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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by 이기자


“형, 진짜 이 새끼들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니까.”


대건이는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소주 몇 잔을 연거푸 비우더니 더 취하기 전에 말해야겠다는 듯이 자신이 왜 로스쿨에 떨어졌는지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떨어진 이유는 정책적 이유가 하나, 관습적 이유가 하나라 했다. 정책적으로는 자기보다 점수가 낮은 놈이 붙었는데 이를 학교별 재학생 할당제의 폐해라 비난했고, 관습적으로는 알아보니 부모님이 유명 로펌 출신인 사람들이 붙었는데 이를 학벌과 인맥이 작동한 비리투성이 입시라고 욕했다.


너보다 점수가 낮은 사람이 붙은 것과 면접자 부모님 직장이 어딘지까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니 대건이는 짧게 자신의 장기를 살렸다고 했다.


대건이가 쓴 방법은 이랬다. 먼저 최종 면접시험이 있던 날, 나이 들어 보이는 친구를 시켜서 대형 로스쿨 입시학원의 직원인 것처럼 명함을 만들어 면접생들에게 접근하게 한다. 그리고 면접 보는 사람들에게 합격가능 점수를 조사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 뒤, 면접생의 학점이나 로스쿨시험 점수 등 개략적인 정보들을 알려주면 합격가능 여부를 미리 알려주겠다고 설득한다. 마지막으로 대충 가짜로 만든 두툼한 서류를 보여주면서 벌써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고 있다고 꼬시면 열에 일곱은 넘어온다. 이런 이야기였다.


이렇게 대건이는 입학여부를 결정하는 교수들보다도 먼저 입학원서를 낸 사람들의 방대한 입시 데이터를 모아놓고 있었던 것이다.


대건이 입장에서 보면 본인이 수집한 데이터를 놓고 따져볼 때 당연히 붙고도 남을 점수인데 떨어지고 말았으니, 이렇게 분통을 터트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물론 거짓말로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형, 나 그냥 죽으려고 했어. 형 볼 면목도 없고, 우리 고생하는 엄마 더 이상 희망고문하는 것도 지쳤어. 아마 형이 나 안 불러냈으면 몇 시간 안 돼서 고시원에 경찰들이 가득했을 거야. “


“그래 그럴 거 같았어 인마.”


나는 대건이를 잘 안다. 겉으로만 센척하고 속은 여린 놈이다. 능력은 있는데 떠벌리는 건 질색하는 놈이다. 많은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지만 정작 자기 속마음을 터놓는 사람은 몇 없는 그런 녀석이다. 녀석은 내가 의리를 보여주면 몇 배의 의리로 보답하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날도 여기 ‘회색집’이었다. 학생회장이 내리친 소주병을 대건이 대신 내가 맞은 장소가 여기였다.


대학교 학생회 간부였던 대건이와 나는 학생회장이 축제비로 삼천만 원을 빼돌려 유흥비로 흥청망청 쓰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축제에 오기로 했던 A급가수 2명이 펑크를 내고, B급, C급 가수가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학생회장 고모부가 운영하는 연예기획사 가수들이 펑크를 내고 땜빵을 섰으니 말이다. 학생회는 선지급된 출연료를 돌려받아야 했지만 돌려받지 않았다. 그런 일은 아예 없던 모르는 일인 양 조용히 덮었다. 왜 그랬을까? 학생회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던 것일까?


그랬다. 한 사람도 없었다. 학생회장은 학생회 간부들과 공범이었다. 회장을 둘러싼 대여섯 명의 녀석들이 ‘오늘은 몇 년 산 양주를 먹었네.’, 또는 ‘담배인 줄 알았는데 대마를 폈네.’, 또는 ‘요즘 여자들 가슴수술이 진짜 같네.’라고 떠들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그놈들 모두가 한패였다.


탄핵을 해야 하는 대상이 회장 하나면 문제가 쉽다. 그런데 조직자체가 썩었다면? 이건 개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혁명이 필요했다. 학생회 간부 10명 중 나와 대건이를 뺀 회장파 7명, 한 명은 구색 맞추기식 여자후배 이런 구성이었으니 그냥 조직을 갈아엎는 게 나았다.


