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노래를 찾아서, 전주

by 양송키

나의 첫 여행지로 굳이 전라도를 택한 이유는

그곳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일까.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 사람이

흥얼거리던 노랫말은 거의 타령에 가까웠는데,

그게 어찌나 구슬프던지

어린 나이에 그 슬픈 가락이 듣기 싫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어릴적부터 지겹도록 맛 본 전라도는 그런 곳이였다.

푸근하고 구수하면서도 늘상 마음이 아려오는 슬픔이 서려있는 곳.

어릴 때도 싫어했던 그 구슬픈 가락은

지금까지도 한맺힌 것처럼 나를 쫓아온다.


내가 거기에서 자유해질 수 없다면

아예 흠뻑 빠져보자.

나만의 박자와 리듬으로 또 다른 가락을 흥얼거릴 수 있도록.


조금은 아프고도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첫번째로 찾은 곳은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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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봄은 어찌나 푸르고 청량한지,

한껏 만개한 이팝나무의 보드랍고 하얀 꽃잎이 눈이 부시다.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이팝나무의 싱그러움과 하늘의 푸르름을 감상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혹시 삶의 바쁨에 치여 잠시 봄의 아름다움을 잊고 지냈다면

잊지말고 꼭 챙겨보자. 봄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다시금 걸음을 옮겨 찾아간 곳은 천변.

졸졸졸-보다는 크고 콸콸콸-보다는 작은

강의 물결노랫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즐겼다.


휴일 오후의 달콤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곳.


이 강은 전주를 여러 갈래로 관통하다가

김제 쪽 만경강까지도 쭈욱 이어진다.











천변을 따라 걷다가 발길이 닿은 곳은 객사.


객사는 전주의 구시가지인데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한옥마을,

태조 이성계의 어전이 모셔져 있는 경기전 등등

볼 거리가 상당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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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은 산책이 끝난 지점은 객사의 소금빵 맛집 슬록.


빵과 커피를 사서

지친 발을 쉬게 해주었다.


내가 이곳의 소금빵을 특히나 좋아하는 이유는

버터가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겉은 파삭한데 속은 쫄깃하고

버터에 흠뻑 적셔진 밀가루 반죽의 아랫부분이 거의 튀겨지듯이 구워져

버터풍미를 좋아하는 빵순이 빵돌이들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빵은 에피타이저일 뿐.

이제 본격적으로 달려야한다.


전국적으로 맛있기로 소문난 전라도 음식,

그 중에서도 전주에 왔으니

이 정도로 끼니를 때웠다고 해서는 안된다.










슬록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객사 차이나타운 쪽에 정말 맛있는 돈까스 집이 있다.

휴일에는 기본 30분 정도 웨이팅할 각오로 찾아가야 한다.


바로 돈카츠 흑심.


웬만큼 돈까스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이미 유명하게 잘 알려진 곳이다.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지만 솔직히 이 집은 싫어하기가 더 힘든

환상적인 돈카츠 맛을 자랑한다.


환상 돈카츠를 떠올리며..

삼십 분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다.







이 때 전주 여행 포인트 하나 더.

흑심 바로 앞에는 <여행자 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


이름부터 내 구미를 당기니 도저히 안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문 앞의 간판부터 컨셉에 충실하니 더욱 재미있는 곳이다.


들어가보면 국내부터 시작해서

해외까지 지구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여행한 사람들이 쓴 책이 한가득이다.

어머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정말 짜릿한 곳!


시간만 주어진다면 이 곳에서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눌러앉아

하루종일 여행책을 읽고 싶다.

어쩜 이렇게 재미난 곳이 있을까.


마치 이 곳에 오기 위해 전주여행을 했다 싶을 정도로..

정말 매력이 넘치는 여행자도서관.



여행자도서관에서 정신없이 책을 구경하고

이제 한 권 골라 읽어보려 자리 잡았는데

벌써 흑심 돈카츠 자리가 났다고 알림문자가 왔다.


아아, 아쉬워라..

