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리동네 우리만 아는 이야기 ④ ♣

― 중리동네 여름밤 이야기: 도깨비, 귀신, 그리고 장난 ―

by 전략가 박용상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도깨비가 참 많이도 살았습니다. 누가 보았느니, 귀신이 누구를 도와주었다느니, 도깨비가 뿌린 모래를 맞았다느니…

그 시절 여름밤이면 어느 마을이나 바람이 잘 통하는 큰 나무 아래가 곧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갈수록 어김없이 등장하던 단골손님, 바로 도깨비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여름날 저녁, 종아네 집 위쪽 팽나무 아래는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바람이 솔솔 부는 그 길목에, 어르신들은 저녁상을 물리고 삼삼오오 모여 덕석을 펴고 둘러앉았습니다. 하루의 피곤함도, 더위도 잊은 채 이야기꽃이 피어날 즈음이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었지요. 바로 도깨비 이야기였습니다.

“그게 어느 겨울이었어…” 신사당 오르막 계단 옆에 사셨던 석택 형님 할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여십니다. “이른 아침에 마당 눈을 쓸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낯선 할아버지가 딸각다리(계단)에서 눈을 쓸고 있더라고. 누군가 싶어 자세히 지켜봤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인물이었지. 그런데 눈을 다 쓸고는 불쑥 상내네 치깐과 돼지막 사이 공터로 뛰어내리는 거야. 얼른 가봤는데, 아무도 없어. 발자국 하나 없이 말끔한 눈만 남아 있었지. 나는 분명히 그를 봤다니까!”

듣는 이의 머리카락이 쭈볏쭈볏 서고, 등골이 싸늘해질 즈음, 또 다른 어르신이 슬쩍 말을 잇습니다. “신평리네가 동네에서 결혼 잔치 끝내고 집에 있는 아이들을 주려고 보자기에 떡 싸가지고 집에 가는 중이였데. 고래미 지나 대훈이네 집 앞 동백나무 옆을 지나려는데 파란 한복을 입은 새색시가 서 있었데. 살결은 물론 머리가지 온몸에서 푸른 기운이 감도는 그 여인, 표정은 꼭 ‘떡 좀 주세요’ 하는 눈빛이었다나…. 누집 색시가 저기에 서 있나 하면서, 떡은 집에 배고픈 아이들을 주려고 그 색시 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고, 소름이 돋고, 등골이 오싹하드레, 귀신이었던거지, 색시 귀신이 떡이 먹고 싶었던 거였어.”

이쯤 되면, 쉬가 마려워도 무서워서 혼자 쉬하러 가지도 못하고 꾹 참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또 다른 할머니가 무서운 이야기를 이어가십니다.

“가뭄이 들면 샘물도 말라버리잖아. 양동이 하나 채우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사람들이 없는 밤중에 샘으로 물을 길러 가곤 했지. 그런데 우리 며느리가 어느 날 한밤중에 서당샘에 물을 길러 나섰거든. 조용히 나갔던 애가 갑자기 헉헉거리며 뛰어 들어오더라니까.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샘독에 양동이를 올려놓고 물을 두세 타르박 떴는데 갑자기 샘 위쪽 용한 씨네 밭 쪽에서 도깨비가 모래를 뿌리더래. 깜짝 놀란 며느리는 ‘도깨비다!’ 생각 하고 기겁을 했지. 그런데 예전에 도깨비는 물을 무서워한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양동이에 담아놓은 물을 도깨비한테 확 뿌리고는 도망쳐 왔대. 그런데 그 와중에도 양동이랑 타르박은 꼭 들고 왔더라니까!” 우리 며늘애기 통 큰 건 알아줘야지.”

다른 할머니기 이 이야기를 받습니다. “서당샘뿐이 아냐. 땅넘샘에도 도깨비 나온다더라. 월산리네는 그 샘에서 모래 맞았다고 하더구먼.”

이쯤 되면 쉬가 아무리 마려워 비비 꼬더라도 집에 갈 수가 없습니다. 팽나무에서 집까지 백 걸음 남짓인데도, 발길이 얼어붙어 떨어 지지가 않습니다.

어르신 한 분이 일어나 먼저 나서야만 그 뒤를 따라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이야기에 빠져있기 때문에 쉽지 않아서, 나중에는 무서움에 떨면서도 손 모으고 앉아 견딜 수밖에 없었지요.

그 시절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간짓대 도깨비’ 이야기도 또렷합니다. 동네 작은 아버지 집에 가셨다가 밤에 오시던 중이었는데 중간 지점쯤 지날 무렵,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 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장대 하나가 휙, 옆으로 지나가더랍니다. 그리고는 저만치 삼거리 중앙에 꼿꼿이 딱 서더랍니다. 등이 으스스 떨리고, 고개를 들어 끝을 보려 했지만 끝이 안 보이더랍니다. 눈을 질끈 감고 뛰어 지나오시며,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고 하셨지요. 그 집은 나중에 오랫동안 빈집으로 남아, 부엌 환기구멍에서 귀신을 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귀신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횃불 들고 횃낙지 잡으러 갔다가 큰 개웅을 건널 때, 귀신이 등을 밀어 줘서 쉽게 건넜다는 이야기, 으슥한 ‘호방밑’의 골은 6.25 전쟁 때 사람이 많이 죽어 많은 귀신들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 혼불을 봤는데 며칠 안 돼 마을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까지…. 귀신 이야기들은 바람처럼 스며들어 우리 마음속에 공포와 호기심을 차곡차곡 쌓아놓았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혼자 귀가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지고, 쉬를 참는 것도 한계에 이를 때쯤이면 어르신 한 분이 “내일 논에 농약 쳐야 해서 먼저 갈라요~” 하시며 일어나십니다. 그때가 되면 마치 구세주라도 만나는 양 나도 벌떡 일어나 그분 뒤를 바짝 따라나섭니다. 그리고 우리집 대문 앞에 이르면 문을 여는 동시에 귀신이 따라오는 건 아닐까 싶어, “엄마~!”를 외치며 뛰어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게, 우리 시절의 여름밤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또래가 자라던 무렵에도 도깨비는 다시 한번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복근 형님네 집 앞이었습니다. 명호네 집에서 하리로 내려가는 갈래길, 그 길가 위 밭에 길게 가지 뻗은 팽나무가 있었는데, 그 팽나무에서 도깨비불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도깨비가 모래를 뿌리고, 불빛이 나풀거린다는 무서운 소문에 그 길은 어느새 밤엔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깨비의 정체는 내가 어른이 된 후에야 밝혀졌습니다. 그 불빛은 도깨비불이 아니었고, 수박으로 꾸민 장난이었습니다. 그 장난은 이랬습니다. 수박을 사서 껍질이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속을 다 파냅니다. 그러면 둥글게 속이 빈 수박 껍질만 남지요. 그 껍질에 여기저기 작은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촛불을 켜서 넣습니다. 불빛은 수박 껍질의 구멍 사이로 새어 나오고, 그 수박을 줄로 묶어 팽나무 가지에 매달아 줄을 당길 땐 불빛이 위로 올라가고, 풀면 아래로 내려옵니다.

어둠 속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불빛은 도깨비불처럼 보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수박이 없을 때는, 도깨비가 모래를 뿌리는 흉내를 냈다고 합니다. 그 장난에 동네 사람들은 기겁하며 놀라 자빠질 뻔했고, 그 길은 한동안 공포의 지대로 불렸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 여름밤을 더는 편히 돌아다닐 수 없었지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우리 마을에도 마침내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그날 이후, 도깨비도, 귀신도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밤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고, 마을의 어둠은 전깃불 아래 환히 드러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래 세대들은 어쩌면 더 좋은 문명 속에서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명이 밝힌 불빛 속에서 그들은 도깨비 하나, 귀신 하나 만나보지 못하고 자라났습니다. 우리는 무서웠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고, 도깨비불 하나에도 온 동네가 밤새 떠들썩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밝고 똑똑해서 그만큼 무미건조하게 자라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불편했던 만큼, 우리에겐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무서웠던 만큼, 마음에 남은 추억도 깊었습니다. 상상과 현실 사이, 그 모호한 경계에서 우리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문명의 불빛은 넓고 밝아졌지만, 상상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실제로 도깨비나 귀신을 본 사람, 정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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