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죽과 줄줄이 사탕
성탄전야 밤미사를 몇 년 만에 참석했다. 치양마이를 가지 못한 덕분이다. 엿날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는 차를 두고 걸어갔다. 애들이 어렸을 때라 산타할아버지 선물이라고 예쁘게 포장하여 편지까지 넣어 자는 아이들 머리맡에 놓아두었다.
자가용이 없었을 때라 늦은 밤 눈 쌓인 골목길을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팔짱을 끼고 성당에 갔었다. 미사가 끝난 후 밖에 나오니 흰 눈이 펑펑 쏟아졌다. 교우들은 '메리크리스마스'와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서로 축하하고 껴안고 인사하느라 성당 앞 뜰이 시끌벅적 와글와글 웃음 가득이었다. 그때는 아일랜드 신부님이 주임신부님으로 계실 때였다. 신부님도 함께 기뻐하며 따끈한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오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숯불에 구운 닭발과 어묵 그리고 김밥 한 줄까지 맛있게 먹고 왔었다. 그 추억을 생각하고 얘기하며 성당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는 30대 지금은 70대이다. 그러나 그날 밤의 기억은 우리를 그 시간으로 안내했다.
-오늘도 미사 끝나고 오면서 동네 한 바퀴 돌아봅시다 했다.
어슴푸레한 빛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며 따끈한 어묵국물에서 피어오르는 김들이 그 안을 따뜻하게 했던 포장마차는 아예 없어졌으니 생각 속에 넣어두고. 메가커피집은 컴컴했고 스타벅스도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가게들 가락국수집도 분식집도 닫혀있었다. 마침 와플 가게가 환하게 보였고 한 사람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갔더니 클로즈가 걸렸고 보였던 한 사람도 사라졌다. 10여 년 만에 크리스마스이브에 밤거리를 거닐며 우리가 너무 현시대에서 동떨어져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이브임을 실감했다.
- 냉장고 속에 있는 동지팥죽 한 숟가락 먹읍시다 하며 집으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어렸을 적 나의 집으로 보스코를 초대했다. 엄마는 동짓죽을 넉넉히 쑤어서 작은 양푼 여러 개에 담아 주방 옆 뒤꼍에 내다 놓았다. 옛날 한옥집은 주방 뒷문과 밖으로 연결된 공간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미사를 다녀와서 우리는 그 팥죽을 먹는다. 아마 그때는 자정미사라서 25일 새벽 1시가 넘었을 텐데. 팥죽의 노고롬한 국물에 약간 살얼음이 얹어 있고 알갱이는 조금 굳어 단단해지려는 그 순간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냉장고가 아닌 한겨울 바깥에 놓여 있던 팥죽의 맛이 지금도 크리스마스이브면 생각난다.
엄마는 우리에게 신앙을 그렇게 주셨다. 지금도 성당에 다녀오면 차와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버릇도 그 덕분이라 생각한다. 8남매 모두 같은 신앙생활을 하며 부모님께 고마움을 느낀다. 올해는 그 흉내라도 내보고자 팥죽 한 그릇을 냉장고에 넣어 놨었다. 어찌 그 맛이 나오겠는가 하면서도 작은 공기에 한 숟가락씩 먹었다. 엄마의 손맛이 그리운 밤이다.
크리스마스파티하면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엄마가 코트 호주머니에서 줄줄이 사탕을 꺼내주시던 모습이다. 엄마는 일을 하셔서 귀가시간이 늦었다. 큰 딸인 나는 파티준비를 야심 차게 하였다. 여러 가지 쿠키를 요리책을 보며 만들었었다. 엄마의 귀가시간에 맞추어 도리상에 빙 둘러앉도록 파티 상을 꾸미고 있는데 엄마가 오셨다. 잔뜩 추우셨는지 엄마의 얼굴이 차게 보였다. 그러나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도 너희들 주려고 선물 사 왔다 하시며 주머니에 손을 넣으셨다.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줄줄이 사탕이다. 와~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하나씩 뜯어 가지고서는 좋아라 했다.
-우린 8남매다. 작은 방에 둘러앉으니 방안이 가득하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같은 것은 받아 보지 못했다. 동화책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그날 엄마의 선물과 그 모습 그리고 그날의 분위기는 잊히지 않는다. 어떻게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남의 집보다 자식들이 많아서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으셨다. 과일을 사도 남들은 한 바구니를 사면 나는 두 바구니를 사야 한다고, 다른 집은 소고기 한 근 사면 나는 두 근을 사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울림이 온다. 그런 엄마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자식들이 모여 있다니 줄줄이 사탕이 보였던 것 같다. 엄마의 사랑이다. 위트 있는 엄마의 선물 덕분에 우리는 하나씩 차례차례 실선을 따라 뜯어 사탕을 입에 물고 실컷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