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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썸 Feb 05. 2022

마음이 시키는 일

우리 집 겨울 햇볕은 9시쯤 들어와서 1시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볕이 가득한 베란다에서 햇볕을 등지고 앉아 식물 옆에서 책 읽는 시간은 큰 즐거움이다. 아름다운 나의 정원이 있는 곳. 이런 정원을 즐기려면 매일 발길이 머물고 손길이 가야 한다.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누릴 수 있는 건 무릇 식물 가꾸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풀때기 하나 없던 삭막한 공간이 2년 새에 이렇게 변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시작은 패브릭 포스터였다. 재작년 3월, 정체를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학교도 문을 닫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안방 창문으로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 동 번호가 거슬려서 창가에 가림막을 달고 싶던 차에 인터넷으로 창을 가릴만한 가림막을 찾아보았다. 수많은 디자인 중에 내 선택을 받은 건 ‘윈도 가든’이었다. 150x130cm, 9천 원짜리 식물 그림이 그렇게 집안에 걸렸다. 그때 나를 움직인 건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이었다. 그 이후 동네 꽃가게 앞에서 걸음이 자주 멈추더니 하나 둘 업어 온 아이들이 집안 곳곳에 차고 넘친다. 



식물이 놓였던 자리의 싱그러움은 그 어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웠다. 한번 들인 아이를 죽이지 않고 오래 보기 위해 원래 태어났던 원산지와 키우는 방법을 적은 작은 노트도 생겼다. 유튜브에서 식물을 키우시는 분들의 영상을 많이 찾아보았는데 그중 한 분이  '초록이들과 썸 타는 그린썸'이다. 단정하신 말투가 마음에 들어 바로 구독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https://youtu.be/tA-hASR4tR0

그분은 몇 년 전 몸을 다쳐 몇 달 동안 집에서 누워 지내야 했는데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이 새순을 내는 것을 보고 위로를 받으셨다고 한다.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곳마다 이유는 있다. 그 시기에 나도 마음을 쏟을 무언가가 필요했었으리라. 한 번은 그분의 영상을 남편에게 보여주었더니 “당신은 ‘그린썸’(green thumb; 식물을 잘 키우는 손)까지의 경지는 못 되고 ‘그런썸’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해서 웃었다. 그래서 내 필명은 '그린썸'은 되지 못한 ‘그런썸’이다. 



유재석이 언젠가 ‘무한도전’에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노래한 것을 기억한다. 나는 안방 창문에 달린 걸개그림을 통해 ‘보이는 대로’ 마음이 작용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교실에 정현종 님의 시 ‘방문객’을 걸어 두거나 모니터 아래쪽에 ‘송곳 하나 꽂을 데 없다가도 바다같이 넓어지는 것이 마음’이라는 글귀를 붙여 놓은 것도 이런 이유다. 마음을 다스리면서 깨어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보는 것도 좋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것이 삶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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