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13일, 그날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날이다.
제16대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었고, 나는 처음으로 전략·기획을 맡아 본격적인 선거 실전에 뛰어든 날이었다.
선거판이라는 거대한 무대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그날의 긴장과 열기, 그리고 벅찬 감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당시 호남은 여전히 정치적 색채가 짙었고, 호남에서 새천년민주당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오갔다.
물론 영남에서도 한나라당의 공천만 받으면 마찬가지이긴 했다
공천을 따낸다는 건 곧 당선을 의미했다.
따라서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공손하기보다는, 공천권자에게 눈도장을 찍는 일이 먼저였다.
그 선거는 나에게 전략가로서 첫 실전 무대였다.
나는 무소속 후보의 전략과 기획을 맡았다.
상대는 5선의 관록을 지닌 거물 정치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하지만, 그의 ‘방석’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지 금방 떠올릴 이들이 있을 것이다.
선거 초반, 상대 캠프는 기세등등했다.
상대 호보자는 읍면 책임자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조찬을 베풀었다.
책임자들이 자리에 앉자, 그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자신이 앉을 방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자리가 무슨 자리인 줄 아나?”
읍면 책임자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스스로 대답했다.
“우리나라 권력서열 5위가 앉을 자리여.”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나는 등줄기를 타고 싸늘한 느낌이 스쳤다.
민심에 대한 두려움도, 유권자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그저 권위에 기대 당선을 확신하는 자의 태도만 남아 있었다.
지역 정치권은 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군의원, 도의원, 심지어 면 단위 조직책들까지 모두 그의 눈치를 봤다.
그는 이렇게 엄포를 놨다.
“내 지지율 낮은 동네는 다음 선거에서 기억할 거야.”
조직은 움직였다.
읍면 단위 군의원들은 중앙기관인 척 ‘여론조사’ 흉내를 냈다.
그들은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돌렸고,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이들의 집에 찾아가 “선거 끝나고 보자”며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자 유권자들이 반응했다.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출구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실제 투표 당일, 그들은 무소속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부재자 투표에서는 졌지만, 개표가 진행되며 상황이 뒤집혔다.
결국, 우리는 2,100여 표 차이로 이겼다.
우리는 울었다.
나는, 처음으로 승리를 맛본 전략가로서 울었고
후보는, 권력의 벽을 넘어선 인간으로서 울었다.
권력서열 5위와 맞서 싸운 날들이, 드디어 끝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뼛속 깊이 깨달았다.
유권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는 것을.
아니, 유권자는 다만 침묵할 뿐,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을.
모욕을 기억하고, 협박을 감내한 후, 결국 투표소 안에서 조용히 판을 뒤집는다는 것을.
그 후 그 지역의 도의원, 군의원들이 하나둘 물갈이되기 시작했다.
유권자들은 조직이 아닌 양심에 손을 들었고, 눈치가 아닌 진심을 택했다.
그날, 나는 전략가로서 평생 간직할 신념 하나를 얻었다.
사람은 속여도, 민심은 속이지 못한다.
정치인은 조직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지만,
유권자는 양심으로 이긴다.
그 믿음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전략은 민심 위에 있을 수 없다.
유권자는 늘 우리보다 한 수 위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정치인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