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밭 위 거짓말, 재봉이 형님께
어렸을 적, 한겨울이면 중리 동네엔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지붕 위는 물론 마루에도 눈이 수북이 쌓여, 어른들은 보릿대를 엮은 꺼적으로 가림막을 만들어 눈을 막곤 했습니다. 국민학교로 가는 길이면, 명주네 밭 아래쪽 길은 바람이 휘몰아쳐 눈이 무릎까지 푹푹 쌓였습니다. 작은 다리로 그 눈길을 헤쳐 나아가는 길은 힘겨우면서도,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길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세상은 곧장 우리들만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스키와 썰매 타기’.
석택이 형님네 뒤안 대밭에서 대나무를 몰래 베어 만든 스키는 우리만의 보물 같은 장난감이었고, 광호네 대문에서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까지 이어지는 긴 내리막길은 우리들의 활주로였습니다. 또 사장깨 구지서에서 바닷가 신작로까지 이어지는 길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 찬, 동네 전체가 하나의 스키장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길은 더욱 반들반들 미끄러웠습니다. 여관에 드나드는 손님들이 넘어질까 걱정되어, 행신이네 엄마는 연탄재를 부지런히 뿌렸고, 우리 할머니도 광호네 욕쟁이 할머니 댁에 모시레를 가시려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산태미로 부엌의 재를 퍼다 길 위에 마구 뿌리셨습니다.
당시에는 신발끈에 ‘새끼’를 묶고 다니거나, 집에서 나온 재를 길에 뿌리는 것이 미끄럼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겨울마다 빠지지 않던 비밀스러운 행사도 있었습니다. 동네 골목대장인 재봉 형님의 지시에 따라 철사로 굴레를 만들어 산에 올라가, 노루 발자국이 나 있는 자락에 놀이치(노루덫)를 설치하고, 신비탈 양지바른 보리밭엔 눈을 쓸어낸 후 싸이나를 섞은 콩이나 마른 열매를 까치밥처럼 뿌렸습니다. 그날 밤이면 노루가 걸렸을까, 산토끼는 잡혔을까, 꿩이 몇 마리는 걸렸을까...
기대에 부풀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아침이면, 내가 설치한 자리에는 어김없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며칠간은 실망을 반복하며 애를 태우다가, 어느새 또 다른 놀이로 바빠지며 잊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들건너 산에 놀이치를 설치한 뒤, 북도부 냇가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타다 갓쪽 얼음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 차가운 물속에 빠진 저는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꼴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히 들어서는데, 마침 아버지와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게 무슨 꼴이냐?” 다그치는 목소리에, 저는 얼떨결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재봉이 형이... 얼음 위로 안 올라가면 혼난다고 해서요.”
사실은 제가 먼저 얼음 위로 올라가 놀다 얼음이 깨져 빠진 것이었지만, 아버지의 매서운 회초리가 눈앞에 아른거려, 그만 거짓된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의 목소리엔 꾸중보다는 걱정이 더 담겨 있었던 듯한데… 그땐 어린 마음에 그 사랑을 두려움으로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밤은 하루 종일 산이며 들, 냇가를 뛰어다닌 터라 지쳐 일찍 잠들었습니다. 며칠간은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지내다가, 사오일쯤 지나 놀러 나갔다가 재봉이 형님과 마주쳤습니다. 형님은 매섭게 따졌습니다. “내가 언제 너보고 얼음 위로 올라가라고 했느냐? 너 스스로 올라가지 않았느냐?”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대로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께 혼날까봐 무서워서 그랬어요… 형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재봉이 형님은 저를 때리지는 않으셨지만, 따뜻하면서도 단단한 꾸지람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그 표정이,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그날 제 모습이 안쓰러우셨던지 재봉이 형님 댁을 찾아가 “다시는 용상이를 그렇게 몰아붙이지 마라”고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재봉이 형님 아버님과 저희 아버지는 오랜 친구 사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하셨을 겁니다. “그 녀석, 겁도 많고 마음도 여려서 그렇다. 괴롭히지 말라고, 한번만 더 그러면 나서겠다고.”
이제 제가 아버지가 되어 그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려보니, 그날 아버지의 꾸중 속엔 걱정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습니다. 말보다 먼저 행동하셨던 아버지,
때리기보다 품어주시던 그 따뜻한 눈빛이 이제야 제 마음을 울립니다.
이따금 겨울 출장길에 언 강을 지나치다 보면, 그날의 재봉이 형님이 떠오릅니다. 얼어붙은 냇가와 함께, 어린 날의 제가 차가운 물 위로 다시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죄송한 마음과 함께, 순수했던 동심이 가슴 깊이에서 조용히 고개를 듭니다.
재봉이 형님.
그날, 형님께 큰 누를 끼쳤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글로나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형님, 그때… 정말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그 시절 저를 품어주셨던 따뜻한 사랑, 이제야 가슴으로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참,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