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곡차곡 쌓인 추억속을 다니다

아이를 업고 동구밖까지

by 김미희랑여데레사

한겨울 추위를 피해 태국치앙마이 알파인골프텔에 묵고 있는 중이다.

골프장 행사 때문에 평소에는 걸을 수 없는 골프장을 산책할 수 있었다.


덕분에 깨끗이 단장된 코스를 걷는다. 녹색 잔디는 창연하고 파란 하늘에는 흰구름이 솜털처럼 흩뿌려져 있다. 잔잔한 호수 위의 물결도 숨죽인 듯 동요가 없다. 커다란 고니도 한가롭게 호수 주변에서 물 위를 바라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움직임이 없다. 바람도 잠시 숨을 죽였나 보다. '평화롭구나 평화로워' 내심 속삭였다. 이 아름답고 가슴 벅찬 순간에 오버랩되는 한 추억이 나를 부른다.




꿈 많던 처녀 시절, 노을 지는 석양에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창밖으로 멀리 있는 오두막 집이 보였다. 굴뚝에서는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변에는 잡초 하나 없이 잘 정돈된 텃밭에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차분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텃밭을 가꾸는 저 아낙은 서방님이 일터에서 돌아오면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고생했다며 가벼운 포옹도 할 것이라고 혼자 상상한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저렇게 사는 게 행복이 아닐까! 차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했었다. 어려서 주말이면 아버지와 함께 시골 할머니댁에 다니며 아궁이에 불도 지펴보고 불장난도 했다. 큰아버지가 고구마를 맛있게 구워주시면 얼굴에 검지분을 잔뜩 묻히며 먹었던 그곳이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골이 고향인 남편을 만났다.




결혼 후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처럼 우리는 미래(승진)를 꿈꾸며 섬마을 벽지로 들어갔다. 석유곤로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고 아궁이에 불을 피워 방을 덮였다. 석유를 아낀다고 갈퀴나무를 해다가 화덕에 불을 지펴 밥을 짓기도 했다. 전기 시설이 없어서 호롱불이나 촛불을 이용하여 밤을 지내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등에 아이를 업고 동구밖까지 나갔다. 퇴근해 오는 신랑을 기다리다 한 발 한 발 등뒤의 아이와 얘기하며 내디딘 게 마을어귀 밭에 까지 나와 있었던 것이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니 출근길에 우산을 챙기지 않고 나간 서방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그 시절은 전화도 없고 차도 없었다. 전화 한번 하려면 정해진 시간에 무선국에 가서 기다렸다가 육지에 전화를 하곤 했다. 산너머 학교에 근무하는 그이는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환했던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자 조마조마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른다. 그때 저 멀리 자전거를 타고 오는 신랑의 모습이 보인다. 다행이다. 안심이다. 나는 비로소 평안해져서 웃으며 다가간다. 마을 어귀에서 아이를 업고 기다리던 나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를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젊은 시절 우리의 모습이다.



평안함 뒤에는 항상 노력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섬마을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출산휴가가 딱 한 달이었다. 산전, 산후 포함이다. 3시간 배를 타고 나가야 친정인 목포에 갈 수 있는데 출산 일을 기다리기가 두렵고 무서웠다.. 퇴근하는 나를 보며 동네 어르신들은


- 김 선생, 뱃속의 아이가 많이 내려갔네.


- 곧 낳겠어하신다. 진통은 없었지만 겁이 나서 출산예정일 전에 휴가를 내고 목포 친정 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이는 나올 생각은 않고 출산휴가 날짜가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종일 걷기를 하고 몸을 움직이며 진통을 기다렸다.



다행히 일주일 후 출산하고 3주 후에 학교로 복귀했다. 그런데 수업 중에 젖에서 느낌이 온다. '찌르르' 젖이 딱딱해진다. 아이가 운다거나 배가 고파한다거나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모님이 아이를 업고 학교로 오면 잠깐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보건실에서 젖을 먹여 보내곤 했다. 힘든 육아와, 조금의 여유와 아량도 베풀어주지 않으셨던 그때 학교장의 권위등에 힘들어하며 근무했지만 퇴근 후 아이와 함께 가족이 모이면 행복 그 자체였다.




부모님이 특히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을 2년여 동안 설득하여 허락을 받았기에 더욱 소중한 우리의 삶이었다. 더 잘 살아 부모님 마음에 들고자 애썼던 때였다. 환경이 열악한 우리들의 섬생활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부모님을 쉽게 초대하지 못하다가 겨우 몇 년 만에 오셨는데 즐기지도 못하고 태풍주의보 때문에 하룻밤만 주무시고 바로 나가셨다. 평화롭던 바다가 하필이면 왜 그날 화를 냈을꼬, 지금 생각해도 서운하다. 흔들리는 배를 타고 가시면서 엄마는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



아침 산책 길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나를 추억 속으로 풍덩 빠지게 했다.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온 우리들이기에 노년의 여유를 즐긴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 아침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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