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셔닝], 잭트라우트
얼마 전 연재를 마친 [매일매일 필사일지]의 분석보고서를 보았습니다. 특정 독자를 정하지도, 특정 내용을 정한 것도 아니었지만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고 많이 응원해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보고서를 통해 독자분들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더 좋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보고서의 내용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확실히 진정성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쓴 글들은 나름 고심을 한 끝에 쓴 글들이지만 어떨 땐 너무 폼만 잡으려는 글들도 있었고, 어떨 땐 솔직하지 못하고 제가 아는 것을 부풀려 쓴 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글들은 여지없이 독자분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진정으로 많이 봐주신 글을 보면,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보고 제 솔직한 감정을 고백한 독후감 형식의 글이었습니다. 그 당시 글을 쓰면서 지금까지 박완서 선생님처럼 솔직하게 글을 쓰지 못한 점 때문에 부끄러웠는데,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니 독자분들이 많이 읽어주신 것 같습니다.
보고서를 보시면 제 주요 독자층은 40~50대 여성분들이십니다. 40대 아저씨가 쓰는 글이라 40~50대 여성분들께서 보시기에 공감이 잘 안 가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습니다. 독자분들께서는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고 담담하게 글을 쓰면 꼭 읽어주신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독자분들께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키워드는 무엇이 있을까요? 1위로는 역시 가족, 그리고 2~3위는 에세이, 작가지망생이라는 키워드를 많이 봐주셨습니다. 아무래도 브런치의 모토가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이다 보니 그런 부분에 많은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참고해야겠습니다.
오늘 '포지셔닝'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20년 전 대학생 시절에 읽었던 책인데요. 그때는 '뭐 유명한 책인가 보다.' 하고 읽고 잊어버렸는데, 새롭게 시작한 [마케팅 30권]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유용한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당신의 브랜드를 고객의 마음에 자리 잡게(포지셔닝) 하라.'입니다. 왜 버거킹은 맥도널드를 이기지 못하고, 왜 펩시는 콜라를 이기지 못할까요? 이유는 이미 고객들의 마음에 1등 제품은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지셔닝은 왜 1등의 포지셔닝을 깨부수는 게 어려운지, 왜 2등 전략도 유용한 전략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단순합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은 바꾸기 싫어하고, 모르는 것이 있다면 빨리 알고 싶어 합니다. 이 단순한 명제를 통해 포지셔닝은 1등 브랜드가 장기집권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2등 브랜드도 충분히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브랜드를 포지셔닝하는데 이름의 중요성을 언급한 부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름이 쉽고 빨리 인식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어려운 사람들은 고통받습니다. 철학자 니체가 언급한 유명한 초인의 이름은 '차라스투라'입니다. 저는 이 이름을 외우기 정말 어려워했습니다. 철학과 대학생 시절 교수님 앞에서 "니체가 말한 초인은 '자라'입니다."라고 실수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은 본래 쉽고 명확하게 지어야 합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항공이 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지 못할까요? 금성은 사명을 'LG'로 한국화약(韓國火藥)은 왜 사명을 '한화'로 바꿨을까요?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업이나 브랜드는 고객들에게 쉽고 명확하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 결과로 현재 유명한 기업 브랜드는 나름 고유한 이름마다의 스토리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지셔닝'에서는 브랜드의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름은 소비자 마인드의 상품 사다리에 브랜드를 거는 고리와 같다. 포지셔닝 시대에 당신이 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결정은 바로 상품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다.
[포지셔닝], 159p
이 글을 읽고 제 프로필을 다시 쳐다봅니다.
'솔선수범', 처음에 이런 이름을 짓게 된 계기는 하루하루 나이는 들어가는데 나태해져 가는 제가 한심에 보였고, 제 안에 있는 게으름뱅이에게 제가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래도 브런치에 글을 쓰는 저의 인격은 게으른 저의 인격에 본보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 당시에는 '솔, 선, 수, 범.'이 이렇게 읽기 어려운 단어인지도 몰랐고, 재미없고 특성 없는 단어인 줄은 잘 몰랐습니다. 제 이름을 듣고 와이프가 해줬던 피드백은 '너무 밋밋해.'였는데, 이 말을 너무 성의 없게 들어버리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후회해 본들 어쩌겠습니까? 그 당시만 해도 마케팅의 본질인 '고객감동'도 몰랐고, 제 글을 이렇게 많은 독자분들이 보시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그저 당시 제 멋대로 이름을 지었던 걸 반성하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이름을 바꿔야겠습니다. 뭔가 창의적이고 대단한 이름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단지 '포지셔닝'에서 읽었던 발음이 편한 이름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모토인 '스스로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는 부분도 표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이기자'입니다.
원래 처음에는 '이기는 자'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기는 자'를 검색하니 기독교적인 의미로 예수님을 지칭하는 단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도 될까 말까인데 '예수님'과 경쟁이라니... 그냥 빨리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이기는 자'는 안되더라도 '이기자!'라는 파이팅 넘치는 단어로 바꿨습니다. 제가 '이기자'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명분은 다양합니다. 제일 먼저 저는 군대를 27사단 '이기자'부대를 나온 만기 전역자입니다. 지금은 부대가 해체되어 추억의 이름이 되었지만, 제가 인생에서 가장 이를 옹치 물고 치열하게 살았던 2년을 증언하는 단어이기에 사용하는데 거리낌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기자'라는 이름은 제가 브런치 입성 시 가졌던 초심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에도 부합합니다. '매일매일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글을 쓰자.'라는 실행계획은 자승자강(自勝者强),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제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기자'라고 이런 생각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도 나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발음이 단순합니다. '솔, 선, 수, 범'은 제가 여러 번 발음해본결과 입에 착 달라붙지 않습니다. 입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단어를 이름으로 짓는 것은 브런치 작가에게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입에 잘 붙는 말을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이기자'는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말하기도 쉽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제가 군대 시절 경례 구호가 '충성!'이 아닌 '이기자!'였는데, 그때도 처음의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습니다.
독자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브런치 여정이 3개월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브런치북 한 권을 완료하고 지금까지 총 60개의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15,700명이 넘는 분들께서 제 글을 봐주셨고, 다이어트, 필사, 에세이, 독후감 등 제가 쓴 다양한 주제의 글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독자분들께 조금 더 솔직하고 편안하게 저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딱딱한 "~이다."의 문체도 버리고 "~합니다.", "~입니다."로 좀 더 말하듯 글을 쓰고자 합니다. 이름도 딱딱한 '솔선수범'이 아니라 '이기자'로 단순하게 바꿔 좀 더 독자 분들께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자분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과 함께 응원하고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함께 가고 싶은 독자 여러분은 언제나 자신을 이기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고자 하는 '이기는 자'들이시니까요.
-'이기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