‘대건아 좀 도와다오.’


내가 회장을 탄핵해야겠다고 하니 대건이는 흔쾌히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탄핵의 시기와 장소는 자신이 정할 테니 맡겨달라 했다. 몇 주가 지난 뒤 학생회 회식이 있던 날 대건이는 반격의 봉화를 들어 올렸다.


“자 이제 그만 헤쳐먹고 내려옵시다. 이거 회장님과 간부님들 다 같이 술 먹고 대마초 피우고 여자 끼고 노셨던 것들 찍은 사진 확~ 학교에 뿌려버리기 전에 “


“뭐, 이 씨발 새끼가 쳐 돌았나?”


“아! 그리고 우리 막내 현숙이, 저번 회식 때 회장님이 막 다리 주무르고 거시기에 손 올리게 하고 그랬던 거 찍은 영상 그거 성추행으로 경찰에 고소장 접수했거든요? 며칠 뒤에 경찰에서 전화 갈 겁니다. 놓치지 말고 꼭 받으세요~“


“뭐라고 이 개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소주병을 거꾸로 들면 특수폭행이다. 특수폭행은 흉기를 소지하고 사람을 치면 성립하는데, 소주병은 바닥 부분이 잘 깨지지 않도록 밀도 있게 두툼하게 만들어져 있어 망치와 다름이 없다. 영화에서나 맥주병이나 소주병이 막대사탕 깨지듯 산산조각 나지 실제로 술병은 잘 안 깨진다. 그래서 멋모르고 술병으로 사람을 치면 안 되는 것이다. 잘 못하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돼져 이 새끼야!”


회장은 대건이가 앉은자리로 술병을 들고 달려들어 정확하게 대건이 머리를 노렸다. 옆자리에 있던 내가 순간 대건이를 보호하려고 대건이를 감쌀 때, 회장이 내리친 소주병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퍽!‘


순간적으로 가격을 당하자 내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머리에 가격을 당했음에도 의식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회장을 말릴 사람이 나 말곤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장과 같이 어울린 놈들은 회장의 돈에 충성한 것이지 회장에게 충성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회장을 위해 싸움판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놈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맞았지만 내가 정리해야 했다.


붉은 덩어리가 물로 잘 섞은 시멘트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왼쪽 눈은 그 붉은 것에 침범당했고, 눈을 떠보려 해도 파르르 떨리기만 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왼쪽 눈을 뜰 힘을 오른쪽 눈으로 몰았다. 그렇게 하면 두 눈을 힘껏 뜬 것처럼 회장을 노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회장은 이내 술이 깨고 상황을 파악한 듯 보였지만, 이미 늦었다. 폭행은 벌어졌고 피해자도 목격자도 범행도구도 눈앞에 버젓이 존재한다. 당황한 회장은 도망가려 했지만 회장의 두 손을 붙잡은 나는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거 놔 이 새끼야!”


눈도 제대로 뜨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는 기어이 회장의 두 손을 붙잡고 버텨냈다. 술집 사장님이 고성에 놀라 테이블로 뛰어나왔고, 상황을 파악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대학교 근처 파출소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늘 있는 술자리 싸움이겠거니 하고 달려온 경찰이 피범벅이 된 나를 보고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경찰이 회장을 제압하자 그제야 나는 의식을 잃었다. 아드레날린은 일회용이지 영구적 제품이 아니었다.


그날 원래 대건이의 각본대로라면 자기가 술병을 맞았어야 했단다. 그래서 자신이 깔아놓은 판에 화룡점정을 찍었어야 했는데 내가 끼어드는 바람에 망쳤다고 툴툴댔다.


