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라는 수필이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내 중학시절인가?
교과서에 실린 수필이다.
그 아사코가 왜 떠올려졌는지 모르겠다.
요즈음은 세상 살며 덜어내며
사는 삶에 더 끌린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란 생각에
"인연"이라는 어휘가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아사코란 이름이 맞는지 찾아보니
아사코가 맞다!
기억력이 별로 좋지도 않은데
잊지 않은 걸 보니 그 수필이 내 소년 시절에
단단히 각인이 되었나 보다.
반세기가 지났다.
피천득과 아사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인연인지 만남인지...
만남은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 간의 짧은 인연
을 의미합니다. 이는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제한적이고, 잠깐의 시간을 함께한 뒤
에는 서로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반면, 인연은
운명적으로 연결된 사이로, 서로의 마음을 알
고 심금을 흔들어주는 관계를 말합니다. 인연
은 서로에게 의미 있는 교감을 가져다주며, 긴
여정을 함께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둘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두 사람 간의 관계의
깊이와 지속성에 있습니다. 만남은 급박한 감
정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그때만을 위한 것이
지만, 인연은 서로에게 끝없는 성장과 배움의
기회를 줍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만남을 통해
인연이 시작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인연에 대한 감사와 존중의 마음을 가지며 서
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이
야 합니다. - 어디서 찾아온 글 -
"인연"을 "만남"으로 치환하니
한결 가벼워진다.
인연이든 만남이든
어쨌든 내 삶의 조각들이다.
"인연"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만남"이 많았다.
제주에서 더 그랬다.
아침에 좀 일찍 나왔다.
국숫집 가기 전에 들릴 때가 있어서다.
서귀포 시내 서쪽 초입에 삼매봉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다. 제주 도 내 도서관은 보름 동안 5권만 대출해 준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필요한 책을 빌릴 때도 있다.
날씨가 서늘해졌다곤 하지만
아직 공기엔 습기가 묻어있다.
최장기간 열대야가 며칠 전에도 나타났는데
서귀포 기록이란다.
11월을 향해가는데 당최 무슨 일인지...
삼매봉 가기 전에 걸매 공원과 칠십리시 공원(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을 걷고 가려고 일찍 나온 터다.
잘 정돈된 걸매 공원을 다 걷고 빠져나가려는데 출입 금지 테이프가 쳐져 있다.
앞서가던 사람이 그냥 그걸 넘어 들어간다.
잠깐 망설이다가 돌아 나왔는데 길이 막혀있다.
출구로 가려면 빙 둘러 가야 한다.
아까 출입 금지 넘어가던 그 사람이 손짓으로 부른다.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내가 가려는 길이 막힌 걸 아는 거다.
"이 금지선은 야간에 다니지 말라고 쳐진 거니까 지금은 건너 오셔도 됩니다"
모습 스캔하니 나보다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점잖게 생긴 분이다.
78년에 처음 제주에 왔고 나보다 5살이 연배인 분이다. 내 행색이 백팩은 멨지만 제주에 놀러 온 여행자는 누가 봐도 아니다.
한 달 살러 왔다가 어쩌고저쩌고...
간단하게 나를 소개한다.
몇 마디 나누는데
대뜸 생면부지인 나에게 올 초에 상처했단 말을 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깊은 상심과 회한이 묻어난다.
그의 삶이 흔들리는 걸 눈치챈다.
온통 그의 정신을 지배하는 건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의 기억이리라.
절절함이 전해온다.
칠순 넘어 홀로된 노인의 사부곡에 가슴이 저린다.
칠십리시 공원 초입에 자기 농원이 있다고 잠시 들려 차 마시고 가란다.
감나무와 귤 나무가 가득한 너른 부지에 이동식 집으로 나를 이끈다.
정돈된 서너 평 방에 날 앉혀두곤 차를 끓이는 뒷모습이 애잔하다.
감을 깎아내더니 젊은 날의 아내와의 추억을 또 꺼낸다. 지금은 제주시에 살고 있고
딸이 서귀포에 있어서 가끔 이 농원에 와서 지낸단다.
여기저기 땅과 건물이 있어서 관리하고 지내는데 요새 힘들고 귀찮단다.
마누라 가고 나니 다 허무하고 의미 없단다.
내가 여기서 무얼 하며 사는지 묻는다.
가까운 시내에서 국숫집 한다 하니 살짝 놀란다.
그 놀람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외지인이 이곳에 와서 그 나이에 그것도 혼자서...
"부인은?" 하고 뒤달아서 바로 묻는다.
모든 기준은 아내의 존재 유무다.
육지에 계시다 하니 부러워한다.ㅋ
이곳에서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함께
맺은 만남이 참 많다.
오늘 아침도 그런 만남 중의 하나이고
그분의 애 닮음이 마음에 남아서 이 글을 쓴다.
처음 한 달 살이 할 때 공천포를 걷다가 만난 리트리버와 함께 있던 빵 카페 주인장과의 만남으로 호텔 주방에
접시 닦이로 첫 취업을 했다.
파란만장 제주 생활의 첫 작이다.
거기서 만난 옥순 대리와 불굴의 칠순의 제주 할망들.
골프장 다니는 내내 아침 출근길에 나를 데려다
준 L 씨. 날 괴롭히던 K 반장. 술친구 젊은 S 군.
두 번에 걸친 올레길 지킴이 5조 동료들.
올레길 완주 때 추자도에서 만난 부부.
당근에서 김치냉장고 구매할 때 만난
제주 굴지의 골프장 셰프.
한 달 살이 할 때 위미리 펜션 쥔아주머니.
결이 고운 모슬포 짜장면 집 N 사장.
국숫집 손님으로 온 K 박물관 관장.
영어마을 관리소장 등등등
헤아려보니 제주에서 참 많은 만남이 있었다.
그중에는 집에 와서 자기도 하고
매주 토요일이면 진탕 마셔대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많이 만났다.
제주도는 이런저런 이유로 육지에서
건너와서 사는 사람 많다.
인생의 승리자도, 루저도 있다.
만남에는 시간과 감정을 필연적으로 나눈다.
때론 일상이 흔들린다.
삶의 낭비가 너무 크다.
가벼워지려고 여기 왔다.
관계를 끊어낸다.
끊김을 당한다.
다 지나간다.
다 스쳐간다.
내가 받은 아쉬움보다
내가 준 상처가 더 큰 게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
헤프게 인연을 맺지 마세요.
"인연 맺기는 신중해야 합니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야 해요."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해요"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 의해서 접촉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죠."
"그들만이라도 진실하게 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그것이 아니라며ㆍ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해요."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투자하세요.
그래야 좋은 결실을 맺습니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에요."
/ 법정의 말씀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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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한다.
관계를 만드는 거보다 덜어내라.
나에게 좋은 관계든 나쁜 관계든
서서히 덜어내라.
기꺼이 스쳐 보내라.
그것 때문에 마음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라.
더 더 더 더! 가벼워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