그치만 환상돈카츠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가뿐한 마음으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흑심 돈카츠의 자리에 앉으면

일단 먼저 뜨끈한 된장국을 한 그릇 내어준다.


작은 국그릇을 들고 호록 국물을 마시면 거기에 먼저 놀란다.

된장국 먹으러 흑심 간다던 지인의 말이 농담이 아니였음을 알게 된다.

고작 된장국일 뿐인데 어떻게 이런 감칠맛이 나는 건지 신기하다.

들어가있는 고기과 야채 건더기도 실해서 더욱 먹을 맛이 난다.


뜨끈한 국을 떠마시고 있자니 뒤이어 돈카츠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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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레카츠와 모듬카츠, 카츠산도를 시켰다.


선홍빛 고기가 육즙을 얼마나 가득 머금고 있는지

보기만 해도 촉촉하다.


튀김옷은 너무 무르지도, 딱딱하지도 않게

적당히 바삭해서,

소위 겉바속촉의 정석이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스는

겨자에 돈까스소스를 섞어 찍어먹는 것이다.


알싸한 겨자와 달달한 돈까스소스를 섞어 푹 찍어 한 입.

그리고 잘지은 밥 한 입과 뜨근한 국 한 수저 떠먹으면

말 할 수 없이 풍성한 만족감이 몰려온다.

돈까스도 맛있지만 밥과 국의 따끈한 조화도 너무 좋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겨자와 돈까스 소스도 좋지만

고기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딥핑소스가 있다.


돈카츠에 함께 서빙된 핑크솔트를 적당량 콕 찍는다.

테이블마다 놓인 트러플 오일을 스포이드로 살짝 뿌려서

크게 한 입 베어문다.


트러플의 향미와 소금의 짭잘함,

고소하고 바삭하며 촉촉한 고기가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함께 간 남편과 말없이 그 순서를 몇 차례 반복하니

든든하게 벌써 배가 불러온다.


서로 눈빛만 봐도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알 수 있다.

너무 맛있다, 여기!


만족스러운 한 끼에

남편도 나도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그래, 여기는 내 인생맛집으로 선정이다.


이 영광을 마음껏 누리도록, 흑심.












든든히 먹고나서 다음 목적지로 찾아간 곳은 전북대학교.


여행가서 왜 대학교를 방문하냐 싶기도 하겠지만

전북대학교는 캠퍼스가 예쁘기로 소문난 학교 중 하나이다.


학교 내 부지가 얼마나 큰지

부지 안에 건지산도 있고 바로 옆에는 전주동물원도 있다.






의외로 전북대학교는 참 좋은 산책코스이다.

벤치 흔들그네 정자 등등 앉아서 쉴 곳도 많고

자연 친화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터벅터벅 캠퍼스를 걷다가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연못과

그 위를 드리운 푸르른 배롱나무가 있는

정자에 발길이 닿았다.

그 곳에 잠시 앉아보기로 했다.







휴일의 학교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그 평화로움이 너무 좋다.

간간히 들려오는 학생들의 발랄한 목소리가 한적함과 섞여 들려온다.


아주 오랫만에 정말 아무 생각도 않고

선선한 공기와 여유로움을 즐기기로 했다.









아직도 내 귓가에서는

잊기힘든 그 사람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기억이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이제는 조금 담담한 태도로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 가운데

말하기 힘든 감정을 끌어안고 산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전혀 그렇지 않아보이는 사람도 누구나,

저마다의 쓰라림을 다독이며 산다.


여지껏 나를 괴롭히던 그 쓰라린 상처가

아물어갔던 전주에서의 여행길.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던

오월의 이팝나무가, 오월의 천변길이

새삼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진다.






그대,

누군가에게 말 못할 상처를 끌어안고

그리움으로

슬픔으로

두려움으로

그 버거운 쓰라림을

혼자서 다독이고 있다면,


당신의 아픔이 시작되는 곳으로

한 번 떠나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아픔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던 그 곳에서

당신은 당신만의 노래를 지어부를 수도 있다.


그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면서

힘겨웠던 당신의 지나간 시간들에

살며시 악수를 건넬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오길.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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