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대한 정치인이 되어야 했다.
미개한 인간들을 교화시키고 평화롭고 갈등 없는 세상,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세상,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했다.
“에이 씨팔! 이게 말이 되냐고! 지역주의, 학벌주의 개 쓰레기 새끼들!‘
로스쿨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대학교 도서관에서 알았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키보드를 두 손으로 내리쳤다. 사람들이 놀랐고, 사서와 경비원이 달려와 격렬하게 나를 제지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도서관 입구에 나뒹굴고 있었다. 간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접었다 폈다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내게 닥친 막막한 현실이 더 무서웠다.
4평 남짓한 고시원에 돌아왔을 땐 이미 다 끝났다. 공부한다고 늘 싸웠던 연인과의 관계도, 아픈 할머니 병시중에 아들하나 출세시키려 식당잡부로 일하시던 어머니와의 관계도, 고시원 월세방 월세를 내주던 착한 선배와의 관계도 모두 끝났다. 나는 죽어버릴 테니까.
죽음으로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5년간의 공부는 이미 나를 사회무능력자로 만들었고, 가산을 탕진한 탕아로 만들었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 변절자로 만들었다.
치욕이었다. 치욕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나에게 주어진 온전한 채무다. 그래서 돈을 갚을 길이 없는 빚쟁이는 죽음을 택한다. 방법이 없잖은가?
고시원 책상에 앉아 초등학생 공책만 한 크기의 노트북을 연다. 컴퓨터 부팅이 완료되면 구글에서 ‘안 아프게 자살하는 법’을 검색할 것이다. 장소는 정해졌다. 이 지긋지긋한 고시원이다. 동굴에서 살았으니 동굴에서 죽을 것이다. 무능한 놈이라고 눈빛으로 욕하던 고시원 주인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놈은 그래도 싸다.
“망해라. 썩을 고시원”
‘안 아프게 자살하는 법’을 검색한다. 검색 첫 화면이 내 사고를 정지시킨다.
‘도움을 받으세요’-자살예방센터-
‘이런 젠장.‘
순간 멈칫한다. 10통 넘게 울리던 선배의 전화를 줄곧 무시하고 있었는데, 자살을 검색하니 나오는 문장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때 선배에게 11번째 전화가 온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알려야겠지.’
선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미 내가 벌이는 일을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단 한마디로 나를 제압했다.
“나와. 고시원 앞이야.”
선배는 유일하게 나를 지탱해 준 어른이었다. 유일하게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말은 무게가 있었다. ‘내가 인마, 너한테 한 게 얼만데 내 말 안 들어?’식의 막돼먹은 사람이 아니었다. ‘힘들면 말해 인마.’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말은 힘이 셌다.
그렇게 약자는 강자에 이끌려 갔다. 그때 저항했어야 했을까? 아니다 몸도 정신도 약해빠진 나는 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니까.
구원인지 절망인지 모를 자에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선배와 나의 아지트, ‘회색집’ 술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