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초
밤새 건조해진 집안 공기 때문에 요즘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건 분무질이다. 공중 습도가 높은 환경을 좋아하는 애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애들도 있어서 가려가면서 한다. 설 연휴에 며칠 집을 비울 거라 목마른 애들이 있을까 봐 바삭바삭해진 겉흙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 물 마름 상태를 가늠하고 다녔다.
안방 창가에 있는 여인초를 살피다가 쭈그리고 앉았다. 새 잎이 손가락 마디 하나쯤 펼쳐져 있었다. 분명 어젯밤에 봤을 때만 해도 길쭉하게 말려만 있던 잎이 하룻밤 새 저렇게 펴지다니 신통방통했다.
내가 잠든 새에 너는 얼마나 용을 쓴 거니.
옆에 잘린 줄기는 아픈 자리이다. 이렇게 새로 나던 연약한 잎을 손 대서 똑 떨어지고 말았다. 잎이 떨어진 채 계속 키가 쑥쑥 크길래 심호흡 한 번 하고 가위로 싹둑 잘라 주었다. 친정엄마가 나 없는 새 집에 오셔서 일을 저지르셨다고 어찌나 미안해하시던지. 엄마와 나의 공통점이다. 식물을 가꾸고 작은 변화를 들여다보는 것. 칠순을 넘기신 엄마는 아직도 눈썰미가 좋으시다. 때론 그 날카로운 눈썰미가 사람을 다치기도 만들지만.
그게 작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니 실로 몇 달만에 보는 새 잎이라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다.
햇살이 통과하는 잎을 들여다보니 새겨진 무늬가 다 보인다. 중심부에서 잎 가장자리로 뻗은 길을 따라 작은 방들이 칸칸이 들어서고 엷은 선으로 유려하게 테두리도 그렸다. 자연이 만드는 작품 앞에선 말을 잃는다. 한없이 겸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