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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썸 Jan 28. 2022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고

브런치 작가가 되어 살아 본 1일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보이면 적곤 했던 공책이 열 권을 넘어서고 그 문장 옆에 내 생각이 조그맣게 달릴 즈음 나도 내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동안 품고 있던 마음을 실행에 옮긴 건 작년 여름, 조심스럽게 한겨레 문화센터의 글쓰기 강좌의 문을 두드리면서였다.  


나 같은 글쓰기 왕 초보자에게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던 강의 제목이 바로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였다. 6주 일정으로 김민영 강사님이 진행하시는 글쓰기 입문 수업이었다. 때는 여름방학이었고 코로나 상황에서 여행도 만남도 자제해야만 했던 시기에 나를 위한 맞춤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다. 주 1회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강의와 함께 수강생들은 단톡방에 매일 글을 올려야 했다. 글의 길이도 형식도 내용도 모두 자유였다. 내가 쓴 첫 글을 올리던 순간, 식은땀이 삐질 나면서 손가락이 떨리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글을 몇 번 올리고서야 알았다. 


아, 이 수업의 의미가 단톡방의 '전송' 버튼에 다 들어있구나. 



스물 다섯 차례에 걸쳐 글을 올리면서 나는 그날그날 마음 가는 대로 쓰고 싶은 걸 정말이지 막 썼다. 누가 평가하는 것도 아니요, 가타부타 토를 달 사람도 없는,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그렇게 매일 쓰는 경험을 처음 해 보았다. 게다가 강사님이 내가 제출한 글에 빽빽이 밑줄을 쳐서 정성스럽게 첨삭지도를 해 주셨을 때(두어 번 해주셨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큰 맘먹고 해야 되는 일인 줄도 몰랐다), 나름 완성도 있게 썼다고 생각했던 글이 민망한 허점투성이여서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이 쓴 글을 이렇게 치열하게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반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글쓰기 수업 말미에 다가온 소중한 깨달음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 속에서 나온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도
세상이 무너질 만큼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구나.    
 


수업이 끝나고 2주가 흐른 뒤, 나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나를 보았다. 매일 글을 쓰는 과제가 없어지니 쓰지 않는 일상으로 너무나 쉽게 돌아왔다. 단톡방에 글을 올리면서 스물다섯 개의 작은 완성들을 보는 기쁨으로 충만했지만 글쓰기 습관을 이어가기에 한참 모자라다는 것을 알았다. 문득 강사님께서 수업 마무리에 우리에게 쓰는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하시며 몇 가지 조언을 하셨는데 그중 ‘100일' 글쓰기 수업이 떠올랐다. 9월에 신청했는데 충분한 인원이 확보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된 두 번째 수업은 역시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최진우 강사님의 '100일 글쓰기 곰 사람 프로젝트'였다. 곰이 사람이 된다는 100일 동안 나 같은 사람이 100일이 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막연히 호기심으로 발을 들여놓았는데 이것 또한 굉장했다.  


격주로 8회에 걸쳐 진행될 오프 수업의 첫날, 강사님은 우리가 겪을 심리 변화가 열흘 간격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미리 보여주셨었다. 인생에서 100일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반신반의했던 나는, 아니 끝까지 함께 한 우리는 그 복잡 다난한 심리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며 강사님이 준비하신 큰 그림 안에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강사님은 우리를 글쓰기 카페에 모아 놓고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글을 올리라고 압박 아닌 압박을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이렇게 카페에 모인 회원들의 댓글 격려는 물론이고 '매일 밤 12시'라는 마감 시간도 100일 동안 우리가 쉬지 않고 글을 쓰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결승선 테이프를 끊고 보니 우리가 함께 겪은 100일은 하루하루가 대단한 날의 연속이었다. '오늘은 뭘 쓰지' 고민하며 어딘가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글 동료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서로가 속속들이 글로 알아가는 것은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작년 여름부터 나에게 일어난 일들은 지금의 나에게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아니면, 


나는 계속 전환점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도 맞게 되지만 개인적으로 터닝 피리어드(turning period)라는 말을 좋아한다. 전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운에 의하여 맞닥뜨리는 것이라면 후자는 내가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의미가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 글쓰기 카페에 글을 올리면서 브런치에서 먼저 쓰고 서랍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던 글이 브런치 작가 심사 과정에서 좋게 평가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 응모하는 과정을 보니 최근에 쓴 글 중 세 편만 클릭해서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운영팀들은 서랍까지 열어 본 것 아닌가 싶다. 100일 글쓰기 후 오래 동안 잠자고 있던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영항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브런치 외에 글을 쓰고 있는 다른 링크를 올리도록 되어 있었는데 선택이긴 했지만 이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사람 일이란 게 정말 알 수 없다. 100일 글쓰기 수업 끝에는 수강생들이 써 온 소감문을 돌아가며 발표하고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내가 쓴 글의 끝부분은 이렇다.

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왜 글쓰기인가?'에 대한 대답은 충분히 찾은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탐색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계속 쓸 도리밖에 없다. 내 안에 차고 넘쳐흐르는 이야기가 무엇이 될지, 나도 모르는 내 글이 궁금하다. 100일 글쓰기를 마치면서 글쓰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 편안히 안주할까 봐, 경험이 경험으로 끝날까 봐 걱정이다. '내가 한때는 말이야 100일 동안...' 과거형이 아니라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어'라고 현재형으로 말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신비롭지 않은가. 어제도 쓰고 오늘도 나는 쓰고 있다. 무엇이 되기 위해 쓴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작가로 선정되니 적어도 계속 쓰는 삶의 연로를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을 것 같이 든든하다.  블로그에 조회 수가 0인 글을 올리면서 자유롭지만 헛헛하다고 느꼈었는데 이렇게 읽어 주는 이가 생기니 덜 외로워졌다. 어제 글쓰기 앱의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니 가족들이 제일 먼저 축하해 주고 관심작가로 등록해 주었다. 옆에서 지켜본 남편이 패밀리 비즈니스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동참했다. 평생 꽁꽁 숨어서 글을 쓰고 싶지 않다면 나와 가장 가까운 시선에서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걸 느끼고 있다. 도대체 책을 출간하는 이 세상의 작가님들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의 시선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그리고 밥벌이로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건 얼마나 고된 길일까. 브런치 작가로 살아 본 1일, 많은 생각이 오간 하루였다. 이렇게 식음을 전폐하고 글을 끌어안고 살다가 조만간 폐인이 될 것 같다. 행복한 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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