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리동네 우리만 아는 이야기 ②

물총 한 자루에 담긴 리더십

by 전략가 박용상

어린 시절, 우리가 즐기던 놀이기구는 참 많았습니다. 구슬치기, 종이 딱지, 대나무 물총과 펜총, 딱총, 참연과 꼬리연, 두발·네발 연자세, 탈방, 재기차기, 도롱태 굴리기(자전거 바퀴 굴리기), 그리고 칼쌈까지···

하나같이 손때 묻은 추억이 되어,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 살아 숨 쉽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물총 싸움입니다. 상철 형님네 대문과 대아네 대문은 유난히 컸습니다. 시골 대문이 다 그렇듯 나무판 사이사이 틈이 많았고, 동그란 구멍(갱이, 옹이)도 많았지요.

우리는 편을 나눠 대문을 사이에 두고, 한 팀은 집 안에서, 다른 팀은 바깥에서, 그 틈새를 이용해 물총을 쏘며 격전을 벌였습니다.

처음엔 서로를 배려해 맑은 물을 썼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전투는 점점 과열되었고, 설거지한 물, 돼지에게 주려던 구정물, 심지어는 거름용 소매통의 물까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은 우리에게 가장 짜릿하고 유쾌한 놀이였으며, 전날의 전투는 언제나 최고의 화젯거리였으며, 우리는 그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전쟁의 밤을 설레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대장 형님들이 말했습니다. “고무물총 있는 애랑 대나무 물총 쓰는 애랑은 너무 불공평하다. 우리 모두 고무물총을 하나씩 갖자!”

그 한마디에, 우리 골목대원들의 울력이 시작됐습니다. 재봉 형님, 복근 형님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삽과 꼭깽이를 들고 나오라며 집합시켜 우리를 산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산에서 캔 것은 단단한 흙도, 딱딱한 돌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도라지였습니다.

산비탈을 헤치고 올라가 땅을 파고, 하얗게 뻗은 뿌리를 찾아 도라지를 하나하나 캐냈습니다. 누런 흙이 잔뜩 묻은 도라지를 자루에 담으며 우리는 땀을 흘렸고, 그 땀이 모여 마음도 함께 엮여 갔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산에서 울력해 어느 정도 도라지를 확보하자,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팔만한 목포로 갔습니다. 마침 목포역 근처에서 식당을 하시던 작은고모가 그 도라지를 모두 사주셨고, 우리는 그 돈으로 번화가 문구점에서 동네 아이들 수만큼 고무물총을 샀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 모두에게 고무물총이라는 병기가 하나씩 지급되었고,

그날 이후 우리 골목의 물총 싸움은 다시, 공정하게,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형님들이 했던 일은 단지 놀이의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즐기도록 한 공동체 정신, 자기 손으로 번 돈으로 친구에게 물총을 나눠준 배려심, 아이들을 하나로 모아 자연스럽게 이끌던 리더십까지. 골목대장 형님들은 이미 그때,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 물총 속 도라지의 기억은 내가 조직의 책임자가 되었을 때 리더로서 어떤 몸가짐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러준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진급을 하고, 정당활동을 하며 조직을 이끌고,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야 할 자리에 섰을 때마다 나는 자주 골목대장 형님들을 떠올렸습니다. 리더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 답은 아주 오래전 여름, 흙 묻은 도라지를 캐던 손에 이미 담겨 있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시절 고무물총 한 자루는 여전히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듭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리더란, 함께 웃기 위해 먼저 땀 흘리는 사람이다.

리더란, 명령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결국, 모든 이의 기쁨 뒤로 조용히 물러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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