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페이지 마케팅 플랜], 앨런 딥
아빠가 아침부터 지저분하게 어지럽히지 말라고 했지!
우리 딸들은 악마견 비글에 비견될 정도로 정신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죠. 정신이 좀 온전한 오후쯤에 이런 난리를 친다면 그래도 포기하는 심정으로 봐줄 텐데, 등원 준비로 바쁜 아침부터 난리를 치면 어쩔 수 없이 호통을 치게 됩니다.
오늘 아침도 그랬습니다. 첫째는 기상과 동시에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울고 불고 떼를 썼고, 잠깐 세수를 하고 오니 막내가 과자봉지를 마음대로 뜯다가 온 거실바닥에 과자를 흩뿌려 놨습니다. ‘이왕 먹지도 못하는 거 부수자!’라는 생각이었는지, 두 딸은 신나게 과자를 밟고 돌아다녔고 거실은 과자부스러기로 만든 모래사장이 되어 있었죠.
결국 주동자인 막내는 물론 같이 놀던 첫째까지 공범의 죄를 물어 손들기 형벌에 처해졌고, 아이들은 자신이 그런 게 아니라 귀신 찾아와서 그랬다는 듯 변명합니다. 하지만 아침부터 참을성 한도초과가 돼버린 아빠에게 선처를 바라긴 늦어버렸죠.
여차저차 아침부터 대청소를 마치고 부랴부랴 아이들 등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고된 하루를 마친 사람처럼 피곤합니다. 오후에 출장도 있고 오늘 할 일도 많은데 이렇게 축 늘어질 수 없겠다 싶어 커피 한잔을 진하게 타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명색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니까 아메리카노만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선 충분한 당섭취가 필요하다는 명분하에 특별히 설탕을 타 먹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무심히 커피가루를 잔에 툭툭 떨어뜨립니다. 두 숟가락 분량, 딱 내가 원하는 양만큼 간단한 손목스냅으로 해결되네요. '그럼 설탕도 괜찮겠지?' 오늘따라 왠지 안 하던 짓거리를 하게 되네요. '커피가루는 알갱이가 작은 돌멩이 정도는 돼서 손목스냅으로 할 수 있었지만 입자가 모래알만큼 작은 설탕도 그게 될까?'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숟가락에 손대기도 귀찮은 무의식은 마음대로 몸을 조정하고 있었습니다. 설탕통을 열고 커피잔에 설탕을 툭툭 텁니다. 한번, 두 번, 설탕통을 터는데 설탕 쏟아지는 양이 영 시원치 않습니다. 그럼 조금 더 힘을 줘서 툭! 결과는...
아... 내가 아침부터 지저분하게 어지럽히지 말랬지.
귀찮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봅니다. 난 죽어야겠습니다. 숟가락도 쓰기 귀찮아 일을 만드는 사람이 세상에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아침부터 두 번이나 대청소를 했습니다. 한 번은 철없는 아이들이 한 장난으로 또 한 번은 철없는 아빠가 저지른 만행 때문에 결국 애먼 우리 집만 계속 쓸고 닦이고 있네요. 어릴 때 성당을 다니며 성모마리아께 올렸던 기도문의 글귀가 떠오르네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다 내 탓이로소이다."
그래도 커피는 먹어야겠습니다. 정석대로 숟가락을 사용합니다. 두 번의 실수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사실 오늘의 장대한 계획은 이랬습니다.
먼저 아이들 등원을 끝내고 집에 오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땀을 흘린다. 그리고 어제 읽은 마케팅책을 정리해 브런치에 요약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샤워를 마치고 서울로 출장을 간다. 회의를 열심히 하고 저녁에는 동료들과 즐거운 뒤풀이 시간을 즐긴다.
그런데, 아침부터 모든 것은 계획대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설탕통에서 설탕들을 쏟는 순간 제 멘털도 와장창 무너졌습니다.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계획대로 안 되는 걸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합니다. 무대에서 잘 부르라 기대했던 가수가 계속 음이탈을 반복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걸 지켜보는 심정이 지금의 저와 같을 겁니다.
