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내 멋대로 살아보려고 해.

세상의 기준에서 탈출하려는 내 몸부림이 우스울지도.

by 양송키

봄바람이 달콤한 4월.

어쩌면 이다지도 날씨는 푸르고 선선한지.

캠퍼스의 학생들에게서는 절로 풋풋함이 배어나고

길거리의 연인들은 사랑을 노래하는 이 계절에

나는 내가 살던 4층 작은 원룸에서 우중충한 우울을 뿜어내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해왔던 나였지만

요즘 내 삶에 깊숙히 그리고 은은하게 스며든 이 무력감과 우울감은 당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잠깐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학생 때의 나는 우울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아이였다.

평소 사람들 앞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소위 "인싸"였고

나의 스케줄러에는 일주일에 열 개 이상의 약속이 그득하게 잡혀있었다.

친구들을 만날 때는 실없는 농담과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한 웃음소리, 시도때도 없이 흔들어 제껴대는 엉덩이춤으로 주변을 정신없이 만드는 사람이었다.

이런 내가 우울감에 빠져있다고는 아무도 생각 못하겠지.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던 나는 어느새 날개가 꺾인 새가 되어 새장 속에 웅크리고 누워있을 뿐이였다.


그렇게 봄이 되었고

나의 이유모를 우울은 점점 깊어져갔다.

밤낮으로 누워서 눈물만 흘리는 나에게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여보, 요즘 당신이 우울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 그건 바로 여보 인생에 목표가 없어서야. 목표가 없으니까 삶의 원동력도 없는거야."

그건 내가 우리 사귀기 전에 했던 말이잖아.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항상 삶의 목표와 원동력으로 가득 차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회색빛의 인간이 되었을까.

"여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뭐야? 그걸 해. 진짜 여보가 하고 싶은 걸 찾아."

남편의 그 말 한마디에 멈춰져 있던 내 심장이 아주 오랜만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잊고 있었던 나의 꿈은 '여행작가'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행작가가 꿈이였다.


그러나 장녀의 책임감, 가정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랫동안 전혀 다른 일을 해왔고

그 일은 자유롭고 활기찬 성격의 나에겐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지금껏 해오던 것들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꼭 억지로 몸을 구겨넣은 것처럼 버겁고 힘든 든 일이었다.

남들은 잘해내는데, 나는 왜 고작 이만한 일로 힘들어할까.

나는 결국 내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남편의 한마디로 아주 오랫만에 나의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떠올랐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소중한 나의 오랜 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소중한 꿈.

장녀, 아내로서가 아니라

현실이나 돈을 쫓아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위해서 꿈꿔온 소중한 그것.

그 꿈을 꿔왔던 내 자신은 얼마나 아름답게 빛이 났던가.

순간 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던 지난 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여행작가라는 직업이 그다지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실제로 학생 때부터 여행작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친구들이든

모두 현실적인 이유를 논하며 나를 말리려고 했다.

멋지다, 라는 말 뒤에는 언제나 걱정어린 시선, 혹은 걱정을 빙자한 선을 넘는 비난, 질투, 무시하는 등의 시선을 나에게 내비치곤 했었다.


'너 중간에라도 자식 생기면 어떡할래?'

'가정도 있는 애가 무책임하게 남편 놔두고 어딜 돌아다녀?'

'돈을 벌어야지. 돈을 쓰고 다니면 불쌍한 네 남편은 외벌이로 어떻게 가정을 꾸려나가니?'

'그간 안정적인 직업 잘 꾸려왔잖아.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일탈이야?'

나 역시도 그들이 무엇을 염려하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무섭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다가는 도저히 제대로 숨을 쉬고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의 시듦이 내겐 더 두려운 일이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조금 더 욕심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소중한 꿈을 위해, 내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나의 최선을 다했을 때

가능하다면 나의 글에 진심이 담겨 그들에게 닿기를.

그들의 마음에 작은 파장을 일으켜주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중에 찾아올 나의 아이에게

우울하고 무기력한 엄마가 아니라 당차고 씩씩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나도 내 인생을 위해 이만큼 노력했노라고,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안될 걸 알면서도 일단 그 속에 몸을 던져보았더니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더라.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너도 무엇이든 진심과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를 든든하게 지원해주며 언제나 변함없는 커다란 사랑으로 안아주는 내 소중한 남편,

당신에게 더욱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고 싶다.


지금부터 여정을 떠나보려고 한다.

아직도 여전히 서툴고 두려운,

헤매고 또 길을 잃어도 계속 걸어나가는 모든 나그네들에게 소소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