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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을 아는 사슴 Sep 11. 2023

믿는 힘

일요일 밤, 엄마랑 언니랑 호수 공원 산책을 하다 입구 쪽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말 그대로 시간을 '보내-'다가 엄마의 고백 같은 한탄을 듣게 되었다.

20여 년을 알고 지낸 그녀의 눈물이 많이 낯설다.

나와 그녀는 아직까지도 볼을 맞대고 비비며 서로를 귀여워하는 사이였다가 어느 순간엔 놀라울 만큼 이성을 찾는 사이다.

모녀의 문제 해결 방식이 그래서 비슷하다고 여길 때가 있다.

지나간 것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을 앞세우지 말 것.

어떠한 내외부의 노력과 변화에도 당장 달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면,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아도 없다면, 남은 건 그 결과를 최종 결과가 아닌 중간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

반드시 최종 결과는 스스로가 후회하지 않을 방법으로 달성해 내는 것이 우리의 지난 방식이었다.



과거는 아쉽고, 후회되고, 쪽팔릴 때가 자주 있지만, 그 감정에서 끝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다 울었니? 그럼 이제 할 일을 하자. 이는 지독한 내 삶의 한 줄이다.

어제의 그녀는 너무나 작아 보였다. 만약 내가 조금 더 미래를 생각했더라면, 신중했으면,

이렇게 바보 같지 않았으면 ... 하는 수많은 if가 그녀의 입술 끝을 떠나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도 없는데, 이럴 때 누구한테 울분을 토해내야 할까.



단숨에 나이라도 먹어 엄마의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나는 엄마의 막내딸로, 응석을 일방적으로 부려만 본 사람으로, 몇 십 년을 살았다 보니 쉽게 엄마의 엄마가 될 수 없었다.

막내딸의 자아를 가진 나는 그녀의 몸에 눕듯 자연스레 기대고, 엄마의 엄마가 되고 싶은 바램만을 담은 손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이것도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등을 위아래, 양옆, 불규칙하게 쓰다듬었다.

그녀를 괴롭히는 보이지 않는 무엇들이 몸 가장자리로 자리를 피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녀가 50년을 넘도록 꼿꼿하게 지켜낸 척추를 품은 등에는 아주 잦게 귀중한 것들만 남을 수 있도록.


입증할 수 없더라도 무턱대고 믿는 법칙이 있다. 이는 '총량의 법칙'인데, 믿을 수 없어도 믿어야 한다.

믿어야 악몽 같은 어제를 두고도 길몽을 꿈꾸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앞에 누군가가 약해질 때 나는 되려 강해지는지 모른다.

그가 소실한 힘을 온 우주가 나에게 단숨에 불어넣는 느낌도 든다.


그런 그와 내가 시간을 또 견디다 보면, 그와 나의 에너지가 어느새 비등해진다. 한 쪽에게 기대던 몸을 서서히 일으키고 이제 어깨동무를 할 수 있다.

그렇게 기대고, 기대어지면서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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