그래도 어제 읽은 책 요약은 해야겠습니다. 정석대로 바로 요약 들어갑니다. 두 번의 계획변경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어제 읽은 책은 앨런 딥이라는 잘 나가는 호주출신 사업가가 쓴 책 '1페이지 마케팅 플랜'입니다. 대부분 마케팅으로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마케팅 관련 책을 쓰곤 하지만, 이 책은 사업가 출신이 쓴 책입니다. 그래서 다른 책들과는 달리 바로바로 사업에 써먹을 수 있는 실전적인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요지는 정말 간단합니다. '당신이 지금껏 사업에 망한 이유는 마케팅 전략, 전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1페이지 분량의 마케팅 전략을 짜는 양식과 내용을 전달할 것이다. 그냥 보고 따라 해라.'
어떻게 보면 굉장히 도발적인 말로 들리는데요. 저자의 이런 자신감은 그렇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닙니다. 책은 마케팅의 정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세부항목들마다 저자가 실전에서 사용하고 효용을 입증한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잠재고객 확보 - 관심고객 발굴 및 육성 - 구매고객에게 감동전달' 이렇게 크게 세 파트로 나뉘는 이 책의 구성은 각 파트마다 세 가지의 실행과제를 던져줘 우리가 구체적인 마케팅 전략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준비단계-잠재고객 확보]
1단계: 목표로 하는 잠재고객을 설정하라.
2단계: 감정을 건드리는 메시지를 만들어라.
3단계: 사용할 매체를 선택하라.
[진행단계-관심고객 확보 및 육성]
4단계: 관심고객을 확보하라
5단계: 관심고객을 육성하라.(10번 이상 접촉)
6단계: 관심고객을 구매고객으로 전환하라.
[후속단계-구매고객에게 감동전달]
7단계: 고객에게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라.
8단계: 고객의 생애가치를 높인다.(업셀링, 고가판매)
9단계: 추천시스템을 구축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관심고객에 대한 접촉의 부분인데요. 기네스북에 오른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의 사례를 통해 고객에게 얼마나 많은 접촉이 필요한지를 설명합니다. '조 지라드'는 연 판매 최고 1,425대를 판 판매왕인데요. 이런 업적을 남기기 위해 그는 매달 고객들에게 신년축하카드, 밸런타인데이 축하카드와 같은 카드를 보냈다고 합니다. 매달 봉투의 크기와 색깔도 바꾸고 주소도 직접 썼다고 합니다.
저자는 '조 지라드'의 사례처럼 꾸준하게 농부처럼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관심고객을 육성하지 못한다고 단언하는데요. 어떤 연구에 따르면 전체 영업사원 중 50%는 고객과 한번 만나면 포기하고, 65%는 두 번만에 79.8%는 세 번 만에 포기한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고객과의 접촉을 최소한 9번을 가져야 진정한 구매고객으로의 전환이 준비된다고 합니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시간이 남아돌아서 고객을 9번이나 접촉하냐고요? 여기서 말하는 접촉은 쉽게 말하면 고객에게 노출되는 빈도를 말합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고객에게 대가 없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가 없는 성의는 고객이 원하는 교육이 될 수도 책자가 될 수도 아니면 친절한 이메일 편지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꾸준히 고객과의 접촉을 이어가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니 제가 옛날 영업사원이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고객을 만나기가 두렵고 무서워 한번 만나면 벌벌 떨면서 만났는데, 그 당시에 마케팅의 기본은 관심고객 육성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80% 대부분의 영업사원들이 고객을 세 번만 만나면 나가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더 용기 내서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후회가 됩니다.
뭐 사실은 두려웠다. 무서웠다. 다 변명에 불과할 겁니다. 사실은 귀찮았던 게 더 컸겠죠. 그냥 한번 전화 한번 돌리기가, 그냥 한번 엽서 한 장 쓰기가, 그냥 한번 고객을 만나러 찾아가기가 귀찮았던 겁니다.
오늘 설탕통을 쏟은 귀차니스트는 제 과거에도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망령과도 같습니다. 이 망령을 퇴마술로 쫓아내지 않는 한 제게 큰 성공이란 과실은 찾아오지 않겠죠. 사람은 숟가락을 들어야 합니다. 귀찮으면 죽습니다. 귀찮음이라는 망령은 영화 '파묘'에 나오는 아주 '험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귀찮음을 내쫓기 위해 굿판을 벌입시다. 아! 물론 커피 한잔은 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