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리동네 우리만 아는 이야기 ⑤

― 여름 갯벌, 그 위험한 장난 ―

by 전략가 박용상

미끄럼은 겨울 눈밭에서만 타는 게 아닙니다. 중리동네 아이들에겐 여름 뻘밭이 또 하나의 미끄럼장이었습니다. 바닷물이 빠지고 나면 드러나는 뻘밭에서 개웅(갯벌의 물길)으로 달려 경사진 뻘바닥 위에 다리를 쭉 뻗고 털썩 주저 앉아 미끄러지면, 뻘 위를 쌩하니 타고 내려가 개웅 물속으로 풍덩—

그 짜릿한 감촉과 시원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해 추석. 명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에 내려와 동네 형님들과 한데 뭉쳤는데 누군가가 불쑥 말했습니다. “야, 바닷가 가서 목욕(해수욕)이나 하자!”

형님들 열댓 명과 우르르 선창으로 향했습니다. 옷은 돌틈이나 땜마(노 젓는 작은 배)에 벗어두고, 우린 죄다 깨벗은(발가벗은) 채로 바닷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수영도 하고, 이깝(갯지렁이)도 파고, 어릴 적 하던 대로 미끄럼도 탔습니다. 말 그대로 동심으로 돌아간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멀리서 명성호가 추석 손님을 가득 싣고 화원 선창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배가 산두 앞을 지나 점점 가까워질 즈음,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야야, 얼굴에 뻘 발라! 꼬치에도 바르고!” “줄 맞춰 서! 배 들어오는 방향으로!” 그리하여 우리는 죄다 얼굴에, 그리고 부끄러운 곳에도 진한 뻘을 발라 위장한 채, 2~3미터 간격으로 일렬로 정렬했습니다. 그리고 배를 향하여 군인들처럼 경례를 하였습니다. 그 경례는 배가 우리 앞을 지나갈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광경을 본 배 안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갑판 위 손님들은 카메라를 들고 깔깔댔고, 배 반대편에 있던 손님들마저 한쪽으로 몰려오며 구경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배가 순간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야, 까바지겠는디?” “배 기운다! 중심 잡아, 중심!!”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갑판장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등, 순간 추석 손님이 가득 타고 있는 배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기우는 배에 선장과 선원들은 물론 선창에서 그것을 바라보는(배를 타려고 기다리는) 손님들도 발을 동동 굴렀고, 우리도 덜컥 겁이 났습니다.

다행히 배 안 손님들이 재빨리 반대쪽으로 움직여 중심을 잡았고, 명성호는 가까스로 화원선창에 안전하게 닿았습니다.

아찔한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배가 손님들을 퍼주고, 다시 목포를 향해 떠난 후에도 우리는 한참을 개웅에서 더 놀다 선창으로 돌아와 옷을 입고 동네로 올라왔습니다.

그날의 ‘깨벗은 장난’은 오랫동안 동네 이야기의 단골 소재가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위험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네 골목대장 형님들,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데요? 배가 정말 까바질 것 같았으면 시켰겠습니까? 안 까바질 걸 알았으니 시켰지요!

그 무모한 듯했던 장난,

그 뻘로 가렸던 수치심,

그 웃음 속에 깃든 오랜만에 만난 형님들에 대한 반가움,

그건 문명의 틈새에서 피어난,

우리 세대만이 누릴 수 있었던

한여름 뻘밭의 낭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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