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리동네 우리만 아는 이야기 ⑧ ♣

― ‘도둑놈 마질’, 그 여름밤의 전설 ―

by 전략가 박용상

우리 동네 아이들의 밤놀이 중 으뜸은 단연코 ‘도둑놈 마질’이었습니다. (‘마질’은 놀이를 뜻하는 전남 해남 화원 반도의 토속어). 이 놀이가 다른 동네에도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중리동네에서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놀이였습니다. 형님들로부터, 또 그 형님의 형님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그야말로 세대를 잇는 전통 놀이였습니다.

한 번은 나이차이가 꽤 나는 우리 집 맏형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형님 때도 ‘도둑놈 마질’이 있었나요?” 형님은 웃으시며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숨느라고 우리 동네 지붕 중 안 타본 지붕이 없을 정도였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터진 웃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리만의 유산 같은 추억입니다.

이 놀이 방식은 얼핏 보면 ‘술래잡기’, 즉, 우리 동네 토속어인 ‘꿈은 마질’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꿈은 마질’은 술래 한 명이 숨어 있는 사람들을 다 찾는 구조인데, ‘도둑놈 마질’은 참가자 절반이 술래이고, 절반은 숨는 그런 놀이로 일종의 기마전과 같은 대항전이었습니다. 골목대장 두 사람을 중심으로 양편으로 나뉘어 놀이를 하다보니 훨씬 스릴 있고, 흥미진진했으며, 팀플레이의 재미까지 있었습니다. 숨을 수 있는 범위도 굉장히 넓었습니다. 치깐(화장실), 돼지막(돼지우리), 정재(부엌), 곡깐(곡간, 창고), 지붕 위, 뒤안(뛰뜰)까지, 말 그대로 동네 전체가 ‘꿈은 마질’의 무대였습니다.

한 번은 아무리 찾아도 두 사람을 끝내 찾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술래팀에서 ‘타부’를 외쳤지요. 타부란,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을 때 술래들이 일종의 타임을 외치는 겁니다. 그러면 숨은 사람들이 전부 나와야 하고, 인원을 확인한 후, 놀이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규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혹시 한 사람이라도 중간에 집에 가서 잠이라도 자버리면 그 사람을 밤새도록 찾아야 하니, 그걸 막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날 숨어 있던 형들에게 대장 형들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디 있었냐?” 그랬더니, 복근이 형네 방 안에 있는 ‘감재 두 대통’(고구마 저장통)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사건 이후로 ‘방 안 출입 금지’ 규칙이 생겼습니다.

이것 말고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참 많았습니다. 한 번은 술래들이 숨은 도둑들을 찾기 위해 소자 형님네 치깐, 나무 벼늘(땔감으로 쌓아놓은 나무 뭉치), 뒤안, 부엌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한 사람도 찾지 못했습니다.마지막에 돼지우리로 갔는데 거기에는 돼지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깜깜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 형태가 묘하고 어색했습니다. 한 사람이 돼지우리로 다가서려 하자 그 돼지가 ‘꿀꿀’거렸습니다. 돼지 울음소리였기에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다음 집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203~0분쯤 지나서 다시 들른 그 돼지우리에는 이제는 돼지가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또 20~30분 후에 다시 들렀더니 이번에는 다시 두 마리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돼지는 또 ‘꿀꿀’거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돼지가 요술 부리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한 마리가 되었다가 두 마리가 되었다가 하겠습니까. 그 돼지의 정체는 재실이 형이었습니다. 진짜 돼지 옆에 누워, 온몸을 움츠리고 돼지 흉내를 내며 꿀꿀거렸던 것이지요. 그 울음소리만큼은 우리나라 당대 최고의 성대모사 대가들인 남보원, 백남봉, 최병서, 배칠수 씨가 와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돼지울음 소리와 똑 같았습니다.

또 한 번은, 놀이 범위를 더 넓혀 본 동네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선창가의 작은 중리 마을까지 확장해 ‘도둑놈 마질’을 했습니다. 그곳에는 호식이 형 집이 있었습니다. 동네 형님 중 한 분이 그 집의 재래식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술래가 다가오자 더 깊숙이 들어가다가 그만 재래식 화장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당장 몸에 묻은 오물을 씻어내야 했는데, 마침 그 집 앞마당에 작은 샘이 있었습니다. 샘의 깊이는 얕아 당시 초등학교 학생이던 우리들의 가슴쯤 오는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물을 퍼서 씻으려면 물소리가 요란하게 날 것이고, 그러면 호식이 형네 식구들이 혹시 닭서리라도 하러 온 줄 알고 나올 게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몸은 씻어야겠고, 방법은 없고...

