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시작한다는 건, 전부를 거는 일

그 사람을 사랑한 순간, 나는 나를 내놓았다.

by 단여름

왜 우리는 사랑 앞에서 이토록 무모해지는 걸까?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누군가에게 모든 걸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머물고 싶었던 순간이 있다.


그날, 그의 눈을 마주치며 속으로 되뇌었다. ‘지금 이 사람이라면, 내 모든 걸 걸어도 되겠다’라고. 그가 나를 위해, 나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내게 달려왔을 때. 그때였다. 내가 전부를 걸 수 있겠다고 느낀 순간.


I never loved nobody fully

나는 누구도 완전히 사랑하지 않았어

always one foot on the ground

항상 한 발은 땅에 디디고

and by protecting my heart truly

내 마음을 진심으로 보호하려 했어


Regina Spektor의 "Fidelity"라는 노래에서는 이런 가사가 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의 나는, 사랑을 해도 도망갈 준비를 늘 해두었다. 춤을 추면서도 언제든 발을 뺄 수 있게 말이다. 상대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날 내 생각은 달라졌다. 그는 이제 곧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다. 가족의 기대를 잔뜩 받고 있는 모범생이기도 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그 길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나라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가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 나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전애인에게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받고, 네 번이나 수능에 실패한 4수생이기도 했다. 그는 이런 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에게 왔다. 학기중인 그가 모든 강의를 내던지고 내게 왔다. 가족들의 원성과 미움을 잔뜩 받으며 내게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곁에 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두려웠다. 그가 다가올수록, 나는 나를 더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고 고민해왔다. 아마도 내가 줄 수 있는 건, 내 전부를 거는 것. 나라는 사람을 그에게 주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랑이란, 나를 잃는 게 아니라 나를 내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를 희미하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곁에 내가 머물 수 있는 자리를 기꺼이 비워두는 것. 사랑은 하나의 공간에 둘이 억지로 들어서는 일이 아니다. 대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조금씩 비워내고 열어주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조금씩 내어주며 하나의 풍경이 되어간다. 때로는 자존심을 접어야 하고, 방어기제를 핑계 삼아 쏟아낸 말들을 다시 되돌아봐야 한다. '이건 나를 지키기 위한 말이야'라고 외치던 순간들 속에도, 사실은 사랑을 밀어낸 책임이 숨어 있었다. 김창옥 강연가는 말했다. “내가 기꺼이 손해를 봐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라.”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사랑은 이득을 따지는 일이 아니고, 더 많이 주는 쪽이 지는 게임도 아니다. 내가 다치더라도, 마음이 조금 상처나더라도, 자존심이 무너지더라도, 기꺼이 마음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랑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결국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언어가 된다.


어떤 사랑은, 삶을 걸어도 아깝지 않다.


나는 그 사람 안에서 작아지고 싶었다. 아주 작아서, 그의 숨결과 같이 머무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그의 삶에 응당 존재해야 할 하나의 숨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것을 그에게 주어야 한다. 나는 모든 일을 그에게 솔직하게 다 말했다. 비참한 감정, 숨기고 싶은 과거까지도 전부 내주었다. 자존심이라는 것도 내던지고 회피하는 그의 모습까지 붙잡았다. 나를 없애는 게 아니라, 나를 그에게 모두 주었다. 나는 그의 세계 안에서, 나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건 그와 나의 세계에 있어 '합일'이라고 부른다. 나의 세계에는 그가 있는 것. 그의 세계에는 내가 있는 것.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정의하기로 했다.


사랑은 계산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까지 가지 못한다. 그저 전부를 거는 사람만이 끝까지 남았다.


나는 지금도, 우리가 만든 세계에 머문다. 끝까지 사랑한 사람이 머무는 자리에서.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자리는, 전부를 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