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리동네 우리만 아는 이야기⑨ ♣

― 북도부, 물길 따라 흐르던 여름의 기억 ―

by 전략가 박용상

지금도 여름이 되면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있습니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 물장구치는 소리, 웃음소리, 빨래방망이 두드리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어우러졌던 곳, ‘북도부’

북도부는 단지 냇가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들에겐 삶의 현장이었고, 누님들에겐 수다의 시간, 우리 아이들에겐 온몸을 던져 놀던 유일무이한 놀이터였습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세탁기며 수도꼭지가 일상인 때가 아니었습니다. 석택이형 할아버지네 가게 앞, 면사무소 담벼락에 처음 수도꼭지가 설치되기 전까지, 어른들은 모두 ‘서당샘’이나 ‘땅넘샘’, 상리 ‘간댓샘’까지 물을 길러 다녔습니다. 우리 또래까지도 어린 나이였음에도 물지게를 짊어지고 서당샘까지 물을 길러 다녔습니다.

물이 귀하던 그 시절, 가뭄이 들면 어머니들은 새벽도 모자라 밤을 지새워 샘가에 앉아 물을 ‘대르러’ 갔습니다.(‘대르다’는 말은 타르박으로 물을 뜰 수 있는 높이까지 물이 차기를 기다렸다 물이 차면 물을 한 타르박 긷고 다시 기다리기를 반복하는 것을 말하는 향토어임)

그러니 당연히 빨래는 집에서 하기 어려워, 북도부로 나가야 했습니다. 큰 다라(둥글고 넓은 플라스틱통)에 빨랫감과 똥비누, 빨래방망이를 넣고 머리에 인 어머니들과 누님들이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은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고운 풍경이었습니다.

북도부엔 ‘윗보’와 ‘아랫보’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주로 윗보의 뚝에 쪼그리고 앉아 빨래를 했습니다. 윗보는 수심이 얕아 아이들도 놀기 좋았고, 아랫보는 중간까지는 깊다가 얕다져서 수영을 할 수 있는 천연의 수영장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이 빨래를 하시는 동안 우리는 놀기에 바빴습니다. 누가 더 많이 띄우는지 물수제비 시합도 하고, 바위틈에 손을 넣어 붕어나 피리를 잡기도 하고, 예쁜 빠돌을 줍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남자아이들은 어른 흉내 내기에 바빴습니다. 막걸리 심부름을 맡으면 “어른들은 왜 만나면 막걸리를 마시지?” 생각하며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두어 모금 마셔보기도 하고, 아버지 봉초갑에서 담배를 빼내 종이에 말아 몰래 피워보기도 했습니다. 기침이 콜록콜록 나도 “난 괜찮아!” “나 담배 피는 폼 멋있지?”, 난 이제 담배 피울줄 안다“하며 멋 부리던 그 웃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자아이들도 언니들을 따라 세숫대야에 옷 한두가지를 넣어 머리에 이고 북도부에 갔습니다. 말은 ‘빨래하러 가는 것’이었지만, 빨래는 뒷전이고 물놀이하며 노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뚝위에 쪼그리고 앉아 언니들 흉내를 내며 빨래를 쳐도, 손놀림은 금세 물장구로 바뀌었습니다.

여름이면 거의 매일, 우리는 떼지어 북도부로 몰려갔습니다. 옷을 홀딱 벗고 윗보에서 수영을 배우고, 아랫보로 다이빙을 하며 한나절을 놀았습니다. 지금처럼 ‘수영장하러 간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늘 “목욕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도 그랬습니다. 중리 골목대원들이 북도부로 몰려갔습니다. 나는 아직 수영을 잘 못하던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라 윗보에서 놀았고, 형들은 아랫보를 넘나들며 다이빙 실력을 뽐냈습니다. 그때, 진규형이 윗보 둑에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가 장난으로 아랫보 쪽으로 진규형을 툭 밀었습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형은 아랫보로 떨어져 수면 위로 뜨지 못하고 물속에서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물이 워낙 맑아 바닥까지 훤히 보였고, 우리는 그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때, 재실이 형님이 아무 말 없이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형은 거침없이 헤엄쳐 들어가 진규형을 붙잡았고, 진규형은 본능적으로 형님을 꽉 끌어안아 오히려 형님까지 위험해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재실이 형님은 끝까지 침착하게 형을 끌어냈습니다. 진규형은 한참을 물가에 앉아 헐떡이며 숨을 고른 뒤, 아무렇지 않게 우리와 함께 동네로 걸어 나올 정도로 회복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절대 직접 구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위험한 일이었는데, 재실이 형님은 강인한 체력과 침착한 판단력으로 진규형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 형님은 전교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제일 잘했고, 돌팔매질로 꿩을 잡았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났으며, 돼지 울음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는 성대모사까지 잘하던 만능인이었습니다.

나중에 청년이 되어 재실이 형님은 고향을 떠났고, 나는 그 형님의 모습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지금도 우리 골목에선 전설처럼 회자됩니다. 그날, 북도부에서 보여준 용기와 형님의 등에 업힌 진규형의 젖은 모습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아련히 남아있습니다.

북도부는 더운 날, 땀 흘려 걸어가서 시원하게 몸을 담그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곳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냇가의 물은 맑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의 추억, 웃음, 위로, 그리고 성장의 기억까지 담고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물이 나오지만, 우리는 물을 길러 다니며 자연의 고마움을 배웠고, 냇가에서 놀며 친구와 목숨을 나누던 시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북도부를 다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농업용 큰 저수지를 만들면서, 북도부는 수몰되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눈을 감고 조용히 북도부로 돌아갑니다. 어머니의 물 긷는 소리, 빨래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 친구들의 물장구치고 웃는 웃음소리,

그리고… 그 여름날, 형님의 다이빙 소리까지.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정말, 아주 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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