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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by 이기자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을 한다. 장례식장은 큰 병원마다 하나씩 지어져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지막까지 책임져준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책임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팔아먹는다. 장례식장은 산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까지도 팔아먹으려는 병원의 수입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장례식장으로 한걸음 한걸음 옮긴다. 지금 내가 맞게 가는지 이상한 곳에 떠돌고 있는 게 아닌지 혼란스럽다. 장례식장을 한참을 헤매다 다시 입구로 돌아왔다. 그렇게 떠돌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니 익숙한 이름이 있다.


‘문필(35세) 제4장례식장’


“나이가… 나이가… 어울리지 않아. 이게 뭐야 형.”


사람은 고령의 노환으로 죽는 게 자연스럽다. 나이 들어 죽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죽는 건 이상하다. 왜 젊은 사람이 죽는가? 신은 왜 죽음을 공평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누군가에게는 평온한 인생의 전부를 보장해 주면서 누군가에게는 이리도 짧은 인생만 맛보게 하는가? 신은 사기꾼임이 분명하다. 그것도 아주 악독한 놈임에 틀림이 없다.


비틀거리며 제4장례식장을 찾아간다. 제1장례식장, 무수한 화환이 죽은 자의 생애가 풍족했음을 말해준다. 제2장례식장, 떠들썩한 분위기의 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가 친절했음을 말해준다. 제3장례식장, 상복을 입은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보니 죽은 자가 행복했음을 말해준다. 제4장례식장, 화환도 없다. 사람들도 없다. 심지어 가족들도 없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장례식장이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내가 아는 선배의 장례가 이렇게 초라할 리 없다. 내 안에 가득 찬 슬픔이 일시적으로 분노에 자리를 빼앗긴다. 이내 분노의 대상을 찾으려는 듯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분노는 멍청이들의 감정소모일 따름이다.


“안녕하세요…”


지영이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넨다. 마치 나밖에 올 사람이

없다는 듯, 나를 찾는 일이 쉬웠다는 듯 말이다.


“예… 흑흑, 근데 형은.. 근데 형은 어디 있어요? “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얼핏 보인 영정사진 때문이었다. 배웅 나온 지영을 뒤로한 채 영정사진으로 달려간다.


“형… 형! 이게 무슨 일이야! 형이 날 두고 어딜 가!”


이미 장례식장의 예법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선배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준비가 부족했다. 나는 이곳을 선배가 죽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온 것이다. 선배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 어떤 미신보다 믿기 어려웠다. 오열했고, 또 오열했다. 비단 선배가 죽어서 이렇게 통곡하는 것은 아니었다. 선배는 내 삶의 등대 같은 존재였다. 등대의 불이 꺼진 순간,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돛단배처럼 나는 그렇게 고독해졌다. 나는 무서웠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텅 빈 장례식장, 아직 이런 장례식을 치르기엔 어려 보이는 선배의 여동생과 독대했다. 여동생은 슬픔에 젖은 눈빛을 보였지만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의연함을 보니 더 이상 짐승처럼 울부짖을 수는 없었다.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교통사고예요. 저도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잘 모르겠어요.”


선배는 요즘 야근이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늦게 귀가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사고가 난 당일에도 당연히 늦게 온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은 게 마지막 전화라고 했다. 새벽 1-2시경 귀가하던 선배의 차를 덤프트럭이 정면에서 부딪쳐 난 사건이라고 했다.


‘덤프트럭이 교통사고를 냈다.‘ 이런 사고가 난 것은 선배의 아버지도 같았다. 늦은 새벽에 교통사고가 같은 집안사람 둘에게 동일하게 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드물다. 해결되지 않은 선배의 아버지의 경우와 같이 선배의 죽음도 사건이 아닌 사고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았다.


“오빠가 이걸 대건 씨에게 드리라고 했어요.”


“이게 뭔가요?”


지영이 건넨 건 태양문양이 금색으로 도금되어 있는 USB였다.


“사고가 있기 며칠 전에 오빠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건 씨에게 드리라고 했어요. 이걸 받을 때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열어보지도 않았어요. “


선배가 마지막으로 남긴 게 이 조그만 USB라니… 그리고 이걸 왜 나에게 전달하라고 했을까? 가족보다는 내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 걸까?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선배의 유지가 담긴 것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유지를 내게 맡긴 것도 분명했다. 지영에게 선배에 대한 것들을 더 물어보려는 순간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실례합니다! 여기 문지영 씨 계십니까?”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건장해 보이는 남자 2명을 대동하고, 회색 목폴라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비쩍 말라 보이는 중년남성이 장례식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행색은 장례식에 문상온 사람 행색이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다짜고짜 지영을 찾은 중년남성은 고인에 대한 예를 표하지도 않고 지영에게 느릿느릿 걸어왔다.


“경찰입니다. 지영 씨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왔습니다.”


중년 남성은 경찰 신분증을 내밀었지만 뒤에 그를 호위하는 듯한 두 명의 젊은 남성은 전혀 경찰 같아 보이지 않았다. 건장하고 큰 키, 무뚜뚝한 얼굴에 짧은 머리를 볼 때 경찰보다는 경호원 같아 보였다.


“경찰조사는 이미 마쳤는데요. 누구시죠?”


‘경찰이 조사를 끝냈는데 또 다른 경찰이 왔다? 이 놈은 누구지? ’


“아, 교통사고 관련 조사와 다른 건입니다. 실은 문필씨가 사고가 나기 전에 회사 기밀자료 유출과 관련해서 조사를 받던 건이 있었어요. 그것과 관련해서 유족분께 문필씨가 남긴 물건이 있으신지 그것을 좀 물어보려고 온 것이죠. “


예의를 갖춘듯했지만 말투에서는 범죄자를 취조하듯 비아냥거림이 느껴졌다. 능구렁이 같은 옅은 웃음으로 지영을 대하는 중년남성의 행실이 거슬렸다.


“이보세요. 여기 장례치르고 있는 거 안보입니까? 여기까지 와서 이러시는 건 유족에 대해서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근데 그쪽은 뉘신지?”


“죽은 사람 동생입니다.”


“음… 문필씨에게 남동생분이 한 분 더 계셨는지는 몰랐네요.”


“친동생은 아니지만 친동생만큼 절 아끼던 형님입니다. 여하튼 그건 중요하지 않고, 다음에 다시 오십시오. 죽은 사람 장례는 조용히 치르게 해야죠.”


옅은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던 중년남성은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조아렸다.


“뭐, 급한 건 아니니 나중에 볼일이 있겠지요.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요. 지영 씨는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그럼 이만. “


안쪽 코트 주머니에서 명함을 건넨 중년남성은 지영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돌아갔다. 명함에는 ’최우‘라고 적혀있었다. 경찰청 마크와 지능범죄수사팀장이라는 직함이 경찰명함임을 증명하는듯했지만 최우의 행실은 경찰이라기보다는 지능적인 조폭두목 같은 행실이었다.


불청객을 물려준 나에게 지영은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혹시 오빠의 사건과 관련된 어떤 단서가 나오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말하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안 피우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거친 숨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선배가 준 유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형이 억울한 것이 남았다면 내가 풀어줄게.‘


선배의 남겨진 유품은 선배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을 남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자가 남겨진 자에게 내리는 엄중한 명령 같은 것이었다. 그 명령을 나는 충실히 이행해야 했다. 그것이 믿음을 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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