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세계에 대한 질문 — No. 3
린은 매일 아침 자신의 유전자 리포트를 확인한다.
2087년,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게놈 지도를 받는다. 병에 걸릴 확률, 성격 경향, 기대 수명. 린의 리포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유전적 우울 성향: 73% | 창의적 사고 능력: 상위 8% | 심혈관 질환 위험: 62세 이후 급증 ]
린은 이 숫자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각인된 코드. DNA의 서열.
하지만 린의 직업은 "조건 설계자"다.
그는 화성 테라포밍 프로젝트에서 일한다. 붉은 행성에 생명체를 이식하기 위해, 극한의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일. 린이 만드는 것은 생명체가 아니라, 생명체가 자라날 수 있는 조건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기도문이 떠올랐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화성의 중력은 바꿀 수 없다. 지구의 38%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 중력 안에서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은 만들 수 있다.
[과학자의 노트]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짧은 메모.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이것은 물리학의 근본 법칙 중 하나다. 닫힌 계에서 무질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항상 늘어난다. 깨진 컵은 스스로 붙지 않고, 섞인 물감은 스스로 분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소적으로는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다. 에너지를 투입하면 무질서를 질서로 바꿀 수 있다. 냉장고는 음식을 차갑게 유지하고, 생명체는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우주 전체의 법칙은 바꿀 수 없지만, 내가 서 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는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오늘, 린은 긴급 호출을 받았다.
화성 제3거주구역의 산소 생성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이끼 군락이 예상보다 20% 느리게 성장하고 있었다. 현재 속도로는 거주민들이 이주하기 전에 충분한 산소를 확보할 수 없다.
린은 데이터를 분석했다. 온도, 습도, 토양 성분, 자외선 강도. 모든 변수가 설계대로였다. 그런데 왜?
그는 화면을 확대했다. 이끼의 세포 구조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발견했다.
이끼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화성의 낮과 밤은 지구와 비슷하다. 하지만 온도 변화폭이 훨씬 크다. 낮에는 20도, 밤에는 영하 80도. 이끼는 이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느라 성장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있었다.
바꿀 수 없는 것: 화성의 온도 변화폭.
바꿀 수 있는 것: 이끼가 그 변화를 감지하는 방식.
린은 새로운 설계안을 만들었다.
온도 자체를 바꾸는 대신, 이끼 군락 사이에 미세한 단열층을 설치했다. 돌가루와 에어로겔을 섞어 만든 얇은 막. 이것은 온도 변화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변화 속도를 늦췄다.
2주 뒤, 이끼의 성장률이 정상화되었다.
그날 밤, 린은 자신의 유전자 리포트를 다시 봤다.
[ 유전적 우울 성향: 73% ]
이것은 바꿀 수 없다. 린의 뇌는 세로토닌을 덜 생성한다. 이것은 DNA가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린은 지난 5년간 우울증으로 고생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 햇빛을 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창작 활동을 한다. 화성 설계도를 그리는 것. 이것이 그의 '단열층'이었다.
유전자가 만드는 온도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변화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조건은 운명이 아니다.
조건은 설계의 출발점이다.
린은 새 파일을 열었다. 제목은 "개인 환경 설계 프로젝트"였다.
화성의 이끼를 살리듯, 자신을 살리는 방법. 바꿀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을 적고, 그 옆에 바꿀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바꿀 수 없는 것들:
• 유전적 우울 성향 73%
•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 시점
• 과거에 받은 상처
• 화성의 중력
바꿀 수 있는 것들:
• 매일 아침의 루틴
• 내가 노출되는 자극의 종류
• 스트레스 변화 속도를 늦추는 완충 장치
• 내가 설계하는 환경
린은 창밖을 봤다. 지구가 창백한 푸른 점으로 보였다.
저 행성에서 태어난 생명체가, 붉은 행성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설계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다.
조건을 받아들이되, 반응은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린은 파일을 저장하고, 불을 껐다.
내일 아침, 그는 다시 자신의 유전자 리포트를 볼 것이다. 숫자들은 그대로일 것이다.
하지만 린은 괜찮을 것이다.
그는 이제 안다.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는, 둘을 분리하는 게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의 설계 조건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있다는 것을.
글 · 잡학도서관 모따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