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자리에서 함께 서는 사랑
우리는 서로의 가장 잔인한 모습까지도 보았다.
몇 번은 정말 끝이라고 생각도 했다.
내가 처음으로 이별을 말한 건 '수영장 사건'이었다. 우리는 수영장에 다니는 것을 문제로 가볍게 다퉜다.아무것도 아닌 문제로도 관계는 금세 위태로워진다. 계속해서 말다툼을 하다보면, 쉬워보이는 것도 어렵게 번진다. 그 날을 기점으로 그와 나는 이별이 더 쉬워졌다. 감정이 격해질때마다 서로는 갈라짐을 택했다. 침묵이 우리를 집어삼키는 날도 많았다. 그 침묵은 때때로 내겐 버려짐 같았다. 나 자신이 부서진 느낌이 들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관계 해체 위협'이라고 부른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툼은 필연이다. 좋은 순간 만큼이나 힘이 들기도 한다. 우리처럼 관계가 자주 흔들리고, 쉽게 상처 입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까지 무너진 관계는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토록 지치고 고단한 순간에도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고통이야말로 진짜 사랑일까?
“사랑이란 고통의 기꺼운 수용이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사랑이란 행복을 약속하면서 그 약속이 끊임없이 지연되고 좌절되는 과정이다.”
-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에리히 프롬의『사랑의 기술』에서는 “사랑은 희생과 고통 없이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위 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 고통·결핍·불행과 분리될 수 없고, 오히려 불행이 사랑의 크기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나또한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랑이란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과 불행을 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행복하지 않다면 피하고자하는 본성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본능까지도 이기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에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이 허다한 것이 그것의 반증이다. 상식적으로 인간은 고통을 피하려 한다. 그런데도 사랑에선 본능마저 거스른다. 종종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어준다.
사랑은 마냥 깨끗하게 유지될 수 없다. 행복하게만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배우게 된 것도, 무너진 날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싸움과 불행은 관계를 더 성장하도록 만드는 기폭제다. 정말 아무리 힘들고 지쳐 무너지더라도, 상대가 있어야 사랑은 존재한다. 그리고 오직 사랑만이 그 모든 불행을 감당할 수 있다. 그와 나는 더이상 다툼이 무섭지 않다. 힘들고 지친 감정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겼음에 감사하다. 이렇게 그의 침묵은 표현으로, 나의 불안은 침착함으로 바뀌었다. 그날 수영장으로 돌아가면, 이제 우리는 다시 웃을 수 있다.
그와 내가 무너진 순간부터
우리는 더 큰 사랑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야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