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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썸 Jan 28. 2022

때로는 '그냥' 사는 마음도 필요하다

명절을 대하는 자세

"이번 설은 언제 내려가니? 코로나 조심해라."


명절이 되면 친정부모님께 듣는 두 문장이 원래 하나였던 듯 익숙하다. 일 년 중 생각이 제일 많아지지만 아무 생각을 안 하려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햇수를 세어 보니 지금까지 마흔 번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지나간 명절들이 어떤 시간이었을까. 앞으로도 그렇게 지날 것을 알기에 마음을 조용히 비우려고 하지만 부모님이 물어보실 땐 혹시 얘네들이 이번 명절은 안 내려갈 수도 있지 않을까 조그마한 희망을 품으시는 건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형제들은 모두 외국에 살고 있어서 명절에는 부모님 두 분만 오도카니 지내시기 때문이다. 그런 친정부모님을 두고 야멸차게 나의 발걸음은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시댁으로 향한다. 


나는 결혼한 친구들한테 '시댁에 알아서 잘하는' 며느리이다. 명절마다 시댁에서 3박씩, 그것도 시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안 계신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친구들의 이런 시선을 받을 때마다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알 수 없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친하니까,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으니까,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서, 나를 아낀다는 이유로 쉽게 판단하고 재는 말에 처음엔 상처도 받았지만 그것도 해를 거듭하면서 그러려니 한다. 이 '그러려니' 하는 마음, 현실에 안주하며 무뎌진다는 뜻 아닌가? 나에게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명절마다 시댁에서의 3박'의 시작은 이러했다. 이유 하나, 결혼하고 친정 바로 옆에 살면서 부모님은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까 명절 다음 날 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이유 둘, 명절 오후에 출발하면 차가 막혀 고생하니 명절 다음 날 새벽에 올라오는 편이 나았다. 이 '3박'의 불문율은 코로나 시국에도 흔들림이 없어 이제는 명절 전날 아침 일찍부터 달려들어 모든 음식 준비를 끝내고 오후엔 해수탕 나들이(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론 가족탕을 조카가 예약해서 간다)가 루틴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늙어 가는 친정부모님 두 분이 조촐한 차례상 앞에 절하고 계시는 사진을 카톡방에 올리실 때면 마음이 항상 편하지 않다.     


일찍 돌아가신 시부모님을 대신하여 시골집을 지키며 논밭을 일구시는 건 형님 내외분이다. 나이 들면서 흙에서 나는 것이 가장 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일 년 내내 농사일의 수고로움을 감당하시면서도 남한테 팔기 위함이 아니라 형제들과 나누시는 두 분의 모습은 존경스럽다. (아주버님은 공무원으로 일하시다가 퇴직을 하셔서 주된 수입은 퇴직금이신 것 같다.) 참고로 내가 소개받아 만난 사람은 농사짓기 싫어서 공부하고 서울로 도망치듯이 온 사람이었다.


게다가 농촌 여인들의 삶이란! 2000년대 초, 결혼을 앞두고 시댁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러 처음 남편의 고향집을 갔을 때 형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지금이 몇 년도인데...’를 몇 번이나 삼켰는지 모른다. 형님 댁에는 온갖 물질을 하는 부엌이 하나 더 딸려 있었는데 형님은 거기에 쪼그리고 앉아 제사, 명절, 벌초, 연말의 가족 계모임까지 식구들 입에 들어갈 것들을 만들어 내셨다. 도시에서 부엌일이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농촌에서는 그 시작점부터 달랐다. 밭에서 뜯어 온 푸성귀와 채소를 다듬고 데쳐서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찌고 묵을 쑤고 탕을 끓이셨다. 틈틈이 집안일은 말할 것도 없고 돌봐야 할 가축까지 있었다. 거기에 집안 어른들 대소사나 경로당의 어른들까지 챙기시는 걸 보고 나는 거의 문화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농촌 여성의 정체성'에 눈을 뜨게 해 주신 건 우리 형님이다. (우리와 가까운 큰집에는 이런 형님이 다섯 분이나 더 계시고 내가 제일 막내다.) 


올해도 남녘으로 먼 길을 떠나는 차에 가지고 갈 물건들을 준비하는 것으로 명절 시즌을 맞았다. 주로 입고 바르는 품목으로, 돈으로 해결되는 공산품들이다. 형님들 나눠 드릴 선물을 샴푸와 린스의 2구짜리로 할까, 샴푸 바디 린스의 3구짜리로 할까 이런 지질한 고민을 한다거나 아웃렛을 한 차례 돌면서 속옷과 양말, 아이들 입을 내복 같은 것을 사 모으는 게 나에게 명절 준비라면 준비다.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는 쌀과 김치를 비롯해 온갖 먹을거리로 터질 것 같이 채워진다. 일 년 동안 시골의 깨끗한 공기와 바람을 품고 자란, 형님과 아주버님의 노동의 대가로 얻어진 귀한 것들을, 나는 주시는 대로 차에 달랑 싣고 와서 냉장고를 채우고 넉넉히 한 철을 지낸다. 


우리 삶에 때론 명절을 치르는 것처럼 ‘그냥’ 사는 삶이 필요하는 생각을 한다. 뉴스 미디어에 명절이면 들리는 흔한 얘기들에 귀 기울이고 싶지도 않고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날 서고 싶지도 않다. 집집마다 사는 모습이 다른 것처럼 명절의 모습도 다 다를 것이다. 내가 명절을 보내는 마음은 어떤 거창한 목적도 없고 의도도 없고 비판하려는 생각은 더더욱 갖지 않는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그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우주적인 태도(?)로 형님들과 수다를 떨고 웃으면서 명절을 보내고 오면 올 한 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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