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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pr 26. 2024

마케팅이 쓸모가 있나?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강민호

이제 마케팅의 시대는 끝났다.


마케팅을 광고나 홍보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사업의 본질은 제품이고 제품의 품질만 좋으면 물건은 어련히 잘 팔리겠거니 하던 시절말이다.


눈을 뜨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처음 진지하게 ‘마케팅이 뭐지?’라고 생각했던 때를 돌이켜보면 대학교 2학년때였지 싶다. 2008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이때 소위 얼리 어답터라는 친구들이 아이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에게는 남부럽지 않은 선민의식이 있었다. 그건 아이폰이 세상을 바꿀 것이고 나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주변사람들이 하나 둘 아이폰을 사서 들고 다니기 시작하니 얼리 어답터 친구들의 식견을 높이 보게 됐다.

얼리어답터 친구들의 아이폰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건 뭐니 뭐니 해도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잡스는 걸어 다니는 아이폰 그 자체였다. 스티브 잡스 열풍이 불던 시절, 잡스의 전설의 아이폰 프레젠테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출처: Youtube
‘iPod, Phone, Internet.’


아이폰을 이보다 더 심플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마케팅이 어떻게 제품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가치롭게 하며 세상과 관계를 맺게 되는지를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스티브 잡스 이후 마케팅은 다시 한번 주목받았고 너도나도 제품보단 세일즈와 마케팅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아직도 유효한가? 개인적으로 마케팅의 유행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행처럼 번져가던 온라인마케팅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들로 고객은 이제 쉽게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는다. 아마존과 쿠팡의 성공사례에서 보듯 이제는 모든 제품들이 무한경쟁 속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금세 죽어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사업에서 마케팅이라는 무기는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닐까?


내가 흥미롭게 보고 있는 게임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요즘의 PC게임 시장은 스팀(steam)이라는 거대 공룡 유통망에 의존하고 있다. 과거 용산 전자상가에 게임 CD를 사러 갔다가 바가지 맞던 시절은 이미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되었다. 이제는 스팀(steam) 덕분에 게임을 사러 돌아다닐 필요 없이 집에서 편하게 다운로드만 하면 된다. 게임 CD를 모아놓을 필요도 없다. 스팀(steam)의 클라우드에 내가 산 게임이 저장되기 때문에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게임을 PC에 깔았다가 지웠다가 편하게 할 수 있다.


스팀(steam)은 게임 개발시장도 바꾸어 놓았다. 블리자드 같은 대형 게임 개발사들이 아직도 있지만 요즘 대세는 1인 개발이다. 능력만 있으면 1인 개발자가 게임을 만들어 스팀(steam)을 통해 편하게 유통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인디게임개발은 과거 찬바람 불던 그런 처량한 곳이 아니다. 꿈과 희망과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그럼 1인 개발의 마케팅은 어떤가? 게임만 신선하고 재밌다면 마케팅에 큰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 최근 얼리액세스(미리 플레이하는 데모 플레이)를 끝내고 출시를 얼마 남기지 않은 1인 개발 게임 '매너 로드(Manor Lords)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전형적인 건설게임의 문맥을 탈피하고 실제 중세시대의 영주가 되어 마을을 운영하는 듯한 느낌을 구현하여 주목을 받고 있는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심이 대단하다.

 

출처:Youtube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잘 만든 게임을 '갓겜(GOD GAME)이라 하는데, 오래간만에 갓겜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로 여기저기서 리뷰를 올리고 있다. 유튜브에서 매너로드를 검색해 보면 아직 출시 전인데도 불구하고 다양한 게임 리뷰어들이 자청해서 매너로드의 게임성을 평가하고 홍보해주고 있다. 매너로드는 제품을 출시하기 전인데 이런 관심을 받고 있으니 굳이 대규모 마케팅이 필요 없는 즐거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제품만 좋으면 고객들이 알아서 찾는다. 심지어 제품이 출시되기 전인데도 제품이 잘되기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의 마케팅 문법과는 현재의 시장상황과 고객들의 활동은 잘 맞지 않는다. 마케팅 무용론이 나름대로 힘을 받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마케팅이 쓸모 없어진 지금 마케팅을 공부를 해야 하는가? 마케팅 공부를 할 시간에 시장분석이나 제품개발에 힘쓰는 것이 좀 더 유용하지 않을까? 소상공인이라면 하루하루 장사하고 손님들 대접하기도 벅찬데 바쁜 시간을 쪼개고 없는 힘을 부여 짜서 마케팅을 공부할 이유는 더더군다나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케팅을 공부해할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고객과 진심으로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저자 강민호 대표는 마케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마케팅이란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인간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다." 마케팅을 단순히 제품을 파는 행위로 정의하지 않고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정의하고 있다. 실로 마케팅이란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광고나 홍보가 마케팅의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마케팅은 광고나 홍보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상위개념이다.


마케팅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는 책


제품을 만들어도 팔아줄 고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제품이 아무리 기능이 좋고 디자인이 예뻐도 고객들이 제품을 알아봐 주지 않으면 그 기업은 망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처럼 고객이 제품을 불러줘야 그 제품은 꽃과 같은 생명력을 얻는다.


