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설계의 역설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세계에 대한 질문 — No. 18

by 모따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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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2135년 서울의 '맞춤형 유전자 설계 센터'에서 일한다.


그의 직함은 "유전자 최적화 설계자"다. 태어날 아기의 유전자를 부모가 원하는 대로 설계한다. 질병 제거, 지능 강화, 외모 개선. 2125년 기술 상용화 이후 10년, 이제는 흔한 일이다.


오늘 현수는 새로운 의뢰를 받았다.


[ 신규 의뢰 ]

의뢰인: 박민준, 이서연 부부
나이: 38세, 35세
직업: 대기업 임원, 의사
예산: 제한 없음

요청사항:
"완벽한 아이를 원합니다. 단점 없이, 장점만 있는."


현수는 부부를 만났다.


"완벽한 아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박민준이 대답했다. "단점이 없어야 해요. 질병도 없고, 능력도 뛰어나고, 외모도 좋고. 모든 면에서 최고."


"하지만 모든 특성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이서연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거예요. 최고의 설계자라고 들었어요. 단점은 제거하고 장점만 남겨주세요."


현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시도해보겠습니다."


[과학자의 노트 1]

유전자 설계의 원리에 대한 짧은 메모.

2125년, CRISPR 기술의 완성으로 인간 유전자 편집이 상용화됨.

가능한 것들:
- 유전 질환 제거 (낭포성 섬유증, 헌팅턴병 등)
- 신체 능력 강화 (근력, 지구력, 대사율)
- 지능 관련 유전자 최적화
- 외모 관련 유전자 조정

하지만 문제가 있다:
다면발현(Pleiotropy) -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형질에 영향

예시:
- 지능 향상 유전자 → 불안 장애 위험 증가
- 근력 강화 유전자 → 심장 부담 증가
- 장수 유전자 → 암 위험 증가

진화의 트레이드오프: 자연은 균형을 선택했다. 모든 것을 최대화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현수는 설계를 시작했다.


1단계: 질병 유전자 제거.


암, 당뇨, 심장병, 알츠하이머. 모든 위험 유전자를 제거했다.


하지만 보고서에 경고가 떴다.


[ 경고: 면역 과민 반응 위험 ]

질병 저항 유전자 과다 활성화 시:
- 자가면역질환 위험 증가
- 알레르기 과민 반응
- 염증 반응 과다

권장: 적정 수준 유지


현수는 고민했다. 하지만 부부가 원한 것은 "완벽"이었다. 경고를 무시하고 진행했다.


2단계: 지능 최대화.


IQ 관련 유전자를 모두 최적화했다. 예상 IQ: 160+.


또 경고가 떴다.


[ 경고: 신경 발달 불균형 ]

고지능 유전자 조합 시:
- 감각 과민성 증가
- 사회성 발달 지연 가능성
- 불안 및 강박 장애 위험

권장: 균형 잡힌 지능 설계


현수는 다시 무시했다. 완벽을 원했으니까.


3단계: 외모 최적화.


황금비율 얼굴, 키 185cm, 균형 잡힌 체형.


[ 경고: 사회적 부작용 ]

과도한 외모 우수성:
- 또래 관계에서 고립 가능성
- 타인의 질투 및 적대감
- 외모 의존적 자아 형성

주의: 사회적 맥락 고려 필요


현수는 경고를 닫았다. 4단계로 넘어갔다.


4단계: 체력 강화.


근력, 지구력, 회복력 모두 최대치.


[ 경고: 에너지 대사 불균형 ]

과도한 체력 강화:
- 높은 칼로리 요구량
- 수면 장애 (과잉 에너지)
- 심장 및 관절 부담 증가

권장: 생활 패턴에 맞는 적정 수준


현수는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설계를 완료했다.


완벽한 아이. 단점 없이.


그는 부부에게 보고했다.


"설계 완료했습니다. 모든 요청사항이 반영되었습니다."


"완벽한가요?"


"...네. 완벽합니다."




10개월 후,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 박서진.


현수는 정기 검진 보고서를 받았다.


[ 박서진 - 6개월 검진 ]

신체:
- 건강 상태: 우수
- 성장 속도: 정상 상위 5%
- 질병: 없음

하지만:
- 알레르기 반응 과민 (먼지, 꽃가루, 특정 음식)
- 피부 발진 빈번
- 작은 자극에도 염증 반응


현수는 기록을 봤다. 예상했던 부작용이었다. 면역 과민.


