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불합격 임용을 끝내고,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살아간다.
나는 2012년 가을에 출산을 하고, 다음 해 3월부터 바로 노량진으로 향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9번이나 시험에 응시하게 될 줄을...
'아이 유치원 가기 전에는 반드시 합격하자.'
'아이도 낳았는데 무엇을 못하겠는가?'
독하게 마음먹었었는데, 나에게는 임용이 출산보다 어려웠다.
합격해야 끝날 줄 알았다.
매년 새해 소망은
'주님 합격하게 해 주세요.'로 시작한다.
매년 말, 합격자 발표날에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라는 글귀를 나는 9번이나 만났다.
어떤 해는 대성통곡하기도 했고,
어떤 해는 무던하게 지나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9번의 시험을 치렀다.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정말로 교사가 되고 싶었다.
소위 명문고에 다녔다. 중학교 때까지는 착한 모범생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입학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생각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우리 집이 많이 어려워 '꼭 서울대'에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럼 열심히 공부했어야 했는데, 독하지 못했다. 성적 올리는 일은 너무 어렵고, 집은 더욱 어려워지고 공부가 진짜 싫었다. 그래서 잠시 방황했을 때, 고2 담임선생님이 나를 제자리로 돌려놔 주셨다.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었던 내게 한줄기 희망이 되어 주셨다. 그래서 나 역시 고2 담임선생님과 같은 분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바보같이 견뎠는지도 모르겠다. 반드시 교사 돼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해가 갈수록 합격에 대한 염원이 커졌다.
합격해서 발령받은 첫 수업 때, 아이들을 위해서 꼭 해주고 싶었던 말.
"너희를 만나기 위해 선생님이 진짜 임용고시를 많이 봤어. 선생님 진짜 힘들었는데 너희를 만나서 감사해. 너희들도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렴."
하지만 이 말은 이제 할 수 없는 말이 되었다.
합격 하나면 충분했는데, 아이들이 좋고,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서 합격해서도 나는 평교사로 정년퇴직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나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임용을 하는 시간 동안 아이는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여전히 합격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참으로 정직하게 흘렀다. 어느 날은 정말 힘들어서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고, 가장 크게는 소중한 우리 아이가 있었다. 아이와 온전히 시간 한 번 보낸 적 없는 엄마가 아이의 엄마 자리를 부재로 만들면 안 되지 하면서 이 악물고 버텼다.
나는 임용을 하는 동안 가족의 시간을 모두 빌려 썼기에 그만한다는 것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거 같다. 나의 한 시간은 우리 딸의 시간에 우리 엄마의 시간, 그리고 남편의 시간까지 최소 3시간 이상의 한 시간이었다. 내가 임용을 그만한다고 하면 가족의 그간 시간까지 물거품이 되는 것처럼 느껴져 더욱 그만한다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때라도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조금 더 발을 일찍 뺐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원 없이 공부했다.
아이 어릴 때 사진 속에 내가 없을 정도로 난 가족여행에도 온전히 참여한 적이 없다. 가족여행을 할 때면 도서관 끝나고 밤에 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 나오는 밤도깨비로 가족여행에 참여했다.
아이 어릴 때, 딸에게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라고 물으면,
"우리 엄마는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답했고,
엄마 어디 갔냐고 물으면,
"우리 엄마는 도서관 갔어요."라고 대답했다.
덕분에 우리 딸은 어릴 때부터 도서관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살얼음 같은 임용공부 속에서 오늘 10시간 공부하면, 내일은 12시간을 공부해야 따라갈 수 있는 공부량이 너무나 버거웠다.
정말 내일 눈뜨지 않았으면 하고 잠든 적도 많았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적도 많았고,
너무나 무서워서 울면서 잠든 날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도 내가 그 두려움을 견뎌낼 수 있던 힘은, 가족이다.
우리 엄마가 나 대신 우리 딸을 소중히 키워 주셨고,
내가 선생님이 하고 싶다 하니 적극적으로 밀어준 남편이 있었고,
항상 감사하게 나를 마음속으로 응원해 준 양가 가족이 있었고,
그리고 정말 가장 소중한 우리 딸이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딸에게
엄마가 나쁜 생각을 하면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딸의 엄마 자리를 나의 순간의 나쁜 선택으로 공석을 만들면 정말 큰 벌을 받을 거 같았다.
그렇게 우리 딸을 위해, 견뎌내었고,
그 견뎌낸 시간을 통해 난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리라 마음을 굳게 다짐했었다.
우리 가족이 나를 묵묵히 지지해 주고, 기다려준 것처럼
나 역시 어떤 상황의 아이들이라도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을 보내고, 임용의 시간과는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만학도 분들과 학교 밖 청소년들의 선생님이 되어 감사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임용고시를 견뎌낸 시간으로 우리 학생들과 정말 행복하고 활기차게 지내고 있다.
임용고시를 하면서 내가 느꼈던 마음들을 생각하며 온전히 학생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 딸과 함께 온전히 시간을 보내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매년 떨어진 나에게 한 말처럼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오늘을 살아야 한다."
더 맛있게 먹고, 더 열심히 웃으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 역시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삶이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9번 임용에서 떨어진 어떤 이도 어찌어찌, 잘~ 살아가고 있다고,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임용에서는 불합격생이지만, 인생에서는 합격생이 되고자 현재를, 지금을 충실히 살아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