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고개를 쳐든 순간 진다-

by 전략가 박용상

2004년 6월 4일, 전남에서는 예고 없는 보궐선거가 치러졌습니다.

박태영 지사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치러진 선거였고, 정가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박준영 후보 간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정치판의 흐름은 명확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반작용으로 열린우리당은 호남 민심을 휩쓸었고, 민주당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총선에서 전국 지역구 5석이라는 참패를 겪은 직후였습니다.

호남 전체가 열린우리당 쪽으로 기울어진 듯한 분위기였죠.

첫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는 6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압도했고, 박준영 후보는 30%대에 머물렀습니다.

열린우리당 캠프는 이미 이긴 선거라며 자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어차피 이긴 선거니까 무리하지 말자.”

“실수하면 오히려 손해다.”

축하 케이크가 나돌았고, 선거캠프 참모들은 전리품으로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하고 본인들이 차지할 좋은 자리를 탐색하기에 바빴습니다.

선거운동은 형식적인 수준이었고, ‘혹시라도 후보에게 미움받지는 않을까’ 하는 눈치 속에, 들리는 말은 하나같이 달콤하기만 했습니다.

반면, 민주당 캠프는 전쟁터였습니다.

당시 이정일 사무총장과 전남 각 지역의 시장, 군수, 지방의원들이 똘똘 뭉쳐 사활을 건 선거전에 돌입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는 각오로 현장을 누비고, 허리를 굽혔고, 손을 잡았습니다.

한 명의 유권자라도 더 만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었고, 작은 민심에도 귀 기울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유권자들의 반응은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 캠프에선 아무도 그 기류 변화를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나서서 찬물 끼얹지 말자."

"후보 기분 상하게 하지 말자."

그래서 좋은 말만 오갔고, 오만은 깊어만 갔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박준영 후보 57.6%, 열린우리당 후보 35%.

민심은 조용히 돌아섰고, 고개를 든 자는 결국 패했습니다.

정치판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골프와 선거는 고개를 쳐드는 순간 진다.”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그러고 보니, 인생도 같습니다.

결과가 보인다고 고개를 들고 자만하면, 그때부터 진짜 실수는 시작됩니다.

내가 이겼다고 착각하는 순간, 주변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가 잘하고 있다는 착각은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겸손하게, 끝까지, 진심으로 다해야 합니다.

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인생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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