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면 저는 작년 이맘때가 떠오릅니다.
작년 봄, 우리 딸은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때 우리 가족에게는 조금 특별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 딸은 발레를 전공하며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아이의 꿈에 맞추어 우리는 지역을 옮겼습니다.
익숙했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한 삶.
그리고 아이는 마침 개교하는 중학교에 배정되었습니다.
새 학교. 새 교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친구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낯선 시작이었습니다.
등교하자마자
아이에게서 들은 한마디에
제 마음이 내려앉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혼자 밥을 먹었다는 상황도 속상했지만
무엇보다 그 말을 하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늘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던 아이에게
그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도 놀랐고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이 한동안 제 귓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면 속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상황에서도 꿋꿋이 밥을 먹은
아이의 작은 힘이 느껴졌습니다.
아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습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조금 지나면 친구들 생길 거야.”
태연한 척 이야기했지만 사실 제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함께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녁이 되면 자연스럽게 가족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하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울고,
어떤 날은 마음이 무거운 채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아이의 학교생활이 힘들어지니
엄마의 하루도 함께 흔들렸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오늘은 괜찮았을까.
친구는 생겼을까.
또 혼자 밥을 먹지는 않았을까.
엄마라는 존재는 참 이상합니다.
아이의 하루가 힘들면
엄마의 하루도 함께 무너집니다.
하지만 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있었습니다.
약 3주 정도가 지나자
아이는 조금씩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은 친구들이랑 같이 밥 먹었어.
우리반 친구들하고 거의 다 친해진거 같아."
그 한마디에 마음이 얼마나 놓이던지.
그렇게 조금씩 아이의 학교생활이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 딸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르는 친구 없이 학교를 다닙니다.
이제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밤이 늦도록 웃으며 이야기를 합니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새 학기 증후군은 아이만 겪는 시간이 아니라
엄마도 함께 견뎌내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 안에 있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은 결국 우리를 그 터널 밖으로 데려다줍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아이를 끌고 갈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뒤에 서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수는 있습니다.
아이의 옆에서 가장 큰 응원군이 되어줄 수는 있습니다.
아이가 흔들릴 때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아이가 주저할 때
“엄마는 네 편이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부모입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조금 흔들릴 뿐 결국 자신의 자리로 걸어갑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믿어보기로 합니다.
우리 아이가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의 뒤에서
든든히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부모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며
아이도, 부모도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