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이 가져다준 사랑
매실이 어디 숨어 있는지 잎만 무성하다.
이른 봄, 꽃이 필 때 농장에 와 보질 못해서 얼마나 열려 있는지 짐작도 못했다. 가끔 눈에 띄는 열매가 실하게 보여 날을 잡아서 따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드디어 오늘 수확하기로 한 날이다. ‘얼마나 되겠어!’ 하는 마음으로 모자 쓰고 장갑 끼고 룰루랄라 가볍게 비닐 봉지 들고 옆으로 다가가니, 웬일인가 와! 여기서 저기서 ‘나도 있어요. 나도요. 어디 보세요. 이쪽이요’ 한다. 손이 바빠진다. 고사리 딸 때 느꼈던 그 상황, 고사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엎드려서 여기저기 허리 펼 틈도 없이 보이는데 일어서서 지나가다 보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경험이 되살아났다.
퇴직후 부지런한 남편의 놀이터를 만든다고 텃밭보다는 큰 농장을 준비했었다. 가장 첫번째 우리에게 온 매실 두그루. 지인의 선물이었다. 수형이 잘 잡힌 반송같은 모습이어서 농장 입구에 심어 놓으니 우리 농장 문지기 같았다. 매화꽃이 핀 첫 해에는 어찌나 예쁘게 피었던지 아깝지만 조금 따서 녹차에 띄워 멋진 찻자리를 마련하였다. 매화 향을 맡으며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몇 해 뒤에는 다른 지인의 농장에서 7그루의 매실 나무를 가져와 울타리 겸 주변에 심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천지장조를 하시며 말씀하신 '보시니 좋았다' 처럼 농장 주변에 매실나무를 심고 보니 참 보기가 좋았다. 그땐 그랬다. 관리하고 따야하는 숙제는 생각하질 못했었다. 그냥 좋았으니까. 그땐 젊었으니까.
햇빛과 어우러진 열매들이 이토록 예쁠까?! 감탄하고 감사하며 남편 옆에서 딴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쉴 새 없이 한다. 그리곤 다시 점점 멀어져 각자 따로 딴다. 꽤 많았다. 모두 딴 건 아니다. 보이는 대로 손이 닿는 데까지 높은데 있는 건 할 수 없고. 이 얼마나 놀랍고 고마운 일인가! 주인이 한 일은 거름 한 번 듬뿍 준 것뿐인데
집에 와서 무게를 재어보니 12.4kg. 엄청난 수확에 놀랐다. 설탕을 사야 하니 무게 측정은 필수다. 깨끗이 씻다 보니 역시 농약을 하지 않아서인지 버릴 게 많았다. 아까움이 가득하지만, 매실청, 매실장아찌 담그기에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이 다 골라 내야 했다.
튼튼하고 조금이라도 큰 것은 장아찌용으로 보스코가 칼질했다. 원당도 사용해 보고 백설탕도 사용해 봤지만, 개인적으로는 황설탕을 선호한다. 설탕 가격이 무척 올랐다. 물가가 올랐다지만 3kg에 1만 원, 앞으로 더 오를 거라고 한다. 장아찌 1차 절임은 수분이 빠진 매실만 건져 약간의 소금과 설탕을 더 넣어서 냉장 보관한다. 매실청은 많은 양이라서 넓은 다라이에 설탕과 함께 섞었다가 몇차려 뒤집어 설탕이 녹은 후에 항아리에 넣어 보관한다. 역시 일거리가 많다. 잠깐 허리를 펴며 "아이구 허리야" 한다.
마침 내일은 새로운 만남의 날이다. 8남매가 부모님을 중심으로 적어도 1년이면 서너 번씩 만났었는데 아버지까지 주님 품으로 보내드린 뒤 우리들만의 첫 만남이다. 세종에 사는 동생 집에서 보기로 했다. 부모님 생각에 몇 차례나 웃고 울고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잘 익은 오디와 보리수 열매를 조심스럽게 따서 아이스팩과 함께 가져갈 계획이다. 어제 단톡에 매실장아찌 필요한 사람 손! 했더니 나요! 나요! 한다. 작년에 담갔던 매실장아찌도 챙겼다. 돌아가신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남의 집은 과일 가게에서 한바구니만 사는데 우리집은 두세 바구니는 사야했다고, 고깃집에서도 1근이면 아무래도적어서 지갑 속의 돈을 보고 또 보고 하면서 두근은 사야했었다고 하셨다. 장아찌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나누어 봉지봉지 싸다보니 적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엔 더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마시기를 좋아하는 동생들에겐 여러 가지 보이차, 그리고 이번에 선물 받은 다즐링 홍차까지 가져간다. 이것저것 싸면서 동생들의 웃는 모습을 상상하니 행복가득이다.
힘은 들었지만 싱그럽고 탐스런 매실 덕분에 또 사랑을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