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테라
구정 연휴 마지막 날, 시댁에서 올라오자마자 발걸음이 창가 쪽으로 향한다. 몬스테라 새 잎 하나가 또르르 말린 걸 보고 갔는데 아직 그대로였다. 작년 여름에 집 앞 시장통에서 8천 원에 데려온 아이인데 그간 나에게 준 평안함은 가격이 무색할 정도다. 이러한 자태에 어떻게 값을 매길까. 새 잎이 펴질 때에는 번데기에서 나와 젖은 날개를 펼치는 나비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 내야 하는 일이기에 나는 이렇게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낼 뿐이다. 딸의 해산을 기다리는 친정엄마의 심정으로. 제 얼마나 용을 쓰고 있을까.
손가락으로 찔러보니 속흙까지 말랐길래 물을 주고 물끄러미 잎을 보았다. 잎의 찢어진 부분이 미세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건들면 툭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모습이 신기했다. 몬스테라는 처음에 잎을 낼 때 구멍이 없이 온전한 모양으로 서너 장 잎을 낸 후 찢어진 잎이 나온다고 하길래 본디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찢어지기 전에 저런 과정이 있었다. 너는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니.
몬스테라 찢잎은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몬스테라의 찢잎처럼 세상에는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의 노동이, 돌봄이, 성실함이, 꾸준함이, 따스함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우리는 존재의 빛을 잃는다. 그 너머에 있을 보이지 않는 수고와 노력까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엔 감사의 마음이 들어설 곳이 없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시골집을 지키고 계시는 형님 댁에는 시집 안 간 딸이 있는데 명절이 되면 으레 튀김을 담당했었다. 차례상에는 올리지 않지만 남녀노소 간식으로 잘 먹어서 음식 준비에 빠지지 않았는데 튀김 장인으로 칭송받던 그 조카가 올해부터는 튀김을 하지 않겠노라 선포했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겠거니 가볍게 생각하셨던 형님은 서슬 퍼런 딸의 일탈에 결국 사다 놓은 튀김 재료를 결혼한 아들에게 맡겼다. 각종 전 담당인 나는 명절 음식 가짓수를 줄여야 된다고 생각해 왔기에 이런 변화가 내심 반가워서 조카를 두둔했다. "원래 변화는 처음에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튀김 없는 명절, 저는 찬성입니다." 사실 명절에 찬성하지 않는 것이 이것뿐이겠는가.
"네 딸이랑 내 딸은 이 담에 크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거야." 어깨너머로 보던 튀김을 혼자 떠맡은 남자 조카에게 위안 삼아 말을 건넸다. 조카는 첫 작품을 까맣게 태워서 누나의 잔소리를 듣더니 마지막엔 비슷하게 만들어 냈다. 아이들은 부지런히 튀김을 주워다 먹었다. 형님은 영 못쓰겠다고 나한테만 들리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더 이상 튀김 고수가 하던 튀김을 명절에 먹을 수 없게 된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는 어쩌면 명절에 튀김을 하던 조카의 수고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부엌에서 여자들만 허리가 휘어지게 음식 준비를 하는 관습을 보면서 조카는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노동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명절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오랜 시간 가족들을 위해 음식 준비를 해 오신 형님과 형님의 손아래 동서인 나는 시도할 수 없었던 변화였다. 조카는 올 추석엔 친구와 여행을 간다고 했다. 조카가 명절에 우리 보란 듯이 여행을 훌쩍 떠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누군가 이렇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는 것이 명절이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한다.
한편으론 '하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카가 부럽기도 했다. 며느리인 내가 전을 부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떨까. 혹은 시댁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도 어려우면 설날에 아침만 먹고 집에 간다고 하면 어떨까. 나는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누군가가 내는 용기를 보고 옆에서 박수만 친다. 그리고 다음에 올지도 모를 또 다른 변화를 기다린다. 어느 누구의 수고도 당연하지 않다. 명절에는 더더욱. 몬스테라의 찢잎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