12개월이 지났다.


[ 박서진 - 18개월 검진 ]

인지 발달:
- 언어 능력: 또래 대비 200% 빠름
- 문제 해결 능력: 탁월
- IQ 추정: 155+

하지만:
- 또래와의 소통 어려움
- 소음에 극도로 민감
- 작은 변화에도 불안 표현
- 혼자 있기를 선호


현수는 한숨을 쉬었다. 고지능의 대가.


3년이 지났다.


[ 박서진 - 3세 평가 ]

사회성:
- 어린이집 적응 실패
- 또래 친구 없음
- 이유: "애들이 시끄러워요. 유치해요."

외모:
- 이미 또래보다 눈에 띄게 준수함
- 어린이집 교사들의 과도한 관심
- 다른 부모들의 질투 어린 시선

신체:
- 체력 우수하나 수면 부족
- "잠이 안 와요. 몸이 너무 움직이고 싶어요."
- 하루 4-5시간 수면


현수는 부부에게 연락을 받았다.


"현수 씨, 서진이가... 힘들어해요."


"어떤 면에서요?"


"모든 면에서요. 똑똑하긴 한데 친구가 없어요. 건강하긴 한데 항상 가려워해요. 잘생겼는데 그게 오히려 문제예요. 사람들이 너무 쳐다봐서 서진이가 불편해해요."


"그리고 잠을 안 자요. 너무 에너지가 넘쳐서. 밤새 뛰어다녀요."


현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원하신 대로 설계했습니다. 단점 없이, 장점만."


"하지만 이게 장점인가요?" 이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진이는 불행해요."




현수는 서진을 직접 만나러 갔다.


5살 서진. 이미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책을 읽고 있었다.


"서진아, 책 재밌니?"


"네. 근데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애들은 이런 거 안 읽거든요."


"유치원에서는 어때?"


"시끄러워요. 너무. 귀가 아파요. 그리고 애들이 저를 이상하게 봐요."


"왜?"


"잘생겨서요. 선생님도 저만 예뻐해요. 그래서 다른 애들이 싫어해요."


서진이 팔을 긁었다. "그리고 자꾸 가려워요. 엄마가 이것저것 못 먹게 해요. 알레르기래요."


"밤에는 잘 자니?"


"못 자요. 몸이 너무 움직이고 싶어요. 근데 밤이니까 뛰면 안 된대요. 답답해요."


현수는 서진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단점을 제거했다.

질병, 낮은 지능, 평범한 외모, 약한 체력.

그리고 장점만 남겼다.

건강, 고지능, 뛰어난 외모, 강한 체력.

하지만 장점은... 맥락에 따라 단점이 되었다.

건강 → 면역 과민 → 알레르기
고지능 → 또래와 단절 → 외로움
외모 → 과도한 관심 → 고립
체력 → 과잉 에너지 → 불면

단점 없는 장점은... 없었다.


현수는 연구실로 돌아와 오래 생각했다.


그는 과거 설계 사례들을 다시 확인했다.


케이스 1: 질병 저항성 극대화 → 자가면역질환 발병


케이스 2: 공감 능력 강화 → 감정 과부하, 우울증


케이스 3: 완벽한 기억력 → 트라우마 잊지 못함, PTSD


케이스 4: 통증 둔감 → 부상 인지 못함, 사고 위험


모든 케이스에서 같은 패턴.


장점을 극대화하면, 다른 맥락에서 단점이 된다.


[과학자의 노트 2]

최적화의 역설에 대한 짧은 메모.

진화는 왜 우리를 "완벽"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답: 완벽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

모든 특성은 트레이드오프다.
- 높은 지능 = 높은 에너지 소비
- 강한 면역 = 자가면역 위험
- 빠른 성장 = 빠른 노화
- 큰 근육 = 높은 유지 비용

진화는 균형을 선택했다.
모든 것을 최대로 만들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수준.

완벽함은 맥락 의존적이다.
어떤 환경에서 완벽한 것이,
다른 환경에서는 재앙이 된다.

