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헤세 <황야의 이리>
* 한 시간만 성찰해 보고, 잠깐만 자기 자신에 침잠해 들어가, 자기 자신이 이 세상의 무질서와 악행에 얼마나 동참하고 있는지, 얼마나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하는지 자문해 보는 것, 아무도 그걸 하려고 들지 않는단 말이야!
*하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의 인간을 두 영역으로 나누어 인간 쪽으로는 모든 정신적인 것, 승화된 것 혹은 교육받은 것, 이리 쪽에는 모든 충동적인 것, 야성적인 것, 혼돈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헤르만헤세 <황야의 이리>
나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현재의 ‘나’는 삶에 필요한 몇몇 모습들만 뽑아내어 성격을 형성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관들을
추려내어 나라는 ‘판’을 만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나의 모습들이 때로는 부족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만족하면서 그것을 개성 혹은 나의 정체성이라 여겼다.
*내 개성의 해체는 결코 편안한 일만은 아니었다. 반대로 이 일은 종종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쓰라린 고통을 수반했다. 새로움과 낡음, 괴로움과 즐거움, 두려움과 기쁨이 아주 절묘하게 뒤엉켜 있는 순간이 있었다.
*당신이 동경하는 저 다른 현실은 오직 당신 자신의 내면에만 있습니다. 나는 당신 속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당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개성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방해받고 미혹될 거에요.
당신의 개성은 당신이 들어앉아 있는 감옥입니다. 당신을 여기 초대한 건 당신의 훌륭한 개성을 여기
의상실에 벗어 놓게 하기 위한 겁니다.
<황야의 이리>
나의 개성이라 한다면, 나는 신중하고 엄격한 사람이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쉽지가 않다. 책임감이 강하고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내는 끈기가 강한 사람. 힘든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며, 계획대로 주체적으로 일하고, 혼자 결정하면서 실행하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책 읽고 글쓰고 산책하고 운동하고 주로 혼자 하는 일들을
선호한다. 일에서는 믿을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는게 좋다.
한편 이리의 영역에 있는 나는 소심하고 나약한 어린아이이다.
사람들과 적극적인 관계맺기를 어려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으면서 따스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하리를 닮은 내가 있다.
또 다른 이리의 모습으로는 본능적인 삶에 대한 억압이 있다.
내 안의 억눌린 본능은 무엇인가. 내면의 여유에서 비롯되는 삶,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 부르고, 때로는 춤추고 싶은 영혼의 자유로움이 있다. 그리고 부에 대한 갈망, 좋은 집에 살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질 좋은 물건들을 사용하고 좋은 차를 타고, 건강 관리를 위한 여러 가지 운동들을 하고, 외모를 관리하면서 더 젊음을 유지하고 싶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갈망이 그곳에 있다.
*춤을 추기 위해서는 쾌할함. 순수함, 경솔함, 감흥 같은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내게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처럼 수줍음을 잘 타고 까다로운 괴팍한 늙은이가 재즈 음악이 울리는 그 천박한 최신풍의 댄스홀에 들어가, 거기다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잘 출 줄도 모르는 춤을 주어야 한다니,
*축음기는 금욕적인 정신으로 가득 차 있던 내 서재의 공기를 더럽혔고, 낯선 미국풍의 춤곡들은 내 정돈된 음악 세계를 교란하면서, 아니 파괴하면서 밀어닥쳤다. 이처럼 모든 것을 해체시키는 두렵고도 새로운 힘이 지금껏 그렇게 정확한 윤곽을 지니고, 그렇게 엄격하게 폐쇄되어 있던 내 삶 속으로 밀려 들어온 것이다.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침묵과 인내와 책임감으로 살아온 나는 인생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
사실은 나의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서 벗어나 조금 더 새롭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건 분명하다. 그러니 살아온 관성대로 살지 말고, 생각도 다양하게 해보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바꾸어 보려 한다.
나도 내 인생의 춤을 출 수 있을까? 내 안의 명랑하고 쾌할한 순수함들을 다시 살려내어 좀 더 가벼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채스 말들을 가지고 전혀 다른 조합, 관계, 연관으로 이루어진 아주 새로운 판을 짰다. 모든 판이 대체로 비슷하고, 모두가 같은 세계에 속하고 같은 계통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또한 각각의 판이 매번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이 능란한 체스꾼은 나 자신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체스 말들로 계속 새로운 판을 짰다.
“이것이 삶의 기술이라오.”
“당신 자신이 인생이라는 판을 마음대로 짜고,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소.
헝크러뜨릴 수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오. 그건 당신 손에 달렸소.”
헤르만헤세 <황야의 이리>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들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나는 내 인생의 새 ‘판’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쓰고 있는 나! 이전의 나에게는 없었던 낯선 모습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나의 ‘판’에 다른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