대건이는 각본대로 움직였다. 회장 측근 한 명을 공략해 애인 몰래 바람피운다는 약점을 잡아냈고 회장과 유흥을 벌이는 모습을 몰래 찍게 했다. 현숙이는 원래부터 회장이 추근댔으니 포섭이 쉬웠다. 회장이 취한 틈을 타 현숙이가 추행당하는 것처럼 영상을 찍었고 교묘한 편집으로 현숙이를 비운의 여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대건이는 술병을 맞고 병원에서 회장에 대한 폭로 영상을 올릴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래야 더 임팩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차기 회장은 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회장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은 대건이가 되었어야 했다고 했다. 피해자는 이미지상 리더십에 어울리지 않는다나? 그래서 자기가 피해자가 되어 ‘이 모든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학생회 유일한 희망이자 정의로운 자 ’문필‘을 학생회장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눈물의 영상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그래도 상황은 대건이가 바란대로 흘러갔다. 붕대를 머리에 감고 눈도 파랗게 멍든 상태였지만 나는 분명하고 힘 있게 회장의 비리를 폭로했다. 대건이의 대본은 나를 폭행 피해자가 아닌 ‘의협열사’로 만들었다. 회장이 탄핵당하고 회장과 같은 정파인 내가 회장후보로 나갈 수 있었던 건 ‘첫 탄핵 주장자로서의 선명성’에 있었다.


회장 선거기간 중 회장과 다른 정파 사람 몇 명이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나를 회장과 똑같은 놈이라 비난했지만 그런 비난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선거기간 내내 나는 머리에 감은 붕대를 풀지 못했고, 붕대 쓴 회장후보가 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붕대는 그저 내가 당한 폭행의 증거가 아니었다. 내가 누구보다 정의롭고 깨끗하다는 증거로써 선거에 있어 내 검이자 내 방패였다. 검과 방패를 든 정의의 용사가 나였다. 나머지들은 용사를 억압하는 악당들로 비쳤다. 선악구도가 정해졌으니 게임은 볼 것도 없었다. 선거 결과는 압도적인 나의 승리였다. 결국 이미지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




대건이는 그런 놈이었다. 치밀하고 창의적이며 나한테는 재기 발랄하게 까부는 놈이었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공부를 하고 싶다길래 어려운 법학 세미나에도 불러서 같이 공부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대건이는 법학에 흥미를 느꼈는지 폐지를 얼마 남기지 않는 사법고시를 치르겠다고 수험공부에 뛰어들었다. 2년 뒤면 폐지되는 사법고시를 치르느라 고생하지 말고 학점관리를 잘해서 졸업할 때 즈음 열리는 로스쿨 시험에 응시하라고 권했지만, 사시출신이 더 멋있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사시 2차에서 한번 떨어지고, 다음 해 1차를 면제받고 2차에 또 떨어졌다. 로스쿨시험에 응시했을 땐 변화된 시험문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2년을 고시원에서 허송세월했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본 로스쿨 시험은 그래도 중상위권 로스쿨에 합격할 점수는 나왔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장학생을 노려야 했던 대건이는 지방대 로스쿨을 노렸다. 내가 봐도 점수는 넉넉했다. 면접도 말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놈이니 걱정 없었다. 녀석은 합격발표일을 알려주며 축하잔을 같이 들자고 설레발을 쳤다.


나는 나대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대건이는 내 형제 같은 놈이었다. 나는 합격발표날을 잊지 않았다.


점심에 발표라 했는데 녀석이 전화가 없음에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후 3시부터 5분 간격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있던 사무실에서 대건이가 있을 고시원까지는 차로 1시간이 걸렸다. 10통을 걸어도 통화가 안되니 초조해졌다.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고시원으로 달려가 잠긴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에 차에 문을 딸 수 있는 도구가 있는지 생각했다. 트렁크에 망치가 있었다. 고시원에 도착해 트렁크를 열고 망치를 찾았다. 망치를 쥔 채로 마지막 통화 버튼을 눌렀다. 11번째 전화였다. 드디어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 다행이었다. 나는 늦지 않았다. 그래 늦지 않았다…


“나와. 고시원 앞이야.”


대건이에게 술집으로 가자고 했다. 학교 근처면 갈 곳은 한 곳 밖에 없었다. 대건이와 내가 회장 탄핵의 맹세를 하고,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고, 내가 술병에 맞기도 했던, 그래서 우리는 ‘반골집’이라 부르는 그곳, ‘회색집’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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