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가락을 알았다. 산티아고 길에서

by 김미희랑여데레사


손을 내놓기도 어려운 신부님 앞에 아픈 발을 내놓았다. 일행들은 앞서 갔는데 발이 아파 못걷는 언니를 부축하여 동생이 함께 신부님 옆에 앉았다. 신부님이 앉아 계신 곳은 정식 쉼터도 아닌 나무등걸이었다. 수도복차림으로 걷다가 앉아 계신 신부님은 손에 묵주를 들고 계셨고 얼굴은 지금 막 집을 나서신 것처럼 편안한 모습이었다. 부끄럽지만 조심스레 양말을 벗어보니 오른쪽발가락 세번째와 네번째 사이에서 피가 흐르고 물켜져 있었다.

"이런 발을 하고 어찌 걸을려고 쯔쯔쯔!"

신부님은 혀를 차셨다.


발가락 두개가 딱 붙어 포개져 있어서 걸을 때마다 스쳐서 피가 났던 것이다.

세상에 내 발가락에 이런 문제가 있다니......!'

처음 알았다.

응급처치로 발가락 사이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꺼즈를 넣고 발가락 전체를 붕대로 가볍게 감고서야 다시 출발했다

응급 처치를 한 덕분에 다행히 마지막까지 걷고 합류하였다



숙소에서는 함께한 일행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두 궁금해했다

일회용밴드를 두발가락에 돌돌 말아붙이고서는 단톡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러나 금방 후회했다. 부끄러웠다. 일행들은 말이 많았다.


-얼굴과는 딴판이네

-발이 어쩜 이리도 못났을까요

-발톱이 성한게 없네요

-아프게 생겼네요. 하며 걱정하기도 한다.

결국 오른쪽 두개의 발가락 발톱은 다녀와서 까맣게 되었다가 빠지고 새로운 발톱이 자리매김하였으나 모양은 예전것만 못하다.


유난히 긴 검지발가락이 또 화제에 올랐다. 엄지보다 검지발가락이 길면 엄마가 먼저 돌아가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발가락이 길었기에 등산화와 마찰이 생겨 발톱이 수난은 겪었으나 무사히 건재했다.




산티아고길 10km를 5일간 걷고 나서 성지순례를 하는 일정이었다. 내가 속해 있는 프란치스코형제회 회원들이 2년 동안 적금을 부어 모아 이번 순례를 하게 되었다. 25명이 출발하였다. 물론 출발전 9일기도를 하며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다. 걷기로 몸을 훈련시키고 준비를 철저히 하자고 했고 나도 나름대로 운동도 했다.

누가보나 건강해 보였고 나역시 자부하던 터였다.


그러나 발가락이 문제 되어 걷기가 힘들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하루 18~20km를 걷다보니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긴 것이다. 산티아고길을 걸으며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앞으로의 삶의 방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등을 정리하려했는데 그런 것들은 아무 필요가 없었다. 오직 못생긴 내 발가락이 제일 중요함을 알았다.



하루는 비가 계속 내렸다. 판쵸를 걸치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데 저쪽에서 휠체어에 10대로 보이는 아들을 앉히고 엄마가 밀고 오고 있었다. 가슴이 멎는것 같았다. 이 비를 맞으며 저 엄마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걷고 있을까? 가까이 다가왔을때 "부엔까미노(좋은 여행되세요)" 하며 인사하는 표정이 어쩌면 나보다 더 밝았다. "god bless with you!" 인사하고 지나쳤다. 진심이었다. 엄마와 아들이 무탈하게 목적을 달성하는 순례가 되길 빌었다.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다가도 지나치는 사람을 만나면 "부엔까미노!"하고 인사하노라면 다시 힘이생기곤 했다. 마술같은 인사말이었다. 당연히 웃으며 큰소리로 인사하고 손으로도 반가움을 표시한다. 남녀노소 외국인들이 거의 전부였다. 길넘어 또 길이 있고, 평지도 있지만 산길도 있다. 창문 옆에 예쁜 꽃이 담긴 화분들이나 잘 익은 호박을 보기좋게 놓아놓은 아름다운 마을을 지나면서는 사진도 찍고 평화로운 마음이 든다. 그러다가 끝이 보이지않는 오르막길을. 만나면 또 끙끙댄다. 우리네 인생의 희로애락을 만나는듯 했다. 삶의 고비가 있는 것 처럼.


무거운 베낭을 짊어지고 가던 순례객들이 무게를 못견디고 하나 둘 버리고 간 물건들을 또 어떤이는 지나가며 필요해서 사용한다. 우리 일행중에서도 비가 와서 몸이 추웠던 형제님은 누군가가 남기고간 모자를 쓰며 따뜻하다고 좋아라했다.



힘들었던 산티아고 순례를 끝내고 완주증을 받고 신부님과 함께 미사드리며 울고 웃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산티아고를 걸었으니 우리나라 제주도 올레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발가락의 전모를 알았으니 먼저 대비 하면 얼마든지 걸을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하늘과 나무와 꽃과 아주 작아서 자세히 보아야 예쁜 풀꽃들이 사랑스럽다. 내가 말을 걸고 또 그네들이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길을 걸으면 좋다. 친구들이 많다. 온통 주위의 자연이 친구가 된다. 태양을 형님이라하고 달을 누님이라고 표현한 '피조물의 노래'를 지으신 프란치스코성인의 마음 가까이 가고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벽돌 한 장 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