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미안한 순간은,
아이의 서운함을 뒤늦게 알아챘을 때였다.
딸은 독감이었다.
어제는 음성이었는데,
밤새 고열로 뒤척였다.
수액을 맞으며 딸이 말했다.
“엄마, 내가 진짜 아팠거든.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나도 참고 참다가 조퇴한다고 했겠지.”
그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교사로서 나는,
“아프면 조퇴하세요.”
편하게 말하면서,
엄마로서 나는,
“조금만 더 참아보자.”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생각이 멈췄다.
‘내가 우리 딸을 그렇게 몰랐을까?’
우리 딸 성격에, 참고 또 참다가
마지막에야 전화했을 텐데.
그런데도 나는, 그 마음을 읽지 못했다.
그 말 한마디에 모든 미안함이 쏟아졌다.
어제 그렇게 다짐했건만.
‘멋진 어른이 되자’고,
‘조금 더 단단해지자’고,
스스로를 다독였건만.
오늘도 난 딸에게 사과한다.
“엄마가 표현이 서툴렀어. 미안해.”
사실, 나도 안다.
우리 딸은 쉽게 ‘아프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아이란 걸.
참고 또 참다가, 진짜 힘들 때에야 겨우 말하는 아이란 걸.
그런데도 나는, 그 마음보다 내 판단이 앞섰다.
괜찮을 거라는 말로 그 아이의 신호를 덮어버렸다.
우리 어머님은 늘 말씀하셨는데...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래, 다 이유가 있겠지.
아이가 울먹인 것도, 내가 미안해진 것도,
결국은 우리 둘 다 서툴게 사랑했기 때문이겠지.
오늘 나는
‘좋은 교사’보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배운다.
감기보다 서운함이 더 아픈 날들 속에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조금씩 익혀간다.
그래,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