 만족하며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그 선택 이후의 삶을 여러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나눠볼까 한다.     


(다음 화 예고) : EP1. 폐급 장교후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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