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리샥꾼

바라나시의 첫인상

by 김미희랑여데레사

새벽녘 아니 1시30분이니 밤중이다. 잠이 깨어 폰을 들었다. 바로 잠들기 위해서는 '안된다. 그냥 눈감고 더자자' 하면서도 폰을 들게 된다. 이일을 어찌할꼬. 의지의 부족함이다. 뒤적뒤적하다 '네이버my box'를 클릭하였다. 몇 년 전의 사진들을 장소에 따라 모았다가 보여준다. 어떤 시스템인지는 모르면서도 옛사진들이 영상으로 나오면 추억 속에 빠진다. 고맙기도하다.

그러나 이 영상은 전달하기가 안된다. 아니 내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오면 물어봐야지 하다 가도 또 잊고 만다. 함께한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으나 안되어 서운하다. 오늘은 2019년 가을에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유역을 여행했던 사진들을 보며 기억속의 리샥꾼이 생각났다.



힘을 다해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려고 페달을 연신 밟고 있는 싸이클 리샥꾼의 허리는 둥글게 휘어 있었고 눈은 휑하니 흰자위가 많았고 볼은 쏙 들어가 삐쩍말라 있었다. 먼지로 찌들어져 있는 와이셔츠를 입은 그가 무척 짠하여서 그를 선택했을까 그의 눈동자에 가슴이 찡하였다.

이런 삶을 얼마나 이어가고 있을까. 30대로 보이던데 자전거는 낡고 낡아 삐꺽삐꺽. 헉헉대며 온힘을 다해 우리를 데려다 주려 애쓰는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거리는 온통 무질서함의 대명사인듯 인파로 뒤섞여 있었다. 그 틈을 헤집고 최선을 다해 달리는 리샥꾼들. 상가는 붐비고 좁은 골목마다 상점과 인파로 발딛기 힘들었다. 수행중인 이들은 맨발로 걷고 있다. 발을 보면 사람의 발이라 하긴 힘든 발들이었다. 자꾸 눈이 사람들의 발로 갔다.

그러나 그 발가락에 장신구를 단 여인들도 있었다. 오늘 읽은 이태준님의 괴물같다는 발이 생각난다.

눈도 코도 없는 다섯대가리가 한 몸에 붙은 것이 성큼성큼 다니는 것은 어찌보면 처음 만나는 괴물같기도하다 (이태준. 무서록.발에서)


거리를 헤집고 우리를 데려다 준 리샥꾼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헤어졌으나 그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었다. 깡마른 얼굴과 함께 선하면서도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 인도 바라나시의 첫인상이 그 리샥꾼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멍하니 그의 모습과 함께 했는데 오늘 영상을 보며 기억속의 그가 떠올랐다.


불평등과 빈부의 격차에 화가 났고 위정자들은 어떤 사람들 이기에 자국민의 어려운 생활을 그대로 놔두는지 화가 났었다.

통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거지들이 즐비한 거리에 또 한번 놀랐었다

그러나 본인들은 그렇게 불평하지 않고 내세의 삶을 바라며 그냥 산다는 것이다. 어떻게해서든지 갠지스강가에 와서 죽음을 맞이하는걸 소원으로생각하고 있다한다.


우리 일행은 어린 소년티가 아직 가시지 않은 까만 눈동자의 헤맑은 얼굴의 뱃사공과 함께 작은 배에 올랐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서다. 어디에서 본다고 다른 태양이런만 나룻배같은 조각배에 타고서 출렁이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동쪽 하늘을 쳐다본다. 막 떠오르는 장관을 놓치지 않으러 한 곳으로 집중하며 제각각의 소망을,바람을 해에게 얘기하겠지. 뱃사공은 특별한 소리로 그 많은 갈매기들을 모으고 날아가게 하여 하늘은 또 다른 장관을 이룬다. 엄지와 검지를 모아 태양을 손가락 사이에 넣으려 또 사진을 찍는다.



자신들이 믿는 신에 대한 믿음이 그토록 강함을 보았었다.

쉬지않고 불과 연기에 휩싸이고 있는 갠지스강가의 화장터.

그아래에서는 새로나기 위해 그 물을 마시고 목욕하고 빨래하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삶과 죽음의 공존이었다.



우린 그들의 아침에 함께 하며 배를 띄워 떠오르는 해와 마주하고 또한 우리네 삶의 소원을 빌었다. 하느님께서 보신다면 빨래하는 아낙이나 목욕하는 이나 그와중에 일출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소원을 비는 우리들이나 다 같지않을까!

기억의 저편에 있던 리샥쿤의 눈동자를 생각하며 년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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