예:
- 낫적혈구 유전자: 말라리아 저항 (장점) + 빈혈 (단점)
- 높은 키: 심혈관 부담 증가 + 사회적 이점
- 백색 피부: 비타민D 합성 유리 + 자외선 손상

결론: 단점 없는 장점은 없다.

현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 연구 보고서: 완벽한 설계의 불가능성 ]

연구 질문: 단점 없는 장점만 가진 인간을 설계할 수 있는가?

결론: 불가능하다.

이유:

1. 다면발현 (Pleiotropy)
- 하나의 유전자 = 여러 형질 영향
- 한 형질 최적화 = 다른 형질 부작용

2. 맥락 의존성
- 장점/단점은 절대적이지 않음
-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함
- 예: 고지능은 학업에서 장점, 사회성에서 단점

3. 진화적 트레이드오프
- 자연은 균형을 선택함
- 모든 것 최대화 = 생존 불리
- 적절한 수준 = 생존 유리

4. 사회적 맥락
- 개인의 완벽함 ≠ 사회적 적응
- 타인과의 차이 = 고립 원인

권고사항:
"완벽한" 설계를 추구하지 말 것.
대신 균형 잡힌 설계를 추구할 것.

단점을 제거하려 하지 말 것.
단점은 장점의 이면이기 때문.


현수는 부부를 다시 만났다.


"죄송합니다."


"왜요?"


"제가 불가능한 것을 약속했습니다. 단점 없는 장점."


"그럼... 서진이는?"


"서진이는 완벽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완벽함은 맥락에 따라 불완전함이 됩니다."


박민준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서진이를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장점과 함께 온 단점들을. 그리고 서진이가 균형을 찾도록 도와주세요."


이서연이 눈물을 닦았다. "우리가 완벽을 원한 게 잘못이었네요."


"잘못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완벽은 환상이라는 것을."




현수는 센터로 돌아와 새로운 정책을 제안했다.


[ 신규 설계 가이드라인 ]

변경 사항:

1. "완벽한 설계" 거부
- 모든 특성 최대화 설계 금지
- "단점 없는 장점" 요청 시 상담 의무화

2. 균형 설계 권장
- 적정 수준 유지
- 극단 회피

3. 부작용 고지 강화
- 모든 장점의 잠재적 단점 설명
- 맥락 의존성 교육

4. 사회적 맥락 고려
- 타인과의 차이가 가져올 문제 안내
- 적응 가능성 평가

목표:
완벽한 아이가 아니라,
균형 잡힌 아이


정책은 승인되었다.


하지만 현수는 알았다. 여전히 많은 부모들이 완벽을 원할 것이다.


단점 없이, 장점만.

불가능한 것을.

현수는 창밖을 봤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모두 다르다. 키, 외모, 걸음걸이.


누군가는 뛰어나고, 누군가는 평범하다.


하지만 모두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단점 없는 장점은 있을까?

나는 그것을 찾으려 했다.

질병 없는 건강,
부작용 없는 지능,
문제없는 아름다움,
대가 없는 힘.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장점과 단점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

건강 = 면역 과민
지능 = 사회적 단절
아름다움 = 타인의 시선
힘 = 통제의 어려움

맥락이 바뀌면, 장점은 단점이 된다.

그럼 완벽은?

완벽은 없다.
적절함만 있을 뿐.

상황에 맞는, 균형 잡힌.

서진이는 완벽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바로 그 완벽함이 그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역설이다.

그리고 나는 배웠다.

단점은 제거할 대상이 아니다.
장점의 일부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현수는 다음 의뢰를 열었다.


또 다른 부부. 또 다른 요청.


"건강하고, 똑똑하고, 예쁜 아이를 원합니다."


현수는 그들을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단점도 괜찮으신가요?"


"네? 누가 단점을 원해요?"


"단점 없는 장점은 없습니다. 건강하면 알레르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똑똑하면 외로울 수 있습니다. 예쁘면 질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부부는 당황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균형을 찾으세요. 완벽이 아니라, 적절함을. 극단이 아니라, 중간을."


"그게... 좋은 건가요?"


"좋은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살 만합니다. 완벽보다는."


현수는 설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르게.


모든 것을 최대로 만들지 않았다.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똑똑하고,


적당히 예쁜.


그리고 적당히 불완전한.


단점도 있는.


살 만한.


아이를.


글 · 잡학도서관 모따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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