그 형은 결국 그 샘 안으로 아예 들어가서 조용히 몸을 씻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이었지만, 그 당시엔 오물을 뒤집어쓰고 집에 가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들을 것이 뻔하고, 다음 날부터 밤에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되니, 어떻게든 씻고 가야겠다는 마음에서 그랬을 겁니다.

그것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나중에 그 집 식구들은 그 후 모두 고향을 떠났고, 지금쯤은 다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묘소라도 안다면, 그 시절의 철없던 장난을 용서해 달라고 절이라도 올리고 싶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시는 그때 장본인인 형님, 그 다음날 그 집식구들 그 상황을 알았는지 확인이나 해 보셨는지요?

또 한 번은 정기 형과 누군가가 며칠째 계속해서 안 잡혀 결국 ‘타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방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게임을 다시 시작했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기 형은 이틀 연속 여전히 안 잡혔습니다. 분명히 정기 형네 부억 쪽에서 나왔다는데, 그 부억을 아무리 찾아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던 삼일째 되던 날, 마침내 그 비밀이 드러났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감재 두대통’이라 불리는 고구마 저장고를 방안에 설치해 두곤 했습니다. 겨울 양식인 고구마를 보관하기 위해 방 안 한쪽에 설치한 ‘감재 두대통’은 방 면적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저장 공간을 부엌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부엌은 방과 똑같이 온기가 있어 보관 여건이 방과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엌의 한쪽 바닥을 파고 그 지하에 고구마를 저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마치 군대의 혹한기 훈련 때 사용하는 땅굴 막사처럼, 부엌 바닥 아래에 작은 굴을 파고 고구마를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입구는 볏짚과 낡은 이불 등으로 덮어 온기를 빠져나가지 않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방은 넓게 쓸 수 있었고, 고구마를 삶을 때도 부엌과 가까워 훨씬 편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굴 안에 들어가 숨어 있었던 겁니다. 정기 형과 함께 숨었던 형이 다음 날 정기 형과 반대 팀이 되어 술래가 되면서 비밀이 누설되었지요.

우리는 매일 ‘도둑놈 마질’을 하며 숨을 수 있는 장소를 대부분 알고 있었기에 숨을 만한 장소는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새로운 은신처가 생기면 습관적으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꿈같은 시간이 흘러 우리 마을에도 문명의 혜택이 갑자기 휘몰아쳤습니다. 동네에 전화와 전기가 들어오고, 집집마다 하나, 둘 텔레비전을 들어 놓으면서부터 우리의 밤놀이는 하나둘씩 사라져 갔습니다. 더구나 새마을운동 이후, 모든 집이 양철지붕, 슬레이트, 기와 등으로 개량되며 더는 지붕 위에 오를 수도 없게 되었지요.

벌써 50년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 우리가 뛰놀던 골목길, 정재, 곡깐, 돼지막, 치깐, 뒤안, 지붕····

그 모든 곳이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히 떠오릅니다. 하늘의 별은 더 많아 보였고, 어둠마저 따뜻했던 그 여름밤의 기억들····

그러나 이제는 어느새 우리들의 머리 위엔 하얀 서리가 내려앉고, 아이들 웃음소리 대신 텅 빈 시골의 골목은 적막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을 함께했던 우리 형님들, 그리고 친구들····

지금은 이름도, 목소리도, 웃음도 문득문득 그립기만 합니다.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어진 지금. 우리 한 번쯤은 모두 마주 앉아 그 시절 이야기로 꽃피워보고 싶습니다. ‘도둑놈 마질’ 하던 그 여름밤처럼, 허물도 없이, 순하게, 아이처럼 말입니다.

“형님들, 그리고 친구들아! 이번 여름엔 우리, 한 번 모이는 게 어때요?” 혼자 조용히 외쳐 보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와 적막뿐입니다. 하지만 지붕 위로 달빛이 쏟아지던 그 밤처럼, 서로의 얼굴에도 다시 따뜻한 빛이 비추기를 바라면서 반드시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중리동네 우리만 아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골목에서 놀던 친구들과의 마음의 풍경을 기억하는 기록입니다.

※ 글을 읽고 정치나 전략, 캠페인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전략가 박용상’을 검색해보셔도 좋습니다.

조용히 준비해 둔 제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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