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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Mar 27. 2024

EP.35 운동 중독자는 한심한 사람 아니야?

- 네 한심한 사람 찾으셨나요? 여기 있습니다.

 이제는 희미한 20대 시절 까마득한 기억의 조각을 간신히 끄집어 들여다보면 그때에 나는 운동을 혐오(?)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약간은 한심스럽다고 까지 생각했다. 아니 하루하루 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만나야 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오로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만 하고 (어린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나머지는 다 뒷전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나랑 결코 친해질 수도 없는 존재라 생각했다.     


 알코올 분해 성분도 몸에 없는 주제에 일주일에 8회 술을 마시고 (그래도 지각 한 번 하지 않은 위대한 체력)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주말마다 밤새워 놀기 일 수였다. 어디 그뿐이랴? 회사에서는 커리어를 쌓겠다고 야근은 기본에 철야도 빼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은 어디서 나서 술을 먹었지?) 아무튼 젊음이란 것은 위대했다. 이 모든 것을 해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맞이한 30대에 모든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일의 체력을 빌려서 놀았다는 것을. 다이나믹 듀오가 그렇게 외치던 “하루를 밤새면 이틀을 죽어.”가 단지 노래 가사가 아니라 현실 반영이었다는 것을. 내가 한심하게 봤던 그들이 그렇게 운동만 열심히 했던 건 건강을 위한 것도 아름다운 몸을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닌 그저 단지 살기 위해 했던 것이란 것을 말이다.      


 이렇게 몸에서 신호를 줬을 때 뭔가 아주 조금이라도 깨달았을 때 운동을 시작했어도 참 좋았을 텐데.. 나란 사람은 어찌나 멍청한지 아 체력이 딸린다. 와 너무 힘들다를 입에 달고 살아도 운동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중간중간 다양한 운동을 도전하긴 했으나 3개월 이상 가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30대 중반이 되었고 아버지의 간병으로 정신과 육체 모두 버티지 못할 상황이 돼서야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되었다.      


 클라이밍의 마력에 매료된 나는 주 5일 운동을 가기 위해 친구들 혹은 가족과의 약속은 웬만하면 주말로 잡았고 혹 주말로 옮길 수 없다면 약속 당사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운동 후에 약속을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보며 운동 중독이라고 했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운동이 재미있어서 완등이 하고 싶어서 주 5일 나가는 것뿐이지 운동 중독이라니.. 그리고 뭐! 클라이밍을 하고 건강해진 건 인정하지만 막 엄청 건강 해진 것도 아니고 거기다 빠질 충분한 이유만 있다면 클라이밍 빠질 수 있거든요?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다.     


 지난주 금요일 S의 제안으로 S의 회사에서 알바를 했다. 집에만 있다 오랜만에 나가서 일을 해서 인지 아니면 큰 일교차 때문인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자주 있는 일이라 (것 봐 몸 상태가 여즉 이렇게 구린데? 뭔 운동중독?) 별일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열굴에 열감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요 목이 따끔따끔 거리고 기침도 나는 것이 아닌가. 어찌어찌 일은 다 마쳤는데 몸의 상태가 운동을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암장으로 향하던 발을 집으로 돌렸다. (물론 운동을 가려고 하긴 했으나 결론적으로 집으로 갔으니 운동 중독은 아니지 않나요?)      


 집에 온 순간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열은 더 올랐고 열감에 머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시간이 지나자 배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정말 요 근래 들어서 가장 심하게 아픈 것 같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정도였다. 밤새 심하게 앓던 나는 다음날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무슨 정신으로 병원에 갔는지 기억에도 없지만 내 손엔 약봉지가 들려있었고 그날 역시 너무 아파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잠깐 일어나 밥을 먹고 약을 먹고 한 게 전부였다. (아 아까운 주말..)     


 그리고 일요일 다행히 몸은 전날보다 조금 나아져있었다. 아직 몸에 열감은 있었지만 어제처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도 아니었다. 아프긴 하지만 참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정도? 어제와 달리 정상적 사고가 가능하자마자 내가 한 일 바로 손의 굳은살을 제거한 것이다. (정상적 사고를 한 건 맞아..?ㅋㅋㅋ)     

 

 전에도 말했지만 클라이밍은 맨손으로 하는 운동이다 보니 손에 굳은살이 많이 생긴다. 이걸 주기적으로 제거해 줘야 손이 아프지 않게 운동을 할 수 있는데 정상적 사고가 가능 해지자마자 나는 파블로스의 개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서랍에서 굳은살 제거를 위한 용품을 꺼내 들고 손의 굳은살을 제거한 것이다. 아직 몸이 다 낫지도 않았지만 월요일에 갈 운동을 대비해서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평소와 같이 손의 굳은살을 제거하다 드디어 깨달았다. 아 나 운동중독이구나 그것도 초기 중독도 아니고 말기 중증 중독자구나! 하고 말이다. 아직 컨디션이 100% 돌아오지도 않았고(심지어 아직 열도 있었다) 월요일 운동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월요일 날 운동을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굳은살을 제거하고 있다니..      


 20대 시절 그렇게 한심하다고 생각햇던 운동이 모든 것을 제쳐두고 1순위가 된 사람, 그런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을 바로 내가 하고 있었다. 절대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나 할 것 같은 행동을 너무나 당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나를 보자 헛웃음이 나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나 운동중독자구나.. 아하하 맞아요. 여러분 저 운동 중독자입니다. 여전히 체력도 구리고 환절기 때마다 아프지만 다른 모든 것보다 운동이 1순위인 운동 중독자입니다.     


 20대의 내가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면 기함하겠지. 아줌마 무슨 일이야 정신 차려!!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20대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이 자식아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조금만 체력을 아껴 썼음 내가 이렇게 까진 안 됐을 거다!! 이건 다 너의 탓이야!! 네가 다 책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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