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기억하는 계절에 대하여

by 뚝이샘

이맘때가 되면 아무 일도 없던 얼굴로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가슴이 먼저 떨린다.

머리는 이미 그 시간을 지나왔다고 말하는데
몸은 아직, 그 계절을 잊지 못한 듯하다.
아마도 임용고시라는 시간은
머리보다 몸에 더 오래 남는 기억이었나 보다.



나는 임용고시 안에서 꽤 긴 시간을 살았다.
그리고 그 시간에서 벗어난 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이 계절이 오면 마치 오래된 알람처럼
몸이 먼저 반응한다.



지난주, 임용고시 1차 발표가 있었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같은 떨림으로
이 계절을 건너고 있을 얼굴들이 떠오른다.

합격이라는 문 앞에 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문턱에서 멈춰 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 앞에 서기까지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 문 앞에서 아홉 번이나 돌아섰다.

남편은 늘 한결같았다.


“뚝이야~합격했다면 좋았겠지만,
불합격했다고 우리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
더 많이 웃고, 더 잘 먹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면 돼.”


그 말이 처음에는 조금 잔인하게 들리기도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다는 게
그날의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그 문장의 다른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 말은 외면이 아니라 붙잡아 주는 말이었다는 것을.


시험이 나를 흔들 수는 있어도
삶 전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것.
오늘 밥을 먹고,
내일을 살아내는 일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 말은 조용히 가르쳐주고 있었다.


불합격의 시간 속에서도 나는 그렇게 하루를 살았다.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얼굴로,
그러나 분명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사람으로.

아홉 번의 불합격은
나를 부서뜨리기보다는
다르게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그 시간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이 계절을 건너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결과가 당신의 전부는 아니라고.
그리고 이 시간을 지나고 있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고.


몸이 먼저 기억하는 계절을 지나
우리는 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삶은, 시험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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