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랑 밥 먹을 때야

by 뚝이샘

우리 어머님은 여든을 훌쩍 넘기셨지만
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하셨다.

배움을 포기한 게 아니라,
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생계를 짊어지고
가족의 가장이 되어야 했던 분이셨다.

그렇게 글 대신 삶을 배운 어머님은
세상의 언어보다 더 깊은 ‘사람의 말’을 아신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 세상에 태어나셨다면,
중요직 한자리는 하셨을 대장부 셨을 거라고.


결혼 초, 내가 임용 공부를 시작했을 때
어머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공부하는 며느리 손에 김치냄새 베이면 안 되지.
너는 공부만 하거라.

공부하는 귀한 손에 음식냄새나면 안 돼.”



그 말에 진짜 마음이 쿵~했는데...

나는 정말로 책만 잡았다.
설거지도, 청소도, 명절 음식도
한 번도 먼저 시키지 않으셨다.



그렇게 오랜 세월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결국 나는 합격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너무나 죄송하다.


내가 얻지 못한 건 합격에 부족한 점수였지만,
보다 더 많이 잃어버린 것은 시부모님과의 시간이었다.


요즘 어머님은 내게 자주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는 나랑 밥 먹을 때야.
돌아가신 아버지도 늘 그러셨어.
막내며느리 공부만 하느라
같이 여행도, 마음 편히 놀지도 못했다고…
이제 우리 많이 놀자. 응?

모든 일이 다 때가 있는 거야.

지금은 나와 밥 먹을 때다.”


그 말을 들으면 시간이 잠시 멈춘다.
아버님의 웃음소리와 어머님의 손길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너무나 늦게 알았다.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걸.

공부할 때가 있었고,
이제는 어머님과 놀 때다.

밥 한 끼라도 더 함께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어머님과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중요한 공부를 시작한 기분이다.
‘사람을 배우는 공부.’


나는 이제 안다.
합격보다 큰 복은,
그런 어른을 만나는 복이라는 것을...


오늘은 그 어른의 손을 꼭 잡고,

웃으며 밥 한 끼를 함께한다.


작가의 이전글묻지 않음으로 믿어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