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와의 만남
“취미를 가져야 할 필요를 찾지 못했어요. 저의 뇌는 저장공간이 적은가 봐요. 금세 꽉 차서 그걸 비워내야 다른 걸 넣을 수 있어요.”
유재석의 유 퀴즈온 더블록에 지기님으로 신혜선이 나왔다. 솔직하고 약간의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가을을 상징하는 짙은 밤색 쉐이 터에 갈색 바지 긴 머리 가끔 머리카락을 뒤로 젖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자신감 넘치는 표현에 또 놀랐다. 자신을 전혀 포장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더 좋았다. 예뻐서 한참을 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취미를 가질 이유가 없다는 말에 나는 쇼킹했다. ‘그럴 수도 있구나! 난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걱정인데’ 하고 생각했다.
교직 생활 중에 차문화예절교육을 받으면서 茶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사범자격증까지 땄다. 규방다례실습 시연은 꽤 까다로웠다. 주말이면 한국제다에 모여 다경, 동다송, 다신전 등을 읽고 강의 듣기. 봄이면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들고 차 시연 연습하며 선비차, 생활차, 규방다례 등의 다법을 익혔다.
창경궁 어딘지 그 공간이 기억나진 않지만, 궁궐의 한 곳에 찻자리를 마련했었다. 상궁들이 오고 가는 듯하고 혹여 상감마마께서 납시려나 웃으며 기웃거리기도 했다. 무슨 날이었는지 항상 닫힌 문을 열어 놓고 차를 시연하고 구경 오신 분들에게 차를 대접했다. 나는 말차 코너에서 가루를 격분해서 정성스레 우려냈다. 외국인들도 삼삼오오 모이고 참 좋은 경험이었다.
학교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강당 뒤편에 찻자리를 마련하여 예쁜 한복차림의 차인(茶人) 두세 명이 차를 우려내면, 오시는 학부형이나 손님들이 차를 마시며 행사를 진행했다. 급식실에는 항상 따뜻한 녹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도 즐겨 마셨다.
교장실에서 부장 회의 등을 할 때나 외부 손님들이 오셨을 때도 내가 손수 차를 내려 대접했다. 녹차, 발효차 가끔은 대용차도 내놓았다.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이 인사차 처음 학교를 찾아오면 나는 차부터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리감이 없어지고 관계가 부드러워진다. 나의 주위엔 항상 다기와 포트, 다양한 차가 갖추어져 있었다.
나에게 차는 나눔이다.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나누고, 어려움도 나누고 맛있는 차는 또 봉지 봉지 나눠마신다. 한참은 홍차 공부를 하느라 화려한 홍차의 찻자리에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홍차반에 모여 다즐링, 우바, 기문홍차 등 다양한 산지의 차를 마시며 맛과 느낌 등을 공유했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묵수당에 모여 차를 마시고 차에 관한 시를 낭송하고 다신전을 공부하며 생활 나눔도 한다. 茶와의 인연을 취미를 가졌기에 보물 같은 친구들도 만났다. 차는 늘 내 곁에서 타인과 교감하는 또 다른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오늘도 차를 마시며 나의 마음을 정화하고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