마케팅이 고객과의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는 과정을 말한다면 마케팅을 통해 우리는 고객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이는 사업과 경영을 하는 본질적인 이유와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사업을 왜 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왜 만드는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사회적인 명망을 얻기 위해서? 아니면 직원들을 많이 부리는 권력욕이 있어서 그런가? 사업가의 내면적인 욕망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사업의 본질은 가치를 제공하는 데 있다.


사업가가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게 있는데 사업가가 그걸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이 구하기 어렵고 비싼 가치를 가진 것이라면 사업가는 사업을 통해 떼돈을 번다. 사업가는 사회에 가치를 제공하고 사회는 사업가에 큰돈을 챙겨주어 전체적인 사회의 효용이 증가한다. 이것이 사업가가 큰돈을 버는데도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는 이유다.


사업가가 사회에 가치를 제공하고 큰돈을 버는 것은 꼭 지금이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중세에서 르네상스시대로 넘어가던 시기, 베니스 상인들은 중동과 아랍의 중개무역으로 큰돈을 벌었다. 이는 기독교와 아랍이 종교가 달라 십자군 전쟁을 하고 있던 전쟁통에서도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아랍왕국으로 찾아가 술탄을 만나고 교역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베니스 상인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따낸 교역권은 중세 유럽사람들에게는 중동과 아랍의 희귀한 음식과 문물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큰 가치를 제공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베니스 상인들은 막대한 부를 챙길 수 있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사업의 본질은 가치를 제공하는 데 있다. 그래서 마케팅은 다시 말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사업의 본질과 마케팅의 본질은  이렇게 맥이 닿아 있다.


그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고객은 가치를 제공받고 어떤 비용을 지불하는가? 이를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가치의 구성요소와 그 관계를 알아야 한다.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편익과 비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를 단순하게 공식화하면 'V(value) = B(benefit) - C(cost)'이 된다.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편익을 증대시키고 비용을 제거해야 한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서는 가치를 산출하는 편익과 비용에 대해 편익은 기능적 편익, 정서적 편익, 경험적 편익, 사회적 편익으로 비용을 경제적 비용, 시간적 비용, 신체적 비용, 심리적 비용으로 나눈다.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설명하면 외우기 어렵기 때문에 쉽게 외울 수 있게 '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에 나온 기억법을 사용해 보자.


[내가 이별의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실)이다. 그녀는 내게 시간도 쓰며 마음을 다해 사랑해 줬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문자와 에피소드를 만들어 기억하면 가치의 편익과 비용에 대해 조금 쉽게 외울 수 있을 것 같아 만들어보았다. 내가 굳이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데 이걸 왜 외우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긴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건 마케팅의 가장 근본이 되는 개념이라 꼭 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익과 비용에 대해 하나씩만 예를 들어보자. 편익이 올라가면 가치는 올라간다. 따라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편익은 크면 클수록 좋다. 가령 아이폰을 쓰면서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는가? 단순하게 통화를 하고 게임을 하고 인터넷을 하는 용도였다면 아이폰은 그저 그런 스마트폰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폰에는 특유의 감성과 감동이 있다. 최근 내가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감동을 받은 포인트는 사진을 정리해 주는 아이폰의 기능에 있었다.



아이폰의 사진 큐레이션 기능


요즘 들어 부쩍부쩍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귀엽던 아기 때의 아이들이 그리웠다. 어느 날 아이폰의 사진첩을 보다 보니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이들 아기 때의 사진을 모아서 보여주는 게 아닌가? 감동적인 음악까지 자동으로 깔아주면서 말이다. 이런 아이폰의 배려에 아이들의 어릴 때를 추억하며 감동을 먹었다.


경험적 편익이란 이런 것이다. 제품을 사용하면서 좋은 감정이 들고 제품에 추억과 희망을 담을 수 있다면 자연적으로 제품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올라간다.


그럼 가치에서 편익과 대비되는 비용은 어떤 게 있는가? 비용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내가 지불해야 하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비용은 줄일수록 가치는 올라간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KT 셋톱박스를 바꿨더니 기능과 리모컨이 업그레이드되었는데 편해진 기능이 하나 있었다.


신형에는 구형 리모컨에는 없던 유튜브 버튼이 생겼다.


과거 리모컨에는 유튜브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버튼이 없었다. 물론 과거에도 KT를 통해 유튜브를 볼 수는 있었다. 다만 리모컨 클릭을 몇 번 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었다. 이런 나의 귀찮음을 최신 리모컨은 유튜브 버튼을 따로 만들어 해결해 주었다. 사람들이 귀찮아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 이것이 신체적 비용을 제거하는 것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는 이뿐만이 아니라 고객을 어떻게 정의하고 대접할 것인지, 유행을 타지 않는 마케팅의 기본적 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마케팅의 전반적인 부분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통찰을 통해 마케팅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케팅을 다시 바라본다. 과연 마케팅은 현시점에서 쓸모없는 구시대의 유물인가? 그렇지 않다. 마케팅은 사업이 가치를 제공하는 방법이라는 본질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고객과 제품이 제공하는 가치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마케팅의 본질적인 부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마케팅을 공부해야 할 시간이다. 마케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사업과 마케팅을 연동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효과적으로 제품을 홍보하고 고객을 끌어들여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볼 시간이다. 마케팅에 대한 총론과 실무, 거기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까지 마케팅을 더 자세히 알아가는 여행을 출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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