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을 폈다.
동네 문구점에서 삼천원을 주고 산 손바닥만한 공책을 펴서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무것도 그어져 있지 않은 백색의 종이.
예전같았으면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소위 말하는 '동태눈깔'로 멍 때리는 일이 잦았을거다.
나를 둘러싼 우울은 내가 기분좋은 꼴은 한시도 가만히 볼 수 없었던 것인지
그 때의 나는 머릿속으로 '행복'이라는 글자를 떠올리기도 힘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은 먹구름처럼 몰려오지만
침대에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그 시기.
그러나 오늘, 순백의 종이를 눈 앞에 둔 내 심장은 기분좋은 설렘으로 두근거린다.
얼마만의 두근거림일까.
이 감정이 주는 낯섦조차 나를 들뜨게 한다.
공책을 편 나는 앞으로 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꽤나 비장한 표정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경건한 태도로 펜을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적어볼까.
어떤 길 위를 헤매어볼까.
내가 꿈꾸는 나의 행복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지?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건 뭐지?
초등학교 때는 대답을 생각해내는 데 일초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된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서서히 멀어지는 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왔던 것 같다.
질문에 대한 해답들을 생각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비록 인생선배들에겐 이 말이 우습게 들리겠지만
내가 살면서 느낀 이십대 후반의 나이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기엔,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꽤나 무거운 것 같다.
무엇보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이 버겁다.
탐탁치 않게 여기는 부모님, 친구들, 선후배들의
감은 여기 두고 배는 저기 둬라,
하는 잔소리가 지겹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와
자기의 가치관에 어긋나게 살아가는 사람을 향한 비난 정도는
나도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
그 모든 잔소리에서 자유해질 것.
지금 이 순간 내가 귀기울일 것은 내 마음의 소리.
조금은 버겁기도 두렵기도 하지만
오늘부터 나는
"KEEP STUDY MYSELF".
한동안 연락이 없던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정적이고 수입이 괜찮았던 행정사 사무직 자리를 때려치운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간 두 세번 연락이 와서 한다는 말씀은
"여행작가 그거 그만둬라. 위험하고 돈도 못 버는 일을 왜 자꾸 하려고 해.
여행 좋아하고 글 좋아하면 취미로 해도 충분하잖아."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다.
그렇지만 아빠,
그동안 남들 이야기 들으면서
어쩌면 그들의 생각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내 인생이 이제와보니 너무 아까워.
나는 내 삶에 솔직하지 못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나조차도 알면서 모른 채 했고
그저 세상에 말하는 기준에 더욱 걸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왔어.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그렇게 못 살겠어.
현실적인 생각,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자신의 커리어를 착실히 쌓아가는 사람들.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회사원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못 하겠으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자기 삶에 열심인 모습이
진심으로 위대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나 역시도
나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갈테고
내 삶에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각자의 방식이 있는만큼
나도 내 삶의 방식을 존중받고 싶다.
뭐 그것조차도 욕심이라고 말한다면
하는 수 없지 뭐.
내 인생 아빠가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내가 나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더욱 내가 선택한 이 길에 확신이 든다.
그래 내가 진정 사랑하던 것은 이런거였지.
이십칠년 한 평생을 붙어있던 한 몸뚱이, 내 자신인데도
이렇게나 모른다.
아빠만큼의 나이가 차면 그 때는 나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삶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이 땅에 온 이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걷다보면 알겠지.
배우다보면 알겠지.
아직도 흔들리고 헤매면서 배우는 나의 인생길.
keep study 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