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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교사 Jan 01. 2022

영화 지옥과 상대성 이론의 관계

절대적 기준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믿음

최근 본 넷플리스 드라마 중 '지옥'이란 드라마가 인상적이었다 미술, 영상미, 전개 방식 등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메시지 만은 충분히 좋다는 생각이 든다

지옥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애기하지면 '절대적 존재'와 어떤 불가항력적인 현상이 등장했을 때 인간의 반응들에 대한 내용이다.


진리회는 기존 기독교적 세계관과 다르게  '살아가면서 지은 죄에 대한 심판'을 얘기한다. 사람들에게 '신'이라는 존재가 고지를 주곤 '사자'가 등장해서 심판한다. 하지만 '신'은 고지를 죄인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저승사자들

1~3화에서의 정진수(1대 의장)는  자신이 '고지'를 받았음에도 신을 통한 공포를 통해 세상을 더 이롭게 바꾸고 바로잡고자 한다(윤리,  '법'만으로 지켜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고지가 '죄'를 짓지 않아도 시연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4~6화서는 죄를 짓지 않아도 시연을 당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인간들의 반응으로 결국 '신'이라는 이름으로 '이익'을 보려는 단체와 그에 반하는 세력들이 충돌한다. 그리고 이익' 단체가 '다수'가 되어 힘을 얻게 되면 신념과 결합하여 폭력적으로 억압하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절대적인 존재'는 있고 없고에 중요성이 아닌 인간이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 어떠한 행동을 하는 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절대적 기준인 신의 존재와 심판의 원인에 대해  이미 받아들인 상태에서 인간의 반응과 행동에 초점 맞춘 것이다. 보통은 왜 그 사람이 죄를 지었는지 분석하고 그 인과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심판을 받을 만 했기 때문에 심판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찾아야 영화적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감독은 그런 원인, 인과율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런 현상이 벌어졌을 때 인간 군상에 대한 다양한 반응에 초점 맞춘 것이다.(화살촉, 2대 사이비교주 등) 그래서 이 영화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사람들에게 새로웠던 것이다.

화살촉
2대 사이비 교주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사용하여 현상에 대한 원인을 물질적 측면에서 찾고 분석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추상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철학'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항상 결과에 대한 원인은 존재하고 왜 그런지 찾아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냥 믿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그런 측면에서 지옥을 보는 시청자 일부는 불편한 감정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이런 전제를 받아들이고 바라보면 훨씬 드라마는 재미있어진다. 감독의 메시지도 명확하게 바라보게 되고 통쾌함도 느낀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절대적인 전제조건과 상황을 이해 없이 그냥!! 무조건!!!  받아들이고 그 이후를 볼 수 있는가???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불편한 감정은 나에게도 있는데 생각해보면 과거 익숙했던 "불편한 감정들"이었다. '뭐지? 왜 이런 감정들이 낯설지 않지?' '과거에도 많이 느꼈던 이 감정을 어디에서 느껴봤지?' 생각해보니 과학(물리학)을 배우면서도 느끼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상대성 이론을 배우고 알아가면서 그런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상대성이론에서 100km 속도로 달리는 차 안 사람과 50km 속도로  달리는 차 안 사람은 분명 다르게 속도를 느끼게 된다 이를 상대속도라 한다. 그런데 두 자동차가 동시에 빛의 속도로 가게 되면 빛의 속도는 절대 속도이기 때문에 두 차 모두 동일한 빛의 속도로 가게 되고 그럼 두 차 사이에 차이가 나는 거리를 설명하는 것은 결국 두 차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야 한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를 특수상대성이론이라 한다. 여기서 빛의 속도는 두 차에 차이를 줄 수 없는 절대적 기준이다. 이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전제를 받아들이고 그 이후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대적 이론은 불편해진다. 왜 그런지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명한 과학 이론을 배우는데 전제조건을 그냥 받아들여라... 참....  처음에 이 이론을 배우면서 불편하고 거북하고 짜증도 났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 절대적인 기준을 수용하고 나서 조금씩 상대성 이론이 이해도 되었고 재미도 있었다. 합리성, 이성을 이용하여 원인을 규명하는 과학이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상대성이론에서 전제조건을 그냥 받아들이고 믿고 시작하자! 무엇이 이이러니했다. 그래서 성대성 이론을 빛의 측면에서 보면, 절대성 이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학도 절제적 조건 앞에서 믿음과 수용이 필요한 학문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 기분은 과학이론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다. 그런데 처음 창세기 말씀을 배우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믿고 수용한 후에 그 다음으로  나아간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부른다.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이 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성경은 왜 그런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믿고 수용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처음에는 이런 부분들이 불편한 감정도 있지만 종교는 그 전제조건을 믿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히려 종교만 믿는 것이 아니라 과학도 비슷하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기도 했다. 절대적 기준에 대해 원인을 밝힐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것이 과학이든, 종교든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이해의 한계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한계를 인정하는 속에서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행동해야 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그 속에서 교사로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고 삶을 감당하려고 한다. 2022년 한 해에는 교사로서 이런 삶의 반응과 믿음이 더욱 소중할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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