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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썸 Jan 27. 2022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는 너에게


딸깍. 잠결에 밥솥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어제 쌀만 씻어 놓고 밥솥은 안 눌렀는데 어떡하지. 우유도 없을 텐데. 부스스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나갔다. 우유만 사다 놨어도 더 자도 됐을 텐데. 아니다 다를까. 시리얼 봉지를 붙잡고 황망한 표정으로 큰애가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우유가 없어서 그냥 먹으려고 했다는 말에 얼른 냉동실에 있던 떡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사과즙을 컵에 따라서 식탁에 올렸다. 밤새 배고팠는지 아이는 차려 놓은 걸 잘 먹고 나갔다.


올해 고3이 되는 큰애는 방학 동안 관리형 독서실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점심을 주는 것도 아닌데 한 달에 60만 원이나 했지만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가상해서 끊어줬더니 등교하는 것처럼 꼬박꼬박 7시에 나갔다. 다음 달도 끊어줄까 물어보니 2월부터는 안 하겠단다. 가격에 비해서 혜택이 많은 것도 아니라고 했다. 수학 학원비 올랐다고 연락 온 걸 괜히 얘기했나? 큰애는 내가 돈을 많이 쓸까 봐 걱정해 준다. 다음 달에는 집 근처 독서실로 다시 다니겠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


일찍 깨서 동트는 것도 보니 좋고 이른 아침부터 뭘 할까 설레어하고 있는데 큰애한테 문자가 왔다. 필통을 두고 갔다고 독서실에 가져다 달라고 했다. 뭐가 들었길래 묵직했다. 그래, 다른 날도 아니고 방학인데 엄마 노릇 한번 하자. 얼른 옷을 주워 입고 집 앞에서 버스를 탔다. 노량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스산한 아침 공기를 헤치고 바쁜 사람들 틈에서 나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이가 공부하는 독서실은 수산시장 건너편 쪽 빌딩 14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입구 데스크에서 소위 ‘관리’ 하시는 분이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들어가서 아이를 만나는 건 당연히 안 되고 쉬는 시간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필통 속에 5만 원을 고이 접어서 넣어 놓고 전해달라고 했다.


도대체 어떤 곳인가 나오기 전에 쓱 둘러보니 큰 통창으로 보이는 뷰가 시선을 끌었다. 수산시장을 끼고 저 멀리 한강이 보이고 햇살 가득한 창가에 긴 책상을 두어서 책 읽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 편엔 유리창 너머로 책상에 코를 박고 있는 아들딸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오늘을 반납하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건물을 나오면서 보니 복도며 엘리베이터 곳곳에 최다 합격생 배출, 어느 대학 무슨 과 신입생 이름이 보란 듯이 걸려서 말하고 있었다. 야, 너희도 이렇게 할 수 있어.



얘야, 너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니. 무엇이 되고 싶니.



엄마는 부끄럽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저 남들도 하니까, 어른들이 하라고 하니까 했던 공부로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어. 너를 낳고 나서 서울에 있는 학교로 다니고 싶어서 다시 준비한 임용고시가 내가 진심으로 사력을 다했던 공부였던 것 같구나. 내가 절실하게 무언가를 원해서 얻고자 할 때 과정도 결과도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깨달았단다. 


얘야, 너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니. 무엇이 되고 싶니. 지금은 저렇게 합격이라는 문을 당당히 통과하고 싶은 생각뿐일 거야. 너한테 현재 최선으로 보이는 그 길이 사실 인생에서 전부는 아니란다. 그러나 무언가를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는 건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한 일이라서 나는 네가 대견하단다. 과정에서 무엇을 얻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도 자연히 따라오지 않을까. 지나고 보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시간들을 살아내느라 애쓰는 네가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먼 훗날 오늘 일을 너와 얘기할 날이 오기를 바라며 엄마는 집으로 돌아간다. 점심 저녁 거르지 